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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날

[10매]

by 이한얼






난 여전히 네가 싫다. 겨우 잠든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아침부터 나를 깨우는 네가 싫다. 자다 깬 것이 잠긴 목소리로 뻔한데 모른 척 자고 있었냐고 묻는 네가 싫다. 그럼에도 바로 끊지 않고 혼자 신나서 높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말을 왜 내뱉는지, 잠이 완전히 달아난 후에야 전화를 끊는 네가 싫다. 사람을 기껏 카페로 불러놓고는 뒤늦게 도착하는 네가 싫다. 옷은 언제 빨았는지, 면도는 며칠 전에 했는지, 지난주에도 입은 옷을 왜 또 입고 왔냐며 간섭하는 네가 싫다. 목 뒤를 뒤집어 때가 탔나 확인하고 굳이 냄새를 맡아보고 주머니에 버리지 않는 쓰레기가 있는지 손을 넣어보는 네가 싫다. 얼굴을 보면 불쑥 쏟아내고 싶을 만큼 하고픈 말이 많은데 선수 쳐서 내 입을 막는 네가 싫다. 미주알고주알 어찌나 얘기는 많고 또 끊이지 않는지, 의식의 흐름이 한 시간이나 유려하게 흘러가는 네가 싫다. 경칩이어도 아직 해가 떨어지면 추운데 몇 시에 들어갈 요량으로 그렇게 입고 나왔는지 가벼운 옷차림인 네가 싫다. 레깅스는커녕 스타킹조차 안 신고 양말은 왜 그렇게 얇고 짧은지 계절을 거스르는 네가 싫다. 칠칠맞지 못하다는 말이 대신 앉아 있는 것처럼 잊을 만하면 흘리고 묻히고 난리인 네가 싫다. 휴지를 가져다줄 때까지 알아채지 못하고 닦아주지 않으면 내도록 가만히만 있는 네가 싫다. 배고프다며 징징거리는 네가 싫다. 아무거나 라며 선택권을 주지 않고 제멋대로 메뉴를 정하는 네가 싫다. 음식도 마음대로 정했으면서 가까이 있는 가게가 아닌 굳이 멀리 있는 곳으로 가자는 네가 싫다. 이 미세먼지에 차를 두고 왜 대중교통을 타자고 하는지, 대답도 듣지 않고 정류장으로 먼저 걸어가는 네가 싫다. 펼쳐 쓰는 일자형 마스크는 불편해서 싫은데 거절하기도 어렵게 새로 뜯어서 철사까지 구부리고 내미는 네가 싫다. 비말이면 되는데 굳이 노란색 94 마스크를 주는 네가 싫다. 음식점에 이미 앉았는데 왜 자리를 바꾸자고 하는지, 똑같은 의자인데 까탈스럽게 구는 네가 싫다. 이미 빼놓은 채로 일어섰는데 뭘 또 의자 빼달라며 가만히 서있는 네가 싫다. 채소 싫어하는 거 알 텐데 본인 채소는 내게 덜어내고 고기를 훔쳐가는 네가 싫다. 아직 절반도 못 먹었는데 자기는 다 먹었다며 숟가락을 내려놓아서 사람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네가 싫다. 남은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데 왜 자기 그릇을 내게 밀어두는지, 기껏 고기를 가져가놓고 왜 저렇게 잔뜩 남겼는지, 자기 것까지 먹지 않으면 안 나가겠다고 이상한 고집을 부리는 네가 싫다. 그러게 차 타고 오자니까 밥 먹은 후에 버스 냄새 맡기 싫다며 걸어가자는 네가 싫다. 강변을 따라 가면 돌아가는데 뭔 꽃과 오리를 보겠다고 마음대로 계단을 내려가는 네가 싫다. 다섯 걸음 걷다가 들꽃을 주시하고 열 걸음 걷다가 안 예쁜 배경인데 사진을 찍어달라고 귀찮게 하는 네가 싫다. 저거 오리 아니냐고 내 날갯죽지를 계속 때리는 네가 싫다. 저렇게 다리 긴 오리가 어디 있냐고 하니 그럼 두루미냐고 묻는 네가 싫다. 학이라고 안 한 게 다행이네 왜가리 처음 보냐 말하니 무릎으로 내 엉덩이를 차는 네가 싫다. 집 근처에 도착해서 밥 먹고 차도 마셨으니 이제 집에 가라 해도 말없이 서있는 네가 싫다. 커피 사주겠다고 해서 배부르다 하니 그럼 커피 대신 빵 먹으라는 이상한 논리의 네가 싫다. 늦기 전에 가봐, 라고 했다고 한 번 더 카페에 가자고 하지 않는 네가 싫다. 나를 여기에 두고 천천히 멀어지는 네가 싫다. 고작 커피 한 잔과 식사 한 끼만 하고 벌써 가버리는 네가 싫다. 오늘 오지 말라고 할 때는 끝내 안 듣더니 가라는 말만 잘 듣는 네가 싫다. 굳이 만나서 뭐하냐는 말에는 뭐 대단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굴더니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네가 싫다. 집에 올라갔는데 문고리에 종이 가방을 걸어둔 네가 싫다. 작은 상자를 흔들었을 때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내가 싫다. 나는 네가 싫다. 무엇보다 이제 나를 싫어하지 않는 네가 가장 싫다.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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