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네가 왜 여기 있어?"
사람은 일상이라 부를 환경에서 벗어날 예정일 때, 앞으로 흘러갈 방향에 대해 어느 정도 가정을 한다. 사람의 기본 속성은 지극히 관성적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상정하며 이변에 대비하는 것이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말이다. 그렇게 있을 법한 일을 미리 그려보는 것으로 현실과 본인 사이에 있을 충격에 완충장치를 깔아주는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람이 상정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한계가 있고 그에 비해 변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반복되는 경험으로 어느 정도의 상정은 가능하지만, 모든 것을 대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상정하지 못한 변수는 아무 대비가 없을 때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또 다른 변수들을 불러들여 종래는 전혀 예상 못한 곳으로 사람을 데려다 놓는다.
내 경우도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불쑥 날아온 공에 등짝을 맞는 것보다, 앞쪽에서 얼굴로 날아드는 공에 눈을 질끈 감았는데 배에 맞았을 때가 더 사람 넋을 빼놓고는 한다.
일곱 번째 주, 금요일
MT는 3주 전으로 훌쩍 흘러갔다. 그다음 주부터 바로 중간고사 준비 주였고, 그 뒤로 2주 동안이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중간고사가 모두 끝난 주의 금요일. 아직 시험을 끝내지 못한 그를 놔두고 나는 아이와 먼저 정문으로 내려왔다. 배고파 보이는 아이를 끌고 온 곳은 정문 앞 토스트 가게였다. 매일 얻어먹기 미안해서 한 번이라도 더 들려야 했다. 시험을 보느라 허기졌던 우리는 그를 기다리지도 않고 주문한 토스트를 먼저 먹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자.”
삼각형 모양의 토스트를 세 입 째 베어 물다가 나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빵을 둘러싼 종이를 넘어 손으로 접근하려는 투명한 초록 소스에 신경을 쓰느라 그 전 문답에서 놓친 것이 있었던가. 빠르게 기억을 돌려봐도 “오늘 뭐해?”라는 질문에 “별 일 없어”라고 알맞은 대답을 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 역시 어떻게든 손에 소스를 묻히지 않으려고 악전고투 중이었다. 둘 다 결국은 끈적끈적해진 손가락을 동봉한 사각 냅킨으로 문지를 거면서도 이 음식은 매번 사람에게 묘한 오기를 불어넣었다. 내가 토스트를 열심히 베어 무는 것도 아니면서 답이 없자 고개가 이쪽을 향했다.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는 담담한 눈빛에 나는 잘못한 것처럼 어깨가 흠칫 올라갔다. 어제도 저녁 같이 먹었는데. 잠도 같이 잤고. 오늘 금요일인데.
“너희 집?”
“아니. 우리 집.”
“지금?”
“이거 다 먹고. 가면서 먹으면 흘리잖아.”
이미 네 손등으로 떨어졌다는 말은 쏙 집어넣고, 나는 고개를 도로 떨어트려 한 조각을 더 베어 물었다. 앞니와 손의 압력이 부딪히는 중간에서 소스가 울컥 튀어나와 종이를 건너뛰고 손으로 떨어졌다. 벌레가 앉은 것처럼 손을 허공을 향해 털어냈다. 어느새 다 먹은 아이가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내 손을 꼼꼼히 닦아줬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이는 음식 먹는 속도가 빨랐다. 이렇게 둘이 먹을 때는 물론이고 셋이 먹을 때마저 가장 먼저 밥그릇을 비우고는 했다. 특별히 서둘러 먹는 것 같지는 않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식사를 끝낸 후였다. 밥을 먹을 때 아이는 이후에 중요한 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좋아하는 TV를 틀어놔도 보지도 않고 그릇부터 비웠다. 덕분에 아이가 닦고 있는 내 손에는 아직 반도 먹지 않은 토스트가 들려있었다.
그때 정문 너머에서 그가 달려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걸어와도 이 아이는 어디 도망 안 가는데, 케플러의 두 번째 법칙에 충실한 그는 저렇게 잠시라도 떨어지면 저 혼자 헐레벌떡 급했다. 아니지, 오늘은 도망가는 건가. 코앞까지 뛰어온 그가 내 손에 든 것을 조금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물티슈를 휴지통에 버리며 말했다.
