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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싸리나무 담장 5

5. 신뢰할 수 있는 기억은 매듭이 된다.

by 이한얼












현준 / 삼 년 전



그때 내가 고등학생이었나. 하루는 아버지께서 나더러 어디 좀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 트럭 뒤에 나무를 잔뜩 싣고 도착한 곳이 그 텃밭이었어. 웬 나무냐고 물으니까 울타리를 두르실 거라고. 듣자마자 의아했지. 내가 보기엔 필요 없어 보였거든. 누가 여기까지 와서 고추나 깻잎 따위를 훔쳐갈까. 울타리가 있다 해도 훌쩍 넘으면 그만인데.

내가 내키지 않아 하는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아버지는 기준이 되는 감나무 좌우로 다섯 걸음마다 두터운 나무를 박으셨지. 울타리를 지탱할 기둥이었어. 그리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얇은 나무 두 개를 덧 매어 가로축을 만들었지. ‘ㅒ’를 옆으로 길게 늘여놓은 모양새였어. 그렇게 잡아놓은 틀에다 싣고 온 가는 나뭇가지들을 세우셨다. 서너 개를 축에 붙여서 끈으로 단단히 묶고, 다시 서너 개를 붙이고는 또 끈으로 묶으셨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왼쪽은 당신이 할 테니 오른쪽은 내가 하라고.

시키는 대로 시작하긴 했지만 솔직히 귀찮았다.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대충 했지. 기다린 끈 하나를 가지고 나뭇가지 서너 개를 세워 빙글빙글 감고, 다시 서너 개를 세워 끈으로 감았어. 바싹 당겨서 감으니까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더라고. 그래서 귀찮게 매번 묶지 않은 거야. 담장이 시작되는 부분과 끝 부분에만 매듭을 했지.

먼저 마치신 아버지는 뒤에서 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더라. 뭐라 하실 줄 알았는데 별 말은 없으셨어.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얼굴로 남은 끈과 나무를 트럭에 챙겨두셨지. 내심 마음이 불편했지만 가자고 해서 그날은 얌전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에 비가 많이 왔어. 바람도 세게 불었지.












유한 / 오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얼마 전에 다시 만난 소꿉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받자마자 한동안 이해 못할 소리를 잔뜩 늘어놓더니 마지막에는 멍청이라며 고함을 쳤다. 말꼬리마다 진득하게 달라붙은 웃음기를 보면 진심은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뭐라 대꾸할 새도 없이 피곤하다며 뚝 끊어버렸다. 나는 휑한 화면을 보며 멍해졌다. 사내놈이면 한 대 쥐어박기라도 했을 텐데.

잠시 잊어버린 허기가 다시 올라왔다. 가방만 두고 다시 내려가려는데 문득 책상 위에 익숙한 쪽지를 발견했다. 주소가 적혀있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종이였다. 오늘 아침 내가 박박 찢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이 갔다. 하루 종일 틈틈이 매만졌던 자잘한 조각들이 여전히 손끝에 느껴졌다. 내가 가져온 것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면 말해주렴. 줄 게 있다.’


문득 어제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이거였구나. 이제야 오늘 아침 여자의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을 납득했다. 아마 그저께 대문 앞에서 부모님께 이 쪽지를 줬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갔지만 두 분이 혹시 쪽지를 숨길까 봐 오늘 새 쪽지를 우체통에 넣어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발견하긴 했지만 사실 우연이었다. 내게 전달하고 싶었던 거라면 더 좋은 장소가 따로 있었을 텐데. 예를 들어 내 스쿠터라든가, 아니면 내 이름으로 편지를 보낸다던가.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여자의 동기가 아닌 부모님의 동기였다. 정리가 됐다고 말하기 전인데 쪽지를 올려뒀다. 느낌상 아버지는 아니고 어머니가 두셨을 듯했다. 그럼 왜 그러셨을까. 무엇 때문에. 사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으니까. 내가 선택하라는 것. 그리고 생각 정리를 기다릴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 우리가 아닌 그쪽이.

