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동일한 방식은 집단의 정서를 만든다.
강수진(에이형) / 어제
언제나 그랬듯이 이팔청춘들의 우악스러움과 시끄러움이 버거워 밖으로 피신한 상태였다. 막 봄으로 접어든 날씨는 바람만 차가울 뿐 따듯하고 화창했다. 오랜만에 공기도 좋았다. 파란 하늘 아래서 점심을 먹고 나니 남은 시간은 십 분이었다. 민주는 언제나 그렇듯 벤치에 배를 깔고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중이었고 유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뭘 하나 어깨너머로 살펴봤더니 민들레 한 송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꽃가루 알레르기도 있는 애가 왜 저러고 있지. 낯선 모습이었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오늘 유리는 왠지 오전 내내 저런 상태였으니까.
도시락 통을 한데 모아놓고 치마를 정리했다. 그새 날아든 꽃씨 몇 개가 주름 사이에 하얀 점처럼 박혀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질러 하나씩 뜯어내는 중에 휴대폰을 보던 민주가 이쪽을 슬쩍 돌아봤다.
“야. 오늘 유리 좀 이상하지 않냐?”
내 말이. 오늘 유리는 이상했다. 아니, 정정해야겠다. 유리는 언제나 이상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이상했다. 삼거리에서 만나 학교로 걸어오는 동안 두 번이나 자전거와 부딪혔다. 지금 양 손목에 팔찌처럼 감고 있는 하얀 파스가 그 흔적이었다. 아닌 듯 보여도 은근히 덤벙대는 성격이니 여기까지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내 가슴께에 한참 시선을 두던 유리가 대뜸 내 리본을 풀러 다시 묶기 시작했다. 길이가 안 맞아서 한 번. 모양이 이상해서 또 한 번. 세 번째 풀었을 때는 늦지 않게 도착한 등굣길이 지각 코앞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처음부터 나쁘지 않았다. 유리가 다시 매 준 첫 매듭은 더 좋았다. 언제나처럼 기계로 짜낸 듯이 완벽한 솜씨였다. 결국 됐으니까 그냥 들어오라는 지도교사의 부름이 있고 나서야 우리 셋은 교문을 통과했다. 안으로 들어와서는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민주 실내화를 신고 들어갔고, 수업 시간에는 멍한 표정으로 창밖만 봤다.
“아침에 세 번이나 불렀는데 결국 못 들었잖아.”
민주는 비밀 얘기를 하듯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 목소리가 작았나?”
“화장실에서도 손 씻고 그냥 나갔잖아. 평소에는 휴지로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닦는 애가.”
내민 휴지도 못 보고 지나쳐서 결국 쫓아가서 닦아줘야 했다.
“무엇보다 아까 점심 먹을 때, 소매에 떨어진 감자조각 다시 주워 먹었잖아.”
그러게. 지저분한 거라면 질색하는 애가. 생각할수록 이상한 점이 속속 머리에 박혔다. 작당모의라도 하듯 한참을 속닥이고 있으니 손끝에 거꾸로 매달린 민들레를 들여다보던 유리가 예고 없이 이쪽을 돌아봤다. 우리는 험담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어깨를 웅크려야 했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자 잠시 머물던 시선이 금세 민들레에게 돌아갔다. 그 모습에 민주는 방금보다 더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진짜 이상해! 평소 같으면 ‘둘이서 뭐해?’ 하면서 노려봐야 하는데.”
그러는 것도 무섭지만 안 그러니 더 무서웠다. 생각에 잠긴 내게 민주는 턱짓을 했다. 왜인지 가서 물어보라는 뜻이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도로 턱짓을 했다. 결국 민주가 먼저 주먹을 내밀었다. 잠시 후, 펼친 손바닥을 원망스럽게 내려다보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서움과 궁금증이 한동안 뒤엉켜 싸웠지만 이기는 쪽은 언제나 궁금증이었다. 돌아보니 민주는 가위를 흔들며 응원 중이었다.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유리 곁에 쪼그려 앉았다. 오긴 했으나 막상 꺼낼 말이 없었다. 우리는 잠시 살랑거리는 민들레를 들여다봤다.