“오늘은 먼저 가.”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내린 축객령이었다. 그의 눈이 동그래지자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같이 집에 갈 거야.”
아이의 단호한 말에 그는 드물게 대꾸를 했다.
“우리 집?”
“아니. 우리 집.”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까 내 표정이 어땠을지 쉽게 그려졌다. 의미를 담은 그의 눈길을 애써 무시하며 나는 서둘러 토스트를 베어 물었다.
“많이 들어요.”
고운 목소리에 나는 젓가락 들어 올리는 동안 거듭 고개를 숙였다. 잘 먹겠다는 인사는 그보다 몇 번을 더 했는지 모르겠다. 식탁은 내가 밤을 새웠던 강의실 테이블만큼 컸다. 이쪽에서 반대쪽 사람의 밥그릇에 손에 닿지 않을 정도였다. 현란한 무늬가 들어가 있는, 말 그대로 드라마에서나 봤던 고급스러운 식탁이었다.
식탁뿐만 아니라 아이의 집도 그랬다. 거실과 현관도, 정원과 대문도, 심지어 마당에 있는 흔들의자마저 좋아 보였다. 버스에 내렸을 때부터 높게 솟은 담장들을 보며 주눅이 들었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꼈다. 그나마 음식이라도 익숙해서 다행이었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매일 스테이크나 초밥을 먹으며 살리는 없으니까.
“그래.”
두툼한 중저음으로 말문을 연 아버님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아이가 아가씨네 집에서 자주 머문다고요?”
나는 다 씹지도 않은 밥알을 억지로 삼키고 미리 연습한 대로 대답했다.
“네.”
“입학하고 집에 잘 안 들어온다 했더니, 이런 귀여운 친구를 사귀었군요.”
아버님은 기쁜지 허허, 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 아이 때문에 불편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아닙니다. 저도 혼자 지내는 게 무서웠는데, 같이 있어서 좋습니다.”
책을 읽듯 경직된 나를 아이는 위태위태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을 맺은 아버님은 다행히 식사가 끝날 때까지 다른 말이 없었다. 나도 그제야 아이의 응원을 받으며 착실하게 밥공기를 비워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아버님은 자리를 비켜주듯 먼저 식탁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치워준 식탁에 여자 셋만 남게 되자 나는 그제야 한숨을 몰아쉬었다.
“거짓말하게 해서 미안해요.”
나는 과일을 씹다가 당황한 얼굴로 아이를 돌아봤다. “엄마는 알아”라는 말에 그제야 어머님께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내 대답을 들은 어머님이 손을 내밀었다. 손끝이 내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손을 내밀자 어머님이 내 손을 잡았다.
“그 학생도, 아가씨도 우리 애에게 귀한 친구라고 들었어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제가 신세 지는 게 더 많아요.”
나는 뒷말을 붙일까 말까 고민하다 그냥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이런 말 하는 건 이상할 수도 있는데, 그 친구도 위험한 친구가 아니라,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제 말은, 그 친구는 아주 안전한 친구예요.”
맹수 사육사나 할 법한 말을 횡설수설 내뱉는 나를 보며 둘은 나란히 웃었다. 역시 너무 주제넘은 말이었나. 하지만 아이는 내가 무슨 생각 중인지 아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걔에 대해선, 우리보다 우리 엄마가 더 잘 알아.”
영문을 몰라 어머님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님은 내 눈을 바라보며 “우리 애도, 그 학생도 잘 부탁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내 손을 놓은 어머님은 웃으며 거실로 나갔다. 어떤 의문도 해결되지 않았지만 “방 구경할래?”라는 말에 일단 따라 일어났다.
집안에서 계단을 올라가는 생경한 경험을 하며 이층으로 갔다. 길지 않은 일자 복도에 문만 두 개 있었다. 아이가 안쪽에 있는 좌측 문을 향해 걸어갈 때, 내 눈은 이미 지나온 우측 문에 닿아있었다. 내가 멈춘 것을 알았는지 돌아본 아이가 말했다. “거긴”하고 잠시 단어를 고르던 아이는 곧 “아버지의 아들 방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의외라는 뜻으로 입을 벌렸다. 아이가 남매인지 처음 알았다. 누가 봐도 외동일 듯한, 부모님의 사랑을 홀로 독차지하고 자랐을 것 같은 이미지였으니까. 하지만 단어와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사정이 있어 보여서 더 묻지 않았다.
