: 삼가 새해를 준비하다 [12매]
첫째.
김치찌개가 참 애매하게 남아있다. 한 끼치고는 분명히 많은데 두 끼치고는 적다. 대략 1.6인분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다 먹어버렸다. 과하게 짠 입과 부른 배를 두드리면서 굳이 그래야 했나 싶었다. 얼마가 남았든 딱 1인분만 먹었어도 될 텐데. 남은 양이 0.8이든 0.4든 놔뒀다가 다음에 먹거나, 그럴 수 없으면 버려도 될 일이다. 이런 식의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 하던 대로, 기세대로, 이런 부분을 줄이고 내가 원하는 만큼, 하고자 하는 만큼만 하는 버릇을 새로 들여야 한다.
둘째.
대인관계는 큰 기대 없이 대하면 된다. 나와 주변인이 모두 건강하고, 별 탈 없이 지내고, 그러다 보고 싶으면 얼굴을 보고 만나면 된다. 굳이 힘든 이야기나 어려운 이야기를 할 필요 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지루하거나 심심하거나 괴롭기 전에 자리를 파하면 된다. 오늘 만남이 즐거웠다고 말하고, 상대가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라고, 그리고 다음 만남 때까지 각자 잘 살고 있으면 된다. 욕심과 기대, 욕망과 미련, 의존과 바람, 습관과 의무가 관계를 어렵고 힘들게 만든다.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받고 싶고, 내가 무엇인가를 해줘야 할 것 같고,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그리 해야 할 것 같고, 왠지 상대가 이런 것을 해줄 것만 같고, 이럴 때 내가 있어줘야 하고, 이런 감정을 상대에게 말해야 하고, 등등의 ‘뭔가 이럴 것 같다’와 ‘이래야 할 것 같다’가 관계가 복잡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즐거웠던 시간이 덜 즐거워지고, 좋았던 행동도 좋지 않아진다. 이제는 안다. 내가 예전 그때와는 다른 관계론을 가졌음을.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진 관계는 20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다만 같은 관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내가 있을 뿐이다. 안달복달 애쓴다고 관계는 나아지지 않는다. 울고불고 매달린다고 깨어질 관계가 이어지지 않듯이. 관계란 마치 매듭과 같아서 그저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하나씩 차근차근, 서로가 마주 보며 단단하게 묶어가는 과정이다. 노력과 정성을 들일 수는 있어도 애를 쓰거나 억지를 부릴 일은 아니다. 다만 다른 관계론을 가졌다고 해서 마냥 놔두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고, 정성을 들이지도 않고 방치하느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관계가 아니니까. 나는 20대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차선을 다 할 것이다. 상대의 요청에 시간이 내고, 만나면 반갑게 맞이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나도 진솔하게 말하고, 같이 있는 동안 이 시간에 집중하고, 만나고 있지 않은 시간에는 상대의 평안함을 마음으로 기원한다. 과하게 애를 쓰지 않을 뿐이지 허투루 대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억지로 밀고 당기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가볍게 여기겠다는 뜻도 아니다. 단지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앞서 말한 저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리 정상적으로 관계가 진행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선물 같은 일도, 깜짝 놀랄 만한 예상 못한 사건이 추가로 일어나는 것뿐이지.
관계를 소홀히 대하는 것도, 관계에 목매는 것도 모두 시간낭비와 감정낭비다. 소홀히 대할 거면 그 시간에 차라리 혼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고, 과하게 대할 거라면 그 시간에 차라리 그러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관계를 찾는 편이 낫다.
셋째.
낮밤을 바꾸려는 이유들 중에 가장 큰 이유는 활동반경을 넓히기 위함이다. 거주지를 벗어나 어딘가를 다녀오려면 아침 일찍은 아니어도 최소한 오전에 집에서 나가야 한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여도 그런데, 꽤 멀리까지 다녀오려면 더 일찍 나서야 한다. 어느덧 2월도 절반 이상 지나고 있다. 즉슨 겨울의 끝자락이라는 뜻이고, 곧 해가 점점 길어지고 날이 따듯해지는 계절이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겨울에 주로 방문하는 우울증의 고비는 정작 겨울이 아닌 봄에 온다. 이렇듯 한낮의 해가 따듯해지며 날이 풀리는 시기를 어찌 보내는지에 따라 한겨울 매섭게 춥던 우울증이 끝내는 내게 한 단계 단단하게 딛고 설 수 있는 계단이 될지, 아니면 단지 속을 갉아먹다가 나를 폭삭 삵아버리게 하는 구덩이가 될지 정해진다. 나는 매해 수시로 우울했고, 겨울에는 자주 우울증에 빠졌다.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을 테니 우울한 인간이 겨울 끝자락에서 어떻게 봄을 맞이해야 하는지 그만큼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게 우울증은 일종의 겨울잠과 같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가 마무리될 무렵, 혼자서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다시 찬찬이 기운을 회복하는 그런 곰의 겨울나기와 같아야 한다.
스쿠터가 다시 고생할 시기가 왔다. 마침 3월이 보험갱신달이니, 이번 년도 신세를 조금 져야겠다. 너에게 신세를 지는 것은 아마 올해가 마지막이 될 듯하니 잘 부탁한다.
25. 0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