병색 짙던 까만 얼굴이 떠올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멋대로였다. 먼저 손을 놓은 것은 그쪽이면서 이제와 차분히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아픈 것을 무기로 삼아 건널 염치도 없는 간격을 무도하게 밀고 들어왔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이것마저 찢지는 못했다. 이것이 마지막이면 어쩌지. 세 번째 쪽지를 주러 다시 안 오면 어떡하지. 뒤늦게 염치를 찾으며 포기하지는 않을까. 그날 되돌아간 식당에서 홀연히 사라진 것처럼 그렇게.

반듯하게 누워있는 쪽지를 잠시 내려다보던 나는 이내 그것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한명순(비형) / 오늘



“신경 쓰지 말고 일 봐라. 차 한 잔 마시고 내일 다시 오마.”


전화를 끊으며 마당에 들어섰을 때 유한과 마주쳤다. 신발도 온전히 신지 않고 정신없는 얼굴로 현관을 박차는 모습이 어딘가 급하게 나가는 모양이었다. 유한은 곧 대문 안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참 예쁜 웃음이었다. 이 무렵 바라보는 아이들의 표정은 평생 봐온 어떤 것보다 금처럼 빛이 났다. “할머니”라며 달려온 유한은 인사 대신 끌어안았다. 나는 발뒤꿈치가 가볍게 들리는 기분으로 듬직하게 장성한 장손의 어깨에 매달렸다.


“그래. 어디 가는 길인가 보구나.”


내 물음에 유한이 아차 싶은 얼굴이 되었다. 손에 쥔 것을 슬그머니 주머니에 넣는 것이 보였다. 왠지 무엇인지 바로 알아챘다. 그리고 지금 유한이가 어딜 가려고 하는지도. 애미가 앞서갔나 보구나. 하지만 어찌 탓할까. 어미의 마음이 다 그런 것을.

나는 마당에 곧게 서서 유한을 바라봤다. 유한은 아마 기억 못 하겠지만 이 아이가 어릴 적에 조금 모질게 대했던 것이 지금껏 후회로 남을 줄 그때는 몰랐다. 아이의 자라남이 어찌 어른 손에 좌우될까. 아이가 가진 존귀를 어찌 어른 눈으로 판단하려 했는지. 유한은 맑게 갠 얼굴로 나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나는 유한의 걸음을 막아섰다.


“나가던 길 아니었니?”

“나중에 가도 돼요.”


유한은 내부가 일그러진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는 시간 개념이 없다. 이런 일에 나중은 없다. ‘지금’이 지나면 ‘나중’이 아닌 ‘다른 지금’만 있는, 끝없는 지금의 연속일 뿐이다. 미뤄둔 마음은 결코 나중과 만나지 않는다. 나중은 지금이 지나면 오는 것이 아닌, 지금과 연결되지 않은 다른 공간에 있는 포기의 개념이다.


“내 아들이랑 할 얘기가 있어 왔으니 나가봐라.”


나는 멈춰있는 어깨를 두드렸다.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유한은 조금 머쓱하게 코를 문지르고는 “그럼 일찍 들어올게요”라며 정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배웅할 셈으로 정문까지 따라나서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갚아야 하는 죄인으로서 저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유한아.”


내 부름에 막 내려가려던 유한이 걸음을 멈췄다.


“유리 처음 만날 날 기억하니?”


내 물음에 유한은 잠시 안개를 더듬는 얼굴이었으나 금세 입꼬리를 길게 늘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유한이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나도 마주 웃었다.


“그날 유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니?”


유한은 기억을 되살리는 어투로 말했다.


“신기했어요. 그리고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그 갓난아기가 눈앞에 있는 듯 유한의 얼굴은 부드러웠다.


“갑자기 동생이라고 온 그 아이가 정말 동생 같았니?”


유한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동생이구나 싶었던 것 같아요.”


유한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족을 보고 가족이라 느끼는 건 찰나면 충분하지. 굳이 긴 시간이 필요한 일은 아니야.”


고집만 없으면 말이야. 나는 예전에 그 고집 때문에 너희를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렇게 죄를 지었고, 지금껏 이리 후회하는 중이다.


