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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자이 :1의 사람들] 5

5. "잘 자."

by 이한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 숫자만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늘어난다는 뜻인가 싶다. 어렸을 때 오엑스만 있던 문제가 어느새 객관식으로, 그리고 이내 주관식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사람은 그에 따른 다양한 예상 답변도 미리 만들어놓는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준비하지 못한 문제는 기습처럼 빈틈을 찌르고 들어온다. 그때 사람은 고비라는 언덕과 마주친다. 그리고 그것을 무사히 넘었을 때야 한 살 나이를 더 먹게 되나 보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스무 살이라 정해놓은 나는 실제로는 몇 살일까. 짧은 세월 동안 몇 번의 고비의 언덕을 헐떡이며 겨우 넘어왔고, 몇 번이나 미끄러졌을까.



세 번째 주, 목요일


“바닥 불편하지 않아?”

침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잠시 후 “아니 괜찮아”라고 황급히 대답했다. 바보 같으니. 어둠 속에서 고갯짓이 보일 리 없었다. 혼자 인상을 찌푸리며 자책하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샴푸 냄새와 함께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내렸다.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침대 끝으로 아이의 머리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방은 잠들기 좋을 만큼 어두웠다. 불투명한 창문을 건너온 옅은 가로등 불빛으로 사물의 윤곽만 어렴풋이 확인할 정도였다. 나는 지난번처럼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워있었다. 내게 이걸 내밀며 “새로 빤 거라 깨끗해”라고 했던 그의 표정은 바닷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왠지 티 내지 않고 자랑하고 싶은 어린 남자아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의 말대로 베개와 이불은 깔끔한 섬유유연제 향이 났다. 입고 있는 티셔츠와 바지에서도 그랬다. 위생에 까다로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런 그의 배려가 왠지 고마웠다.

“갑자기 자고 가라는 건 좀 부담스러웠을까?”

아이의 말에 나는 망설이다 작게 “조금”이라고 말했다. 어두웠지만 미안하게 웃는 얼굴이 보여서 “싫은 건 아니었어”하고 서둘러 덧붙였다. 말할지 말지 잠시 고민하던 나는 “사실 지금까지 이래 본 적이 없었거든”이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아이는 뒷말을 기다리는 듯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친한 친구가 없었어.”

“왜인지 물어봐도 돼?”

나는 대답 대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친구가 없었을까. 답은 금세 나왔다.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친구 사귀는 것을 거부했으니까.


“화자야. 너는 속마음이 잘 튀어나오니까 조심해야 해.”

지금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엄마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다. 어렸던 그때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그 버릇은 내게 흠결이 아니었으니까. 그 나이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말은 삐죽해도 상처가 되지 않았다. 악의만 없다면 불쑥 튀어나온 속마음에 눈물짓기보다 서로 자지러지는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 먼저였다. 솔직한 성격 탓에 친구도 많았고 무리에서 언제나 대장 노릇을 하고는 했다. 친구들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들쑤시고 장난을 일삼는 활기찬 여자아이. 그때까지는 다른 무리는 그저 또 다른 친구들이지, 대립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 관계 역학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갈 무렵이었다. 아마 삼 학년 혹은 사 학년쯤이었을까.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무리에 대한 결속력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무리 결속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함께 노는 아이들과 더 친해진다는 뜻과 동시에 다른 무리들과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눈이 띄는 모든 이가 내 편이던 관계 영역은 그때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학교면 다 같이 친구였던 아이들은 우리 반만으로, 우리 반이면 같은 편이던 아이들은 다시 우리 무리만으로, 무리의 결속이 강해질수록 무리의 개념도 축소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내 무리를 위해 다른 무리를 배척할 일도 생겨났다. 무리 사이에 눈에 띄지 않던 갈등과 알력들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태도도 조금씩 변해갔다. 뛰놀던 아이들은 얌전해졌고, 활발하던 아이들은 무리 안에서만 활발함을 유지했다. 종종 다른 무리와 싸우기도 했고, 같은 무리 안에서도 다툼이 일어났다. 무리의 와해와 재결합이 반복되면서 서로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고, 결국 말까지 조심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말만 해줘야 무리가 유지되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누군가 튀는 행동을 하면 무리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사람이 방출되는 구조가 완성됐다. 복잡한 개념이었지만 지난 몇 년간 매일 몸으로 체득한 아이들은 놀랍도록 흐름을 읽고 원리를 파악하여 실생활에 적용시켜 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예전과 같았다. 전혀 조심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내키는 대로 내뱉는 아이였다. 그와 함께 점점 친구들이 줄어들었다. 처음은 내 말에 웃으며 장난치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한 무리씩 티 나지 않게 내 곁에서 멀어졌다.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소수의 몇을 제외하고는 반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를 멀리서만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때가 사 학년, 아마 열한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많은 친구들과 멀어졌지만, 같은 반에 있으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지만, 때로는 다수와 혼자서 싸우기도 했지만, 티가 날 듯 말 듯 은근히 따돌림을 당했지만 그래도 나는 괜찮았다. 친구 몇몇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니 그들과 소소하게 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패를 나눠 서로 헐뜯는 여자아이들을 내심 무시하면서, 여자아이들에게 기가 죽어 없는 듯이 구겨져있는 남자아이들을 못났다고 구박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마 그때쯤이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 마음속에 원통 모양의 석탑 하나가 생긴 때가.