“오늘 아침에.”
톡 하고 꽃씨가 떨어지듯 말을 꺼낸 쪽은 내가 아닌 유리였다.
“평소보다 일찍 깼어. 그래서 조용한 집을 거니는데. 왠지 엄마 아빠가 남 같고. 복도는 낯설고. 언니가 바보 같고. 변기는 차갑고. 오빠는, 모르는 사람 같았어.”
유리는 언제나 천천히 말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오늘따라 말과 말 사이에 간격이 길게 느껴졌다. 마치 닿지 않는 것을 억지로 당겨서 붙이듯이. 나는 소란스러워 보이는 무표정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오빠가 깼어. 나는 잠든 얼굴을 보고 있었거든. 오빠가 나를 불렀어. 언제나처럼 우리 막내, 하고. 그리고 옆에 누우래서 누웠어.”
그쯤에서 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일그러트렸다. 내 얼굴을 본 유리가 설핏 웃었다.
“아직도 징그러워?”
“아니 이해는 하는데….”
나는 뒷말을 삼켰다. 알고 있었지만 들을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고등학생인데. 만약 우리 집 망나니가 내게 그딴 짓을 하면 고민 없이 발로 차 버렸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 처음 만난 유리네 오빠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고등학생이었다. 잠깐의 마주침만으로도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반면 유리네 언니는 낯을 가리는 인상이었다. 방정맞은 어깨춤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다가 우리를 발견한 순간, 당황한 얼굴로 인사 몇 마디만 남기고 곧바로 이층으로 도망쳤다. 첫인상이 그래서인지 이후 만날 때마다 보이는 침착한 모습은 마치 안 맞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해 보였다. 아마 친해지면 온갖 오두방정을 떠는 성격이 분명했다. 유리 말로도 언니는 수다를 좋아해서 대화가 길어지면 말로 얻어맞는 것 같다고 그랬다.
그 조합 속에서 유리는 유독 눈에 띄었다. 서글서글한 오빠와 수다스러운 언니에 비해 유리는 언제나 차분했다. 표정이 많지 않았고 가끔 드러나는 감정도 아주 연하게 번졌다가 금세 사라졌다. 삼 남매는 각자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란히 서있으면 착각할 수 없을 만큼 남매로밖에 안 보였다.
“근데 듣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어렸을 때부터 매일 그랬다며.”
듣기론 유리네 오빠는 언제나 그랬다고 했다. 유리가 떠올릴 수 있는 첫 기억부터 나가거나 들어오면 끌어안고 옆머리에 입을 맞췄다고. 지금도 나란히 누워 수다를 떨고 이마를 다독이며 잠을 재운다고. 그래서 유리도 중학교 때까지 다른 집도 전부 그렇게 지내는 줄 알았다고 했다.
“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어물거리며 물었다. 유리는 잠시 민들레를 들여다보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웃었다.
“무슨 일이 문틈으로 기어 나오다가 냉장고에 갇혔어.”
나는 방금 들은 말을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래 봤자 무슨 말인지 알 리가 없었다.
“심각한 일은 아니야?”
“응.”
유리는 들고 있던 민들레를 내려놨다.
“진짜?”
“진짜. 별일은 아니야.”
유리는 내려놓은 민들레를 다시 집어 흙바닥에 세워 꽂으며 대꾸했다. 나는 묻기를 그만뒀다. 이쯤 했으면 정말 별일 아니거나, 지금은 별일 아닌 것으로 해야 했다. 손끝에 붙은 민들레 홀씨를 털어낸 유리가 내 손등을 두어 번 다독였다. 그리고 그대로 일어났다.
“가자.”