“동생도 그렇고, 부모도, 하물며 자식도 그렇단다. 오래도록 보지 못했어도, 몇 번 못 봤어도, 아주 잠시 마주쳤어도, 혹은 예전에… 아무튼 보는 순간 남이 아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지. 마치 네가 유리를 처음 본 날처럼 말이야.”


얼굴 가득 피어놓은 웃음을 슬그머니 감춘 유한은 조용히 서있었다. 이해했어도 납득하기 어려운 영혼의 떨림이 입술을 굳게 다문 얼굴에 파랑을 만들며 철썩거렸다. 나는 낮게 웃었다.


“내가 이상한 소리를 했구나. 늦었을 텐데 어서 가보렴.”


“예” 하고 대답한 유한은 몸을 돌렸다. 그러나 한 걸음과 두 걸음 후에 다시 나를 돌아봤다.


“할머니.”


나를 부르는 유한과 눈이 마주쳤다. 유한은 잠시 눈으로 바닥을 다졌다. 그리고 나를 보며 버거운 어조로 말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아요.”


나는 눈으로 끄덕였다.


“맞다. 그저 받아들이는 게 더 편할 때가 많지.”


유한의 눈에서는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감정과 이해들이 작은 눈에 수시로 드나들며 어린아이를 괴롭히고 있을 터였다. 나는 뒷말 없이 그저 시선을 두었다. 잠시 바쁘던 유한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닿았다. “다녀올게요”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처진 어깨가 점점 작게 멀어졌다.

유한을 보내고 들어온 집은 왠지 휑하게 보였다. 너무 익숙한 장소인데도 외간 집에 잘못 들어온 것처럼 목덜미에 닿는 공기가 아리게 느껴졌다. 간 것은 유한인데 왜 내가 떠나온 기분일까. 마음을 가라앉힐 요량으로 천천히 차를 탔다. 따듯한 김이 올라오는 잔을 든 채 한쪽에 걸린 가족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작년에 떠난 남편은 사진 속에서 언제나처럼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집에 필요한 것이 저 웃음인데, 조금 빨리 가셨어. 문득 등 뒤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린 것 같아 돌아봤다. 소파에 산적 같은 자세로 앉아 마늘을 까는 모습이 실재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당신이라면 뭐라 그러셨을 거요. 유한이보고 엄마 부자라고 그러다 현준이에게 입이 막힐 테요. 아니면 못 만난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며, 자긴 두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뺑덕어멈 같은 계모라도 있었으면 했다며 웃다가 내게 등짝을 맞을 테요. 설핏 눈가가 아려왔을 때, 마당에서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현관이 벌컥 열렸다. 유한인가 싶어 돌아본 자리에 유빈이 있었다. 유한이 그랬던 것처럼 놀란 눈을 보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졸지에 이야기꾼이 되었구나. 하지만 어른이 벌인 일은 어른의 손으로 치워야 했다. 설령 내 아이가 한 일이 아니어도 내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면 그랬고, 결국 아이들이 해결할 일이어도 그 사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역시 그랬다. 놀랐던 눈이 둥글게 휘는 모습에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뭐라 했더라. ‘배웅과 맞이는 앉아서 하지 않는다’였던가. 아들 집의 규칙이 그렇다니 늙은 무릎이어도 쉬게 할 수 있나.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어딜 가든 주인이 정한 법도를 따르라고 현준에게 가르친 이는 나였다.


“할머니 어쩐 일이세요?”


신을 벗으며 묻는 유빈에게 나는 가볍게 농을 쳤다.


“내가 못 올 데 왔냐.”

“당연히 아니죠.”


유빈은 신을 벗기 무섭게 “할머니!”하며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어이쿠. 나는 이제 나보다 커진 어깨를 쓸어내리며 등허리를 다독였다.


“할미 죽으라고?”


유빈은 “그런 말 마세요”라며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태어난 이후 내게 단 한 번도 낯가린 적 없는 아이였다. 그렇게 보면 참 신묘했다. 유한도 유리도 한때는 나를 어려워해 쭈뼛거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 아이만 유독 그러지 않았다. 그 역시 내 부덕이라는 자책이 짧게 스쳤다.


“엄마 만났니?”


품에서 벗어난 유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못 만났어요. 오늘 모임 있어서 저녁 먹고 온대요.”