중학교 때는 더 심해졌다. 그나마 몇 있던 친구마저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나는 반 한가운데 고립되었다. 그제야 위기감이 덮쳤지만 평생 해오던 버릇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관계가 익숙하지 않고 납득할 수도 없던 나는 여전히 무리 안에서 해도 되는 말과 하면 안 되는 말을 구분할 수 없었다. 그만큼 나는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다. 남들이 열 마디 할 때 고작 두 마디를 했다. 그 두 마디마저 해도 될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말할 타이밍을 놓치거나 스스로 포기하게 일쑤였다. 말수가 줄어들수록 주변도 빠르게 비어갔다. 학기 초에 그나마 조금 친해진 친구들마저 내내 말도 없고 대꾸도 느리다가 종종 엉뚱한 말을 내뱉는 나를 질려하며 멀리 했다. 그러다 보니 친구 한 명 없이 1학년이 지나갔다. 2학년과 3학년도 전혀 나아지는 일 없이 다른 학생들에게 은근한 따돌림을 받았다. 공학이었지만 남들 한 번씩 하는 연애 한 번 못해보고 중학교를 졸업해야 했다. 막말하는 애. 눈치 없는 애. 분위기 파악 못하고 키만 큰 애. 졸업식쯤에는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

그 무렵 마음에 두 번째 석탑이 생겨났다. 원형이던 첫 번째 것과 달리 두 번째는 삼각형이었다.

그 무렵 아빠는 재혼을 했다. 아빠와 나, 남동생이던 세 식구는 새엄마와 여동생이 추가된 다섯 식구가 되었다. 합가를 위해 다른 동네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그때 내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매일 마주치는 친구와 여동생을 밀어내지 않고 감정의 시궁창에서 함께 뒹굴었으면 어땠을까. 오해로 울고, 갈등으로 화내고, 때로는 미워하고 싸우면서 온몸으로 부대꼈으면 어땠을까. 그럼 바로는 아니어도 졸업하기 전에 이 버릇은 많이 고칠 수 있지 않았을까. 설령 친한 친구를 사귀지 못했어도 지금 대학생활은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여동생과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아도 최소한 지금처럼 네 명과 하나의 관계는 아니지 않았을까. 지금도 침대에 누우면 잠들기 전까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에 대한 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납득할 수 없는 관계에 시달린 나는 오히려 내 쪽에서 먼저 주변을 밀어냈다. 말을 거는 친구를 무시하고, 다가오려는 새엄마를 밀어내고, 눈치를 보는 여동생도 외면했다. 피곤했고 머리 아팠다. 친해져도 결국 작은 시비와 오해로 다시 사이가 나빠질 바에는 그냥 처음부터 친해지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벽을 두르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 와중에 서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몇몇은 생겼으나 그건 정말 교실에서 뿐인 관계였다. 학교에서는 혼자만의 세계로 피하고 집에 와서는 방 안으로 숨는 삼 년이 지났고, 나는 고등학교마저 졸업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생긴 것은 사각 석탑이었다. 마음 바닥에서 자라난 세 개의 석탑 가운데서 나는 그저 웅크리고만 있었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된 나는, 어렸을 때 언제 활달했냐는 듯이 소심해져 있었다.

