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매]
자신의 기준이 타인에게 있는 이와 나는 오래 관계 맺지 못한다. 자신의 세계가 강건하게 서있지 않는 이와 나는 깊게 관계 맺지 못한다. 아예 평범하게 살거나, 평범하게 살기로 정했다면 나와는 다른 영역의 사람이라 여기고 그저 받아들일 수는 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이 스스로의 세계를 아직 제대로 세우지 못했거나, 세웠어도 그러함을 모르거나, 그러함을 알아도 설명할 수 없는 이인 것처럼. 나는 그들과도 잘 지낸다. 그러니 반드시 평범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거나, 자신의 세계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세워야만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중에는 나와 너무 다른 성격과 가치관, 습관, 경험을 가져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이는 있다. 관계론이든 연애론이든, 무책임하든 생각이 짧든, 오만하든 내로남불이든, 너무 감정적이든 너무 이성적이든, 성격과 삶의 방식이 너무 다르면 나는 곁에 두지 않고 일찍 떠나보낸다. 서로 북돋아주는 것보다 갉아먹는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만 나와 너무 달라서 진작 관계를 끊었어야 하는 이라 해도 스스로 평범하게 살지 않기로 결심하고 노력 중이라면,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중이라면 그동안은 참고 유지하는 것뿐이다. 그의 판단이 이해가지 않아도, 행동이 납득가지 않아도, 생각이 용납되지 않아도, 최소한의 선만 넘지 않도록 정해두고 지켜보는 것이다. ‘너는 스스로 심연으로 걸어가고자 하는 이다. 그 걸음이 결코 쉽고 쾌적할 리가 없다. 많이 고되고 후회스러울 것이다. 그럼에도 그래야 한다고 여겼기에 그 길을 택한 너의 선택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너를 마음으로 찬탄한다. 그러니 그 길을 걷는 동안이라면 내가 도움을 조금 주마. 더불어 평소라면 곁에 두지 않을 그 생활도, 생각도, 성격도 그러려니 넘기며 너의 그 험난한 과정을 응원하마.’ 이렇게 말이다.
평범하지 않게 살고자 하는 이가, 어느 날 그 길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는 어떠한 실망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상대와 그만 보는 이유도 그 결정 때문이 아니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걷기로 한 결심’을 응원하는 것만큼, ‘이제 그만 평범하게 살기로 한 결심’ 또한 진심으로 응원한다.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살 수는 없다. 또, 이 세상이 그래서도 안 된다. 각자 삶의 방식은 우열이 없고, 단지 스스로 정해놓은 우선순위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평범하지 않게 살려다가 그 길을 포기하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이후 그 상대와 더 이상 보지 않는다면 도중에 포기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이 진작부터 나와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응원을 위해 참아왔지만 더 이상 그럴 이유가 없기에 인연 또한 끝나는 것이다.
누군가를 얻기 위해 저 길을 걷을 수도 없고, 누군가를 잃을까 봐 저 길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없다. 애당초 그럴 수 없는 과정이다. 만약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 길을 걸었다면, 그 길은 아직 그 길이 아니다. 물론 걷다 보면 어느새 진정한 나만의 길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걷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 이 길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애당초 어긋난 길을 걸어왔거나, 이미 내려왔음에도 아직 걷고 있다는 착각일 뿐이다.
진정한 길은 외길이다. 그 원 위를 계속 걸을지, 그만 내려와 다른 원을 걸을지 고민의 대상이 될 이도, 주된 목적이 되어야 하는 이도, 결정을 내리는 이도 자신뿐이다. 스스로를 위해서도 더럽히면 안 되는 길이다. 타인의 영향이 묻어서도 안 되는 길이다. 길에는 오롯이 자신만 존재해야 한다.
나는 너의 어떤 핑계도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소실의 불안함으로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여유롭게 걷는 이가 아니다. 너의 걸림돌이나 기착점이고 싶지도 않다. 한낱 견본으로 삼기에는 나는 이미 심연으로 충분히 걸어간 자다. 나는 나의 길을 갈 테니 너는 너의 길을 가라. 그런 두 길이 서로 평행이라면 우리 관계는 꽤 오래 이어질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고 엇비스듬하다면 아쉬운들 언젠가 서로를 스쳐지나갈 테고.
2025. 0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