“다른 얘기는 없었니?”


그제야 유빈의 표정이 묘해졌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빠르게 스쳐가던 눈이 다시 밝게 빛났다.


“다녀와서 할 얘기가 있으니 일찍 들어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되레 나를 향해 물었다.


“할머니도 아시는 얘기죠?”


마치 이미 뭐라도 알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물어볼까 봐 나는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나는 모르겠구나.”


내 부정에 유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보며 옅게 웃었다. 그 얼굴과 마주 했을 때 나는 불쑥 깨달았다. 이 아이는 이미 알고 있구나. 지금 이 집안을 휘감고 있는 불온한 공기가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됐구나. 이것은 나이와 함께 체득하게 되는 일종의 직감이었다. 어떻게, 언제, 어디까지로 생각이 이어졌으나 나는 곧 접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유빈이 알고 있다는 점이 아니었다. 언제든 알게 되었음에도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내가 하는 거짓말에도 티를 내지 않고 넘어가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가슴이 잔잔히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눈앞의 유빈이 내민, 무지의 모습을 띈 감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처음 알게 됐을 때는 얼마나 놀라고 기함했을까. 혼란스럽고 답답했을까. 하지만 이 아이는 기다린 것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 아래는 분명 가족에 대한 진득한 믿음이 깔려있었다. 어떤 이유가 있어 말하지 않았을 거라고, 기다리면 언젠가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해줄 거라는 믿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차례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신뢰. 그건 그들이 쌓아온 역사가 주는 믿음이었고, 한 번도 어기지 않은 가족에 대한 신뢰였다. 모르쇠 웃고 있는 유빈의 얼굴에 이 모든 것이 들어있었다.

부지불식간에 가슴으로 찌르고 들어오는 위로는 언제나 사람을 놀라게 한다. 하지만 그 놀람은 더 큰 감동을 매달고 온다. 이 아이는 지금 스물이었다. 여전히 어리지만 한편 그리 어리지 않은 나이가 된 것이다. 재빨리 마음을 추스른 나는 유빈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 가족사진을 보고도 여전히 뭉개져있던 마음이 빠르게 되살아났다. 오랜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것 같았다. 내 표정을 본 유빈은 괜히 머쓱한지 코를 문지르고 있었다. 어쩜 가족이 아니랄까 봐 이런 것마저 제 오빠와 같은지.

내가 먼저 소파에 앉아 찻잔을 들자 유빈이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았다. 조금 식은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평소보다 더 구수하게 느껴졌다.


“유빈아.”


나는 기뻤다. 기분이 참 기뻤다.


“할미가 어렸을 땐 싸리나무로 담장을 지었어. 싸리나무 아니?”


나와 눈을 맞춘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담장을 만들 때 싸리나무의 두께는 아무래도 좋단다. 얇은 것도 두꺼운 것도 가리지 않고 가져오지. 그걸 미리 박아둔 나무 대 곁에 하나씩 세우는 거야. 높이도 그리 상관없단다. 조금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너무 긴 것만 잘라내며 몇 개씩 묶으면 돼.”

“왜 싸리나무였어요?”


유빈이 물었다.


“굳이 싸리나무일 필요는 없어. 그게 흔했고 가벼워서 옮기기 쉬웠거든. 제법 단단하기도 했고. 틀이 되는 나무 대가 잘 박혀있고, 끈으로 튼튼히 묶어주기만 하면 어떤 나무도 담장이 되지.”


그 말을 하며 나는 찻잔 위에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매듭을 촘촘히 묶는 거야. 매듭이 성기거나 듬성듬성하면 비바람에 담장이 우수수 풀리기 일쑤거든. 귀찮아도 몇 개마다 꼼꼼히 묶어둬야 바람에 매듭 하나가 끊어져도 이가 나간 그 부분만 다시 고칠 수 있지.”


입을 닫고 가만히 듣는 유빈을 보며 나는 잔을 내려놓았다.


“가족을 하나로 묶는 건 핏줄이 아니야. 혈액형이나 피부색은 더욱 아니지. 한 집에 살며 서로 묶은 매듭이란다. 그게 가족을 가족답게 하는 거야.”