5교시 예비종이 울렸다. 돌아선 유리는 늘 그랬듯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걸어갔다. 눈만 휴대폰에 있던 민주가 따라 일어섰다. 지나가면서 민주의 손등도 톡톡 두드린 유리는 이내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현준 / 삼 년 전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은 정신이 없었다. 한 주가 이틀처럼 흘러갔고 한 달은 한 주처럼 지나갔다. 아이를 보기 위해 내 퇴근시간이 점점 일러졌고, 아내도 자다 깨서 우는 일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몸은 살면서 이렇게 시달렸던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으로 충만했다. 거듭 구겨지다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아내의 존재감도 날로 강해졌다. 그러는 만큼 눈빛이 단단해지고 혈색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렇게 한 해가 훌쩍 지난 어느 날에, 심각한 얼굴로 배를 만지던 아내가 몸 상태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함께 찾은 병원에서, 몇 년째 우리를 지켜봐 온 의사가 본인 일처럼 기쁨을 드러내며, 처음으로 임신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드디어’이기도 했고 ‘기어코’이기도 했던, 너무도 간절하게 원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내 표정이 세차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곁에 앉은 아내는 의사의 선언을 듣자마자 동그란 의자 위에서 온몸을 떨었다. 그것은 환희였고 벅참이었으며, 동시에 나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아내 본인만 알 수 있는 어떤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가슴에 맺혀있던 멍울이 눈물에 녹아 볼을 타고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는 아내를 품에 안고 나 역시 눈물이 터졌다. 불쑥 유한이 떠올랐다. 이제 떠듬떠듬 단어를 읊으며 짧을 문장을 만들어가는 그 모습이 눈앞에 스쳤다. 이제와 필요 없다는 생각은 결코,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이미 우리 아이였다. 우리의 눈으로 들어왔지만 결국 가슴팍을 열어젖히고 나온, 우리가 영혼으로 낳은 아이. 하지만 지금 온몸을 떨고 있는 아내는 어떨까. 분명 나와 같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다.
진료실에서 나온 우리는 한참 동안 대기실 의자에서 마음을 추슬렀다. 임신을 확인한 순간부터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아내가 눈물에 절어 짓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우리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이름은 유빈으로 해요.”
언어의 조각뿐이었지만 용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잠시 품었던 우려마저 내려놓았다. 연정이나 현수가 아닌 유빈이란 이름에서 아내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요. 그럽시다.”
흔쾌한 대꾸에 아내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이 와중에 들어주지 못할 부탁이 뭐 있을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내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유빈이 성은 내 걸로 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답하려던 입을 다물었다. 바로 대꾸하지 않는 나를 살피던 아내가 말을 이었다.
“아버님이 반대하실까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는….”
내 망설임이 무엇 때문인지 느낀 아내가 내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벌겋게 충혈된 흰자 가운데 갈색 홍채가 보석처럼 또렷했다.
“유한이를 차별하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후, “그래도 이 아이에겐 꼭 내 성을 붙여주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그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설득할게요. 우리 유빈이 말고도, 앞으로 낳을 아이들 모두 우리 성을 번갈아 붙여줍시다.”
그제야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하나를 낳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을 텐데, 그럴 수만 있으면 얼마든지 낳을 거라는 의지가 꽉 그러쥔 손을 통해 느껴졌다. 눈물을 멈춘 아내를 부축한 채 조심스레 병원 문을 나섰다. 일곱 달은 순식간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는 여자아이였고, 이름은 이유빈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아내의 마지막 임신이었다.
이서경(에이형) / 어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찻잔 아래서 울렸다. 그 울림에 문득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어머님은 우리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찻잔에 시선을 둔 채 팔짱을 풀지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내버려 둔 잔을 들고 뒤늦은 첫 모금을 들이켰다.