나이 스물이면 이미 존재의 80퍼센트가 완성된다. 케이크로 치면 완성된 빵에 생크림마저 발라놓은 셈이다. 남은 평생은 그 위에 어떤 장식물을 올리고, 무슨 글씨를 쓰고, 몇 개의 초를 올리는지. 그게 나머지 20퍼센트였다. 대부분 80퍼센트를 외면한 채 20퍼센트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버둥거린다. 장식물을 올리고 글씨를 쓰기 위한 발판으로, 혹은 초를 꽂기 위해 케이크가 있다고 여긴다. 이제 와 문득 그것이 아니지 않을까 싶지만, 그때의 나 역시 그랬다.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내게도 그 20퍼센트가 절실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엄마를 닮았구나. 작은 키와 웃는 얼굴. 때에 따라 거침없고 때론 다정한 성격. 그리고 묘한 말투까지. 아이를 보며 왜 친근함이 들까 내내 고민했는데 이제야 그 일부를 알게 되었다.

내 쪽에서 대답이 없으니 아이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대신 차분한 말투로 자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음식과 음료를 좋아하는지. TV는 어떤 프로그램을 좋아하는지. 지금 어디에 살고 있고, 학교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주로 어느 노선으로 통학을 하는지. 어느 수업이 좋고 어떤 수업이 별로인지. 학식 중에 마음에 드는 메뉴가 무엇인지. 학교 안에서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지. 천장을 바라보며 해준 말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것과 몇 개의 싫어하는 것, 그리고 감상과 정보였다. 나는 묵묵히 듣다가, 틈틈이 추임새를 넣으면서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본인이 알려주고 싶은 것들을 얼추 전했는지 아이는 몸을 뒤집어서 나를 내려다봤다.

“집은 어디야?”

턱을 괸 아이는 내 정보를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할까 고민이 되었다. 동네를 말해도 분명 모를 터였다. 집 근처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역명을 댔다. 남춘천 쪽이라는 내 말에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이는 진심으로 놀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통학하는 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1교시에 오려면 몇 시에 일어나야 하고 막차는 몇 시까지인지 등을 꼬치꼬치 물어봤다. 그에 나는 경춘선이 있어 오래 안 걸리고, 오는데 2시간 10분쯤 걸리며, 금요일에는 6시에 일어나야 하고, 막차는 학교 정문에서 20시에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고 대답했다.

“막차가 왜 그렇게 일러?”

“역에서 집까지 가는 버스 막차가 22시 30분이거든. 그거 타려면 여기서 그때 출발해야 해.”

종점이 아니라 급행도 서지 않았다. 아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가 다시 머리를 내밀었다.

“혹시 쟤가 불편해?”

그가 불편해? 아니.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그가 불편하다는 생각은 바닷가 이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는 뭐랄까, 내게는 사람이 아닌 사물에 가까웠다. 아이가 움직이는 대로 머리를 돌리는 선풍기 같은 존재였다.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하지도 않고 심장을 두드리는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 탓에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같이 있어보면 내게 피해를 주지 않고 혜택도 주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무해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아이에게 하는 것에 비해 신경을 덜 쓴다는 거지, 가만히 있어보면 은근하게 이것저것 잘 챙겨주기도 했다. 불편하다니, 전혀. 그는 지금 중학생이 된 남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불편하지 않아.”

내 말에 아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상한 비유지만 자신의 결점을 인정받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이에게 그는 어떤 존재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보다시피, 나는 주말 빼고는 거의 이 집에서 묵어.”

그건 현관으로 들어오는 순간 깨달았다.

“매일은 무리겠지만, 내 욕심으로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너도 여기 묵었으면 좋겠어. 오늘 같은 날. 끝나는 건 늦고 내일은 1교시 시작이잖아.”

혹하는 제안이었지만 나는 말을 흐렸다.

“잘 모르겠어. 저 친구 의사도 중요하고.”

“괜찮아. 이미 말해놨거든.”

무슨 말을 해놓았을지 문득 두려웠다.

“저기, 그건, 생각해볼게.”

두루뭉술하게 맺은 말에도 아이는 마치 승낙이라도 들은 것처럼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곁눈질로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같은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어도 바닷가에서와 달리 기뻐 보였다.

“바닥 불편하지 않아?”