유빈은 온몸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말에 온통 집중하여 한 마디씩 꼭꼭 씹어 삼키는 듯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네 매듭은 무엇이니? 지금껏 네 무엇이 가족을 가족이라 생각하게 했니?”


기준을 세우는 것도, 규칙을 지키는 것도 관계가 단조로울수록 쉬웠다. 대표적으로 부모가 그렇다. 부모는 부모와 아이라는 단일 관계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데 평등한 기준 하나만 있으면 된다. 기준이 확실하니 규칙을 따르기도 어렵지 않다. 반면 아이는 부모와 달랐다. 외동이어도 부모보다 어렵고, 형제라도 있으면 더 어려워졌다. 특히 유빈처럼 중간에 낀 관계일수록 부모와 오빠와 여동생간의 개별적인 관계에 따라 여러 기준이 필요했다. 그만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했다. 유빈에게는 그런 점이 내내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만큼 화목하게 지낸다는 것은 이 가정에 유빈의 엄청난 의지와 정념이 녹아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녀가 여럿인 부모의 역할은 중요하다. 단일 관계인 부모는 다중 관계를 맺고 있는 아이를 납득시킬 수 있을 만큼 기준에 더 철저해야 한다. 평등함 하나로 쉽게 생각하고, 동일한 잣대를 자신과 아이에게 동시에 적용하면, 그 당연함은 아이에게 반드시 상처를 입히게 된다. 아이가 아직 하지 못하는 것을 부모는 쉽게 할 수 있다. 부모가 당연하게 하는 것을 아이는 아직 당연하게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모두 같은 잣대로 대한다는 것은, 부모는 쉽고 아이는 어렵게 지낸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부모 자신에게 적용하는 잣대는 아이에게 들이대는 잣대보다 훨씬 엄격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채 본인 입장에서만 너그러운 기준을 정해놓고, 대화와 소통 없는 규칙에만 맞춰 살면 아이는 부모와 형제 사이에 끼어 여러 기준에 허덕이게 된다. 일관적인 평등함은 아이의 발목은 붙잡은 족쇄가 되고, 부모가 가진 관념이 아이의 정수리를 누르는 벽돌이 된다. 부모가 눈치 채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그 기준 안에서 홀로 무너지게 된다. 그제야 부모는 의아해진다. 평등하게 대했는데, 내 생각에 옳으니 그리 행동했는데 왜 저럴까. 그런 일방적인 시선으로 상처를 건드리면 상처가 돌아온다. 부모는 아이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는 상처를 이해받지 못하며, 결국 부모도 상처 받게 된다. 그러다 서로 납득 없이 받아들이거나 혹은 체념하게 되는 것이다.

가정은 그렇게 어그러진다. 부모들이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쉬워 보이는 단일 관계가 가정 안에서는 더 어렵다. 어렵지 않아도 되는 입장인데 어렵게 지켜야 하니까. 쉽게 살 수 있는데 쉽지 않게 살아야 하니까. 내가 부모니까, 내가 옳으니까 별 고민 없이 화내고 다그쳐도 되는데 크게 숙고하며 아이의 속내를 들여다봐야 하니까.

그런 만큼 내가 앉아있는 이곳은 얼마나 찬란한 가정인가. 배웅할 때 애써 일어나는 것부터 다음 사람을 위해 화장실 신발을 돌려놓는 것까지 얼마나 번거롭고 어렵게 사는 부부인가. 또 그런 부모에 화답하듯 아이들은 어찌 이리 반듯하게 자리하는가. 오히려 부모의 속내를 읽고 가슴을 다독이며 기다리는 모습이 어쩜 그리 마음 겨운가. 문득 가족사진에 들어있는 면면이 모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스스로부터 어렵게 구속한 부모와, 그 부모의 진가를 깨닫고 따라온 아이들이 내 자식들이라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뿌듯했다.


“유빈아.”


그때까지 생각에 빠져있던 유빈이 고개를 들었다.


“집의 안팎을 구분하는 건 핏줄이 아니라 담장이다. 그리고 가정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정서가, 그 집의 싸리나무 담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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