어제저녁, 남편의 연락을 받은 어머님은 짧게 “내일 가마”라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꽃집을 조금 일찍 닫고 들어가니 어머님은 이미 도착해 차를 내리고 있었다. 셋이 마주 앉아 길지 않은 문답들이 오고 갔다. 조금 격양된 남편의 어조와 진정하라는 듯 보충하는 내 설명 사이로 어머님의 건조한 질문들이 끼어들었다. 설명은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김을 띄우던 차가 절반쯤 식을 무렵이었고, 흥분한 남편이 다시 가라앉을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쩔 셈이니?”
단단한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말해야지요”라며 남편이 먼저 답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얘기할 것인지는 나와 남편의 생각이 같았다.
“성인이 된 유빈이에게 말할 겁니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으니까요.”
“어디까지?”
“가족에 관련된 모든 것을요.”
가족이라고 영역을 한정지은 남편의 선언에 어머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럼 유한이는?”하는 물음에는 남편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어머님의 눈이 내게로 건너왔다.
“애비는 말을 안 하고 싶은 모양인데, 자네 생각도 그런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유한이한테도 말할 생각이에요.”
이번에는 남편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지만, 나는 남편의 말을 막았다.
“유한이는 성인이에요. 당사자 없이 결정할 순 없어요.”
남편은 동의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정한 규칙이니까.
여자가 처음 찾아온 날은 오 년 전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유한이 보고 싶다며 어제처럼 대뜸 대문 앞에 서있었다. 그 행패 같은 변덕에 남편은 불처럼 화를 냈다. 평소 잔잔하던 성격 치고 드문 모습이었지만 이해가 됐다. 남편은 두려울수록 분노를 드러내는 성향이니까. 남편처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행히도 그때 유한은 집에 없었다. 흥분한 남편을 먼저 들여보낸 후 여자와 길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 당신 마음도 이해한다고 서두를 꺼냈지만 어쨌든 결론은 거절이었다. 차분하게 이유를 늘어놓으며 보일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여자는 납득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어쨌든 돌아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일시적인 변덕이었는지 다시 찾아와 애달프게 부탁하거나 그러는 일은 없었다. 남편은 일주일쯤 성을 내다 곧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몇 달 동안 수시로 창밖을 내다봤고, 그 여자와 비슷한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제와 아들을 돌려달라는 둥 헛소리가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빼앗길까 봐 두려웠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다만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유한이 그 일로 흔들릴까 겁이 났다. 예민한 나이에 자칫 엇나갈까 봐. 스스로 부족함 없이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그 여자가 나타난 후부터 모자랐던 부분만 계속 눈에 밟혔다. 더 해줄 수 있었는데 못해준 것들, 안 할 수 있었는데 했던 것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최선을 다했든 못 했든, 돌아보면 늘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 년이 지났다. 성인이 된 유한에게 우리는 사실을 밝혔다. 숨기고 싶을 만큼 두려웠지만, 곁에서 손을 잡아주는 남편이 있었다.
“우리 믿읍시다. 우리가 바르게 키웠다면, 아이들은 이 일로 흔들리지 않을 거요.”
사실을 밝히기 전에 남편과 나눈 말에 동아줄처럼 매달렸다. 다행히 유한은 괜찮았다.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듯했으나 그 주가 다 지나기도 전에 우리를 찾아왔다. 마주 앉아서 우리와 시선을 맞춘 유한은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깊은 눈빛으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명확하게 말했다. 사실 이 년 전 그날부터 알고 있었다고 그제야 털어놓았다. 유한을 올려 보낸 우리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서늘해지기 시작한 마당 의자에 앉아, 동네가 거멓게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틈틈이 울었다. 유한의 반응은 감동이었다. 이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를 믿고 기다려준 모습이 우리에게 확신을 가지게 했다. 삼 년 후 유빈이 성인이 되었을 때도, 그리고 유리마저 성인이 되는 육 년 후도 결국 다섯 모두가 웃을 수 있을 거라는 기름종이와 같았다.