들어선 방은 깔끔했다. 아니다. 깔끔하다 못해 텅 비어 있었다. 침대와 책상, 서랍장을 빼고는 전후좌우 천장과 바닥까지 모두 구름이 떠있는 하늘 벽지였다. 그림이 아니라 실사였다. 여기에 비하면 그의 방 인테리어는 양반이었다. 거기는 한 면만 장미 벽지일 뿐, 사람 사는 방 같았으니까. 여기는 뭐랄까, 방이라기보다는 잠을 잘 뿐인 공간으로 보였다. 실례인 비유지만 교도소 같았다.
“좀 특이하지?”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문 안에 달린 자물쇠를 잠갔다. 아이의 방문은 문고리에 있는 걸쇠 말고도 두 개의 잠금장치가 따로 달려있었다. 문고리 아래에 덧붙인 튼튼해 보이는 자물쇠와, 문고리 위에 있는 개문 방지 사슬까지. 내가 놀란 눈으로 자물쇠들을 훑자 아이는 쓰게 웃었다.
“너 가두려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나는 화제를 바꾸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짐이 없네.”
“원래 커다란 행거랑 화장대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알지?”
아이의 말에 그의 방에 있던 튼튼해 보이는 은색 행거와 하얀 화장대가 바로 떠올랐다.
“벽지가 음… 하늘 좋아해?”
“저게 가장 덜 공격적이야.”
아이는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미적거리다가 책상 의자에 앉았다.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놀랐어?”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가구나 벽지는 취향이니까, 자물쇠만 빼면.”
아이는 “저것도 취향으로 봐줘”라며 웃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엔 네 방도 가보고 싶어”라는 말에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에서 거실을 지나오는 것이 힘들어서 그렇지, 내부만 따지면 내 방이 훨씬 안온해 보였다.
“내가 어떤 곳에서 지내는지 보여주고 싶었어.”
나는 다시 방을 둘러봤다. 그새 익숙해졌는지, 아까만큼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산꼭대기에 방을 가져다 놓고, 발아래 깔린 구름과 하늘을 감상하는 기분이었다.
“자고 가라고 하고 싶지만, 오늘은 안 되겠다.”
아이는 금세 일어났다. 따라 일어난 나는 아이가 잠금장치를 푸는 모습을 지켜봤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지키는 걸쇠인지 모르겠으나, 느린 손길로 하나씩 해제하는 뒷모습이 꼭 기도를 하는 종교인처럼 보였다. 방을 나서며 돌아보니 역시 기억이 맞았다. 자물쇠 반대쪽에 있어야 할 열쇠 구멍이 없었다. 저 자물쇠는 잠그는 것도 푸는 것도 안에서만 할 수 있었다.
거실에 있는 아버님과 어머님께 인사를 드렸다. 두 분 다 또 놀러 오라며 부드러운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현관을 나와 정원을 거쳐 대문 앞까지는 금방이었다. 돌아보니 아이는 어느새 노트 한 권을 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방에서부터 들고 나왔는데 다른 데 정신이 팔렸던 내가 이제야 발견한 거였다. 대문 앞에서 아이는 노트를 내밀었다.
“내가 쓴 거야. 길진 않아. 한 번 읽어줄래?”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두 손으로 노트를 받았다. 귀퉁이 펜홀더에 하얀 펜을 꽂아놓은 빨간색 표지의 노트였다. 나는 바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조심해서 가.”
“고마워. 저녁 맛있었어.”
아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내 눈을 봤다. 오랜만에 보는, 속을 들여다보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길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주말 잘 보네. 다음 주에 보자.”
손을 흔든 아이는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다음 주에 보자. 늘 주고받았던 말인데 왠지 평소와 다른 무늬가 음각된 느낌이었다. 나는 대문 사이로 아이가 들어간 현관을 바라보다가 이내 얕은 내리막을 내려왔다. 왔을 때의 반대쪽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까 내렸던 정류장에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그리고 내리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발견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아니 있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볼 거라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었다. 놀란 나는 정류장에서 뛰쳐나가 멀어지는 등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올라가던 도마뱀 선배는, 방금 내가 나왔던 대문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