아이는 다시 물어봤다. 나 역시 같은 대답을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두 번이면 정말 바닥이 불편하냐는 뜻일까. 내가 대답 없이 가만히 있으니 아이는 잠시 후 “괜찮으면 올라와서 같이 잘래?”라고 물었다. 싱글 사이즈였지만 아이의 덩치가 작아서인지 나란히 눕기에 좁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나 앉는 내 모습에 아이가 벽 쪽으로 물러났다. 나는 베개와 이불만 들고 침대 끝으로 조심조심 올라갔다. 침대에 나란히 누운 소감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좁지도 넉넉하지도 않은, 두 사람이 서로 부대끼지 않고 곧게 잘 수 있는 딱 그 정도였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둠 속에서 별빛 같은 두 눈동자가 반짝였다. 작은 체구여서 그런지 오히려 그리운 느낌도 들었다. 벌써 몇 년 전이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남동생을 재울 때 종종 같이 누웠던 그런 기분이었다.

“이 집은 너무 편안해서, 방에 혼자 누워있으면 가끔 외로울 때가 있어.”

아이는 코앞으로 모은 손에 이마를 붙이며 작게 속삭였다. 왠지 무슨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랑 같이 누워있으니까 좋다”라고 말한 아이는 한참 후에, “고마워”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래야 할 것처럼 작은 손등을 몇 번 다독였다.

“나도 고마워.”

아이는 ‘뭐가?’라고 되묻지 않았다. 그것이 또 고마웠다. 대신 “잘 자”라고 말해줬다. 나도 이 아이에게 두 번째로 “잘 자”라고 대답했다. 처음 만난 날 했던 밤 인사와는 사뭇 다른 어조였다. 내 인사를 듣고 나서야 별빛 두 개는 밤하늘 안으로 숨었다. 곧이어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고르게 움직이는 동그란 어깨를 지켜보다 나는 다시 한번 입속에서 되뇌었다. 잘 자.

내뱉은 목소리가 다시 귀로 들어왔다. 오늘에서야 이 집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내는 것 같았다.


세 번째 주, 금요일


아침은 지난번과 거의 흡사했다. 다들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씻고는 순식간에 아침메뉴를 정했다. 나는 지난번처럼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그런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러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수프 대신 콩나물국-결국 이걸 먹었다-, 샐러드 대신 밥을 먹고 셋이서 등교를 했다. 말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 상처 받지 않을까. 눈을 뜬 직후부터 머릿속으로 말을 다듬기 두 시간. 나는 정문을 지나서야 겨우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저기.”

앞서가던 둘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소리라는 친구가 있는데, 수업 중에는 소리랑 앉으려고 해.”

소리는 나 말고 친구가 없어. 소리가 아이 뒤에 붙어있는 너를 좀 불편하게 생각해. 이 둘 중에 무슨 말을 먼저 할까 고민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아이는 “그래”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넷이 나란히 앉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하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강의실에 도착한 아이와 그는 언제나처럼 창가 쪽 맨 뒷줄에 앉았다. 개강 후부터 3주를 연달아 그 자리에 앉다 보니, 이젠 조금 늦게 가도 으레 비어있고는 했다. 이런 것을 보면 아이는 확실히 여러모로 존재감이 강했다. 나는 빈자리를 둘러보다가 뒷문 바로 앞인, 복도 쪽 가장 뒷줄에 앉았다. 가끔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깜짝 놀라기는 해도, 내 등을 지켜보는 이가 없어 마음 편한 자리였다. 오전 수업은 일주일 내내 신입생 공통 수업이었다. 시작 5분 전쯤에 소리가 들어왔다. 내가 손을 흔들자 마주 손을 들며 내게 다가왔다. 소리는 옆자리에 앉으며 반사적으로 아이 쪽을 살폈다. 나 역시 따라 살폈지만 아이는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금요일은 오전뿐이라 수업 후반이 되자 다들 풀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앉은 채로 몸을 꼬는 학생부터 휴대전화 시계를 거듭 들여다보거나, 뒷자리에서 성급하게 가방을 챙기는 학생도 있었다. 나 역시 얼른 수업이 끝나 점심을 먹고 싶었다. 소리와, 아니면 아이 쪽과, 아니면 넷이서도 괜찮았다. 잠시 후, 수업을 마친다는 교수의 말에 강의실이 부산스러워졌다. 내가 반대쪽 눈치를 살피며 가방을 챙기고 있을 때 교수는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과에서 전달사항이 있다고 하니, 먼저 퇴실하는 학생은 없도록 하세요.”