그리고 다시 삼 년이 지났다. 나 역시 그 여자에 대해 거의 잊고 살 무렵, 여자는 다시 나타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유한 앞에 직접. 대문 앞에서 여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다른 의미로 마음이 철렁했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얼굴, 어딘가 아픔이 있는 눈빛으로 유한의 시선을 잡고 있었다. 첫 만남일 테니 유한은 알아보지 못했겠지만 유리를 핑계로 서둘러 안으로 숨겼다. 그리고 예전만큼 흥분하지 않는 남편과 함께 여자를 마주했다. 우리 둘 다 이미 확신이 있으니까. 이미 엿봤으니까. 나도 오랜만에 만난 옛 지인처럼 여자를 대했다.
“한 번만, 딱 한 번만 만나고 싶어서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앞 문장이 예민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죄송하다는 뒷말만 귓가에 메아리쳤다. 고개 숙인 푸석한 정수리만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당신이 무슨 사정인지 나는 알지 못해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더 떨어트렸다.
“어떻게 유한이를 내팽개쳤는지 알고 싶지도 않아요. 이제와 왜 보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어미가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죄송할 일일까요. 오직 버린 것이 미안할 일이죠. 나는 뒷말을 삼켰다. 퀭한 눈두덩과 핼쑥한 볼을 보며 알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스며들었다. 내 말에 점점 어두워지던 표정이 마지막 단어를 듣고 순식간에 개었다. 내 눈을 바라보며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다급하게 설명했다. 남편은 입을 다물고 있었고, 나도 잠시 말이 없었다.
“전하기만 할게요. 결정은 그 아이 몫이에요.”
검게 물든 여자의 눈가가 붉게 달아올랐다.
“연락이 없으면 찾아오지 마세요.”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종이 한 장을 쥐어주고 뒤돌아 멀어졌다. 주소만 적힌 작은 쪽지였다. 얼마쯤 내려가던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와 남편을 번갈아보던 여자는 결국 덧붙이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유빈이한테는 유한이랑 유리에 대해, 유한이한테는 몸 상태와 쪽지에 대해 말할 거예요.”
남편은 나를 말리고 싶은 듯 자꾸 입술을 달싹였다. 그에 비해 어머님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일견 생각에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잠시 한쪽 벽에 걸린 액자에 시선을 두던 어머님이 남편에게 말했다.
“네 가정엔 무엇이 없니.”
남편이 그 뜻을 알아듣고 어머님처럼 액자를 눈에 담았다. 일곱 명이 들어있는 가족사진. 그 옆에 가훈 치고는 너무 긴, 일곱 줄짜리 문장. 잠시 후 남편은 글귀에서 시선을 떼며 답했다.
“다 있습니다. 제 생각엔.”
남편의 말에 어머님이 작게 웃었다. “그럼 된 거 아니니”라며 내려놓은 잔을 입가로 들어 올렸다.
“너희들이 올바르게 키웠다면 아이들은 이런 일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지? 어머님의 눈짓을 받은 나도 소리 없이 마주 웃었다.
현준 / 삼 년 전
유빈이 태어나고 다시 두 해가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아내의 몸과 마음은 더 건강해졌다. 마치 건강해졌기에 유빈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 건강해지면 다음 아이도 만날 수 있다는 듯이 왕성하게 스스로를 가꿨다. 움푹 들어간 볼에 살을 찌우고, 신경쇠약에 가깝던 예민함과 결벽증도 없는 것처럼 가라앉혔다.
하나일 때도 그렇게 고생했으니,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이 대수일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안겨있는 아이는 어제와 다른 아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있는 우리 집은 새로운 물감을 추가한 캔버스처럼 찬란해지기만 했다. 아이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자라나는 모습은 기쁨이라는 단어 자체였다. 아이가 크는 만큼 내가 아는 세계도 함께 커지는 기분이었다. 사방으로 끝없이 넓어지는 세상을 아이와 함께 구경하고 만끽하는 행복. 심장이 죄일 만큼 기쁘고 벅찬 만족.
