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계 건너의 관계'가 '우리 사이'로 변하기까지
나는 너의 외삼촌이다. 네 어머니의 오빠고, 네 어머니를 키우다시피 한 사람이야. 내가 사랑하는 동생의 아이라니, 더없이 반갑구나.
아직 나와 너는 내 동생이자 너의 어머니를 중간에 낀 관계일 거야. 나는 동생의 아이이기 때문에 너를 예뻐할 테고, 너는 엄마의 오빠기 때문에 나를 잘 따르겠지. 지금은 분명 그렇지.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날수록 나와 너는 우리라는 관계로 계속 달라질 거야. 내가 너의 잠든 모습을 더욱 더 여러 번 지켜보고, 네가 너를 찾아온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횟수가 계속 쌓여갈수록 외삼촌과 조카라는 ‘관계 건너의 관계’에서 인간 이한얼과 인간 장솔빈이라는 개인 대 개인으로 변해갈 거야. 그렇다고 우리 관계에 내 동생이자 네 엄마가 빠질 리 없고, 그를 빼고는 우리 사이도 논할 수 없겠지.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 대 인간, 개인 대 개인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며 살게 될 거야. 얼른 그런 날이 기다려진다.
내가 국어사전에서 찾은 798개의 여자 아이 이름 후보에는 ‘혜림’이라는 단어도 있었어. 왕림과 같은 뜻인데, 의역하자면 ‘우리를 만나기 위해 친히 찾아온 이’라는 뜻이야. 너의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고모와 외삼촌, 그리고 그 외에 네가 앞으로 연을 맺게 될 모든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찾아와줘서 나는 정말 고맙다. 우리를 친히 만나러 와준 너에게 나 역시 너의 외삼촌이자 나아가 인간 이한얼으로서 최선을 다할게. 너에게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줄 가족이 되고, 든든한 어른이 되고,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될게. 기쁠 때 함께 박수치며 즐거워하고, 슬플 때는 네가 진정될 때까지 안아서 다독여줄게. 나는 할 수 있을 것을 다 할 테니 너는 단 하나만 하면 돼. 건강해라. 몸도 마음도 그리 아프지 말고 건강해라.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시선으로 네가 친히 찾아온 이 세계를 영혼으로 만끽해주렴. 만상을 고루 지켜보고 지혜로서 사유하면서 앞으로 네가 만날 좋은 인연들과 농밀한 삶을 구가해라. 네가 오로지 너일 수 있도록, 네가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너의 가족인 우리의 역할이니.
하루 두 번, 20분쯤 너를 보기 위해 한 시간 10분을 와야 했지만 그럼에도 네가 태어난 날부터 매일 오고 있다. 사실, 아직은 너보다는 네 엄마 얼굴을 보는 것이 더 목적이야. 내 동생의 손가락 끝만 조금 찢어져도 나는 속상했는데, 아랫배를 길게 쨌다고 하니 지금도 사실 많이 속상하다. 여전히 무던한 얼굴이지만 매일이라도 봐야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일 만큼. 그런 와중에도 너는 참 예쁘구나.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보여주는 다양한 표정과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반시간쯤은 후딱 지나갈 만큼 말이야.
무럭무럭 잘 자라거라. 이 세상에 너를 사랑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걱정 따위는 전혀 하지 말고, 내가 이들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내가 사랑받아도 되는 존재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일랑 잠시도 조금도 하지 말고. 응당 받아 마땅한 그 사랑을 당연하다는 듯이 맘껏 들이키며 씩씩하게 살아라. 내 목숨이 남아 있는 날까지는 너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있을 테니. 늘 네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네 시야가 닿는 곳에 있을 테니. 너를 사랑하는 뻔한 일도, 올바르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으로 너를 혼내는 일도, 내 기쁜 의무가 될 거야. 너를 귀하게 키우는 것은 우리가 할 테니, 너는 천하지 않게만 살아라. 스스로 귀하다며 으스대지 말고, 남을 천하다며 깔보지 않고,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그렇게 온 세상을 두루 품어라. ‘솔토지빈’이라는 네 이름답게.
다시 한 번 반갑고, 고맙다. 덕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