일어서던 학생들이 교수의 말에 다시 꾸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나가는 교수와 교대하듯 네 명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환영회에서 봤던 얼굴들이었다. 앞장선 두 사람은 학회장과 부 학회장이었고, 임원인 2학년 선배 둘이 그 뒤를 따라왔다.

“전달사항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으니 모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학회장은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신입생 환영회 때는 말을 놓았는데, 공적인 자리여서 그런지 존대였다. 우리는 순한 양처럼 교탁으로 시선을 모았다. 교단에 일렬로 늘어선 행렬에는 도마뱀 선배도 있었다. 선배는 들어온 순간부터 한결같았다. 주로 정면을 보고 있다가 종종 아이 쪽을 힐끔거리고는 했다. 아이도 찌르듯 들어오는 눈빛과 잠시 마주했다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웃음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아이의 얼굴에서 처음 보는 비웃음이었지만 나는 저런 느낌을 전에도 감지한 적이 있었다. 곰곰이 기억이 되살려보니 신입생 환영회 때, 벽과 같은 얼굴로 선배를 마주 보던 그 표정을 봤을 때였다. 무표정과 비웃음은 엄연히 다른 표정이었지만 안에 담긴 감정은 같은 의미였다.

“다음 주 금요일과 토요일에 일박 이일 학과 엠티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참석여부를 받겠습니다. 참석을 희망하는 학우는 참가신청서를 작성하고, 불참하려는 학우는 불참 사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주세요. 학과를 대표하는 입장으로서는, 누구 하나 빠지는 일 없이 전부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 학회장이 본론을 꺼냈다. 아이를 노려보는 선배가 불쾌한 것과 관계없이 나는 참석할 생각이 없었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같은 과 사람들과 어딘가에 놀러 가서 게임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저녁에 술도 마신다. MT가 어떤 것인지, 가서 무엇을 하는지는 사촌 언니에게 몇 번이고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좌절했다. 가고는 싶지만 내가 갈만 한 자리가 아니었다. 혹시라도 대학에서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된다면, 스무 살이 된 내게 마법 같은 일이 벌어져서 전혀 다른 성격으로 된다면, 그러면 가봐야겠다고.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헛된 기대를 품으며 그렇게만 정리해놓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스무 살 성인이 되어 교복을 벗고 대학에 입학한 내 앞에 호박마차는 나타나지는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자각했듯이 술을 마셔도 기겁할 주사만 나올 뿐 소심한 내 성격은 여전했다. 사귐을 방해하는 나쁜 버릇은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으며, 용기마저 부족했다. 물론 친구는 몇 생겼다. 아이와 그, 그리고 소리. 하지만 그와 소리는 넘기더라도 사교성 덩어리일 것 같은 아이마저 실상은 나와 비슷했다. 환영회 다음날부터 동기들이 꾸준히 다가왔지만 아이는 시종 웃는 얼굴로 온갖 제의를 거절했다. 곁에서 봤을 때 대단한 기술이었다. 기분 나쁘지 않게, 서로 불편하지 않게,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지만 함께 몰려다니지 않는 아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는 동안 동기들은 아이를 마치 현역 연예인처럼 대했다. 거절하는 아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집요하게 달라붙는 일이 실례라는 공감대가 펴졌다. 그렇게 한 달쯤이 지나자 다들 둘을 어느 정도 놔두는 분위기였다. 다른 의미지만 나와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둘이서만 같이 앉고, 둘이서만 얘기하고, 둘이서만 밥을 먹는, 어느 학과에나 있는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그룹 중 하나였다. 비록 자의와 타의가 섞여있긴 하지만 말이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불참을 결심했다. 소리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차라리 우리 둘이 어디 놀러 갈까? 그럴래? 말을 안 해도 왠지 이런 상황에서만 찰떡 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눈빛이 오갔다.