그렇게 아이가 부모를 키웠다. 우리가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유한과 유빈의 손에 우리가 자라났다. 결국 육아란, 아이가 부모를 키울 수 있게 곁에서 조금 돕는 일이었다.
다만 유한이 하나일 때와 달리 둘을 키우는 일은 다른 의미로 쉽지 않았다. 몸의 고됨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문제였다. 더불어 우리가 가지고 있었지만 가진 줄 몰랐던 자격지심이 문제였다. 자라남에 따라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기는 상황에서 우린 예상하지 못한 곤란함과 마주쳤다. 유빈이 유한의 것을 빼앗든, 유한이 유빈에게 양보를 받아야 하든, 둘 사이에 부모로서 중재가 필요한 순간이 분명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종종 빠지곤 했다. 어느 아이도 구분해서 대하지 않았다. 차별하지 않고 모두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지금 상황에서 유빈의 편을 들어도 될까. 이런 상황에서 유한을 혼내도 될까. 나중에라도 사정을 알게 된 아이들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우리가 내린 순간의 판단이 훗날 아이의 기억에 차별로 남지 않을까. 입양했기에 유한이 차별당했다고. 또는 유한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유빈을 오히려 역으로 차별했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런 두려움에 그 순간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그때마다 다른 말이 나오기도 했다. 어느 때는 혼나고, 다음에는 혼나지 않는 등 제각각이었다. 부모가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하니 아이들도 덩달아 혼란스러워했다.
결국 아이들이 여섯 살과 세 살이 되었을 때, 짧지 않은 토론 끝에 우리는 규칙을 세웠다. 그 규칙들은 나와 아내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기준으로 만들었고, 이 집에 사는 모든 인물,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었다. 커다란 종이에 알기 쉽게 적어서 거실에 붙여놓고 나와 아내부터 그에 맞춰 생활했다. 부모가 먼저 하니 아이들도 차츰 따라왔다. 판단의 기준을 통일했고, 상황에 일관적 잣대를 부여했다. 순간의 감정보다 높은 순위로 정한 가치를 우선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같은 규칙을 지키는 구성원들 사이에 동일한 정서가 생겨났음을 깨달았다. 정서라 함은 가정을 관통하는 커다란 흐름이자 일종의 명확한 분위기였다. 신기하게도 그것이 있고 없고는 완전히 다른 집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동안 복잡하던 상황들은 별 노력 없이도 하나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문제는 그렇게 해결됐지만 아내의 얼굴에 언뜻언뜻 스쳐가는 그늘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둘 다 막연히, 이제는 어려울 거라 예감하면서도 그 희망을 놓지 못한 채 지금까지 붙들어왔다. 그리고 더 꽉 쥔 쪽은 나보다 아내였다. 이미 자라나 필요 없는 작은 신발 앞에서, 이제는 놀 나이가 지난 조그만 장난감과 책을 보면서, 창고 정리 중에 작은 보풀이 보송보송 일어난 배냇저고리를 발견하면서 아내의 눈빛은 검게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내고 텅 빈 집에서, 꽃집 앞을 지나가는 유모차를 보면서 나 역시 아내와 함께 넋을 빼놓는 일이 잦았다.
결국 그 해가 지나고 얼마 후에, 우리는 셋째 아이를 입양했다. 여자아이였고, 유한과 같은 혈액형이었으며, 내 요구에 의해 정유리가 아닌 이유리가 되었다. 유리를 데리고 온 첫날, 하원한 아이들이 아내 품에 안긴 유리 곁으로 모였다. “우리 동생이야?”라며 눈을 반짝이는 유한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일곱 살과 네 살이 된 아이들은 자고 있는 유리의 양손을 하나씩 쥐었다. 깨지 않게,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었고, 아직 숱이 적은 옆머리에 입을 맞췄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했던 일을, 아이들이 유리에게 했다.
유한이 왔던 때와 다르게 이제 다섯이 된 그날은 누구도 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