학회장은 할 말을 다 했는지 그대로 참석여부를 받기 시작했다. 학과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참석률을 높여야 했기에 이렇게 거절하기 어려운 자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불참 사유서라는, 듣도 보도 못한 종이 낭비까지 동원하면서. 어쩌면 신입생 몇과 미리 말을 맞춰놨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먼저 참석 의사를 밝히면 선배들이 동조하여 고민하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역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입생 몇몇이 손을 들기 시작했다. 지난 환영회에서도, 그리고 수업 중에도 말이 많고 활발한 학생들 위주였다. 마당발인 남학생도 껴있었다. 임원들이 손 올린 학생들에게 들고 있던 신청서를 나눠줬다. 대여섯 명이 먼저 손을 들자 따라 올라가는 나머지 손들이 많아졌다. 종이를 나눠주는 움직임도 바빠졌다. 1분이 지나기도 전에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책상에 종이가 올라가 있었다. 끝까지 손을 들지 않은 학생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굳은 입술로 불참 의사를 강하게 표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찌할지 고민 중인 사람도 있었다. 나와 소리도 그랬고, 아이와 그의 책상도 비어있었다. 교단에 서서 빈 책상을 살피던 학회장의 시선이 다른 학생이 아닌 아이에게서 멈춰 섰다. 학회장이 바라보는 곳으로 다른 학생들도 고개를 돌렸다. 졸지에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아이에게 쏠렸다. 불참할 줄은 몰랐는지 모두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너도 불참할 거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학회장이 물었다. 왜인지 존대가 아닌 다시 반말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눈빛은 같이 가자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안 돼. 거절해. 나는 입술만 달싹였다.

“잘 모르겠어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아이가 학회장에게 말했다. 명확한 거절이 아닌 모호한 대답이었다. 순간 명치 부근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몄다.

“지난번에 그런 일도 있었고, 가도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또 괜히 분위기만 흐릴 것 같고.”

아이는 도마뱀 선배를 힐끗대며 태연하게 말했다. 선배는 무표정한 척하는 얼굴로 아이를 보고 있다가, 아이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괜찮아.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내가 약속할게. 그럼 참석할 거니?”

아까부터 학회장은 이상할 정도로 애원조였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그제야 처음으로 옅게 웃었다. 아이 특유의 밝은 웃음이었지만 나는 왠지 명치에 있던 불안감이 뒤통수까지 치밀었다.

아이는 “그럼 이 친구와”라며 곁에 앉은 그를 가리켰다. 다음에 “저 친구들이 가면 저도 갈게요”라며 이쪽을 바라봤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거였구나. 아까 선배들이 종이를 안고 들어올 때 바로 소리 손을 잡고 뛰쳐나갔어야 했는데. 뒤늦은 자책을 해봐도 이미 많은 시선이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리막에서 올려다보는 물난리 같기도 했고, 검은 천막 위에 희고 동그란 눈알들만 둥둥 떠 있는 무대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보이지 않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압박에 나도 모르게 그를 봤다. 그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시겠지. 리모컨을 눌렀는데 선풍기가 가만히 있겠나. 빈 한숨을 내쉰 내 시선이 다음으로 향한 것은 어째선지 소리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소리는 왜 자기를 보냐는 듯이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소리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착각인지 몰라도 소리는 생각만큼 당황한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아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을 때부터 이미 이 순간을 예상한 것 같았다. 내가 아이의 시선을 미리 예상했듯이 내 시선도 결국 자신에게 올 것임을. 당황한 표정에 비해 눈빛은 평소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어쩌면 자신을 쳐다보지 않았으면 내심 아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시선에 따라 모두의 얼굴도 그를 거쳐 소리에게 향했다. 많은 시선을 받고 나서야 소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채 나와 찔끔찔끔 눈을 맞추던 소리는 결국 항복하듯 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백기를 들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는 그제야 환한 웃음을 지었다. 아이는 그가 서있는 쪽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도 시선을 갈구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무시인지 유대인지 모를 저 관계가 문득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아이마저 교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참석 의사를 밝혔다. 그때까지 숨죽이며 지켜보던 학생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와아 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국가대항전에서 골이라도 넣었나. 이게 어째서 기쁜 일이고, 쟤들이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같이 간다고 해서 자기들한테 떡 하나 더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냉소를 감추려고 두 손으로 눈썹을 긁다가 그가 이쪽을 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기습처럼 눈이 마주친 나는 화들짝 손을 내렸다. 왜? 뭐 문제 있어? 하며 당황하는 내게 그는 시선만 묵묵히 던졌다.

그는 아무 말 없었지만, 왠지 내게 잘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미약하게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알 듯 말 듯한 표정에 나는 시선을 거뒀다. 왠지 명치가 아릿했다. 목 뒤에서 뛰는 맥박이 정수리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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