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본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거 보라는 듯이. 직접 해보니 어떠냐는 듯이. 그 표정이 퍽 익살스러워서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한바탕 웃어넘긴 우리는 정리를 시작했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치우고, 굴러간 바구니와 자루를 챙기고, 텃밭 위에 새로운 비닐도 씌웠다. 아버지는 손을 움직이며 그랬다. 밭을 망치는 모두가 반드시 나쁜 마음인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여기가 사유지인 줄 모르고 들어오기도 하고, 강이나 하늘에 시선이 팔려 본의 아니게 작물을 밟거나 밀치는 경우도 있다. 비닐을 찢거나 막 싹을 피운 어린 줄기를 꺾는 것이 작은 동물이거나 바람에 날아온 나뭇가지일 수도 있다. 그리고 혹여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어도, 잘 관리된 담장이 있고 없고는 다르다. 물리적으로 완전히 막을 수야 없겠지만 심리적으로 견물생심을 줄여준다. 이건 사후뿐만이 아닌 사전을 위한 담장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쓰러진 나뭇가지를 세워 매듭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담장은 매듭이 많을수록 비바람에 잘 버틴다. 그건 비단 담장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와 많은 매듭을 묶을수록 관계는 견고해진다. 백 개의 매듭을 묶어놓으면 살다가 닥치는 풍파에 아흔아홉 개가 끊어져도 남은 하나로 인해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 그리고 깨지지 않은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매듭을 수복한다. 친구도 그렇고, 부부도 그렇고, 사회적 관계도 그렇고, 가족마저 그렇다. 관계에서 매듭은 신뢰다. 신뢰는 서로가 정한 약속, 즉 규칙을 거듭 쌓으면 만들어진다. 규칙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규칙을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마지막 매듭을 잡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주어 묶느라 손에 붉은 자국에 이곳저곳 남았다. 금세라도 하얀 물집이 떠오를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문지르며 담장을 살폈다. 아버지가 세운 것과 비슷한 모습이 됐다. 나뭇가지를 흔들어봤다. 매듭에 걸려 단단했다. 그럼 바람에 치어도 쉽게 느슨해지지 않을 것이고, 매듭 하나가 풀려도 다른 매듭들이 가지를 잡아줄 것이다. 어제처럼 맥없이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돌아보니 팔뚝에 끈을 감던 아버지가 나를 향해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처럼 장난스러운, 아버지다운 웃음이었다.
유빈 / 오늘
할머니는 잠시 후, 차를 모두 마시고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겠구나.”
그러고 배웅을 받으며 조용히 돌아갔다. 그 이후로 나는 부엌에 잠시 머문 시간 빼고는 내내 방에 있었다. 텔레비전도 켜지 않고, 휴대폰도 쥐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 아까 할머니와 나눈 대화를 계속 되돌려봤다. 그 사이 창밖은 어둑해져 있었다. 머리 위부터 하늘이 검푸르게 물들어갈수록 노란 가로등이 점점이 깨어났다. 까맣던 집들도 군데군데 하얀 옷으로 갈아입으며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오빠가 좋아하는 풍경이었다. 하루에 단 두 번뿐이라고, 아무 감흥도 없는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몇 번이나 억지로 봐야 했던 그 장면이었다.
멍하게 바라보던 어느 순간, 나는 이 장면이 왜 멋진지 드디어 깨달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거기에는 같은 장면이 없었다. 가로등이 하나씩 켜질 때마다, 집이 하얗게 밝아질 때마다 창밖은 매번 다른 모습이 되었다.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집들 대부분이 하얗게 깨어날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덧 눈앞에 싸리나무 담장이 수백 개가 모여 있었다. 오빠의 말과 할머니의 말이 가슴 한복판에서 강하게 부딪혔다. “이게 그거구나” 하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분명 누군가의 눈에 우리 집도 그럴 것이다. 수백이 모여 있지만 어느 하나 같은 집이 없는, 별별 크기의 싸리나무로 둘러싸인 담장으로 보일 터였다.
그때 저 멀리 언덕길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어울리지 않게 힘없는 발걸음으로 걸어오는 이는 오빠였다. 오빠가 마당으로 들어올 때까지 나는 시선을 떼지 않고 지켜봤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악!”
오빠가 보이자마자 나는 대뜸 소리를 질렀다. 내 목소리에 신발을 벗던 오빠의 고개가 번쩍 올라왔다. 나는 놀란 눈동자를 향해 “왔어?” 하며 웃었다. 오빠는 잠시 내 얼굴을 살피더니 이내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생. 웬일로 일찍 들어왔네.”
그 순간, 오빠에게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강하게 풍겼다. 축 처진 어깨보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어떤 위화감이었다.
“난 주로 일찍 와. 오빠가 자주 늦지.”
위화감을 무마하기 위한 내 콧방귀에도 오빠는 그저 웃음을 흘렸다.
“맞다. 위로주 마셔야지.”
뒤늦게 깨달은 듯한 오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로주. 그렇긴 했다. 누굴 위로해야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가방만 두고 그냥 와.”
내가 부엌으로 앞장서자 오빠가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냉장고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안주와 맥주를 꺼냈다.
“맥주 밖에 없더라.”
오빠는 상관없다는 듯 익살맞게 웃었다. 둘 다 마개를 따고 한 모금씩 마셨다. 오빠는 섬세한 손길로 치즈를 까서 내게 건넸다. 나는 치즈를 오물거리며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 그러다 곧,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해야 할 말로 다시 정정했다. 듣고 싶은 것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말이 뭘까.
“어땠어?”
손가락 사이에서 땅콩을 문지르던 시선이 내게 올라왔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내 직설적인 질문에 오빠의 눈썹이 구겨졌다가 다시 퍼졌다. 그리고 풀썩 내려놓듯 웃었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나는 대답 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넌 언제 알았어?”
“어제 아침에.”
“어떻게?”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유리가 말해줬어”라고 말했다. 맥주 캔을 흔들던 오빠의 손목이 굳었다. 오빠의 시선이 내 뒤에 있는 장식장에 잠시 꽂혔다. 걔는 언제 알았는데? 걔도 어제 아침에. 어떻게? 엄마 아빠한테. 어제 아침에 유리와 내가 했던 대화가 그대로 반복되었다.
“엄마 아빠는 유리가 아는 거 몰라.”
오빠는 옆목을 주물렀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장식장에서 시선을 거둬왔다. 무슨 의미인지 나는 되묻지 않았다. 치즈를 하나 더 까는 오빠에게 “어땠어?”라고 처음 질문을 다시 건넸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오빠는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간단한 이야기야. 우리 부모님이 처음에 아이가 생기지 않으셔서.”
“아니.”
내가 말을 잘랐다.
“그건 엄마 아빠한테 들어야 할 이야기야. 오빠가 알고 어땠냐고?”
아까부터 왠지 말에 날이 서있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고칠 수 없었고, 고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식으로라도 나는 저 사람에게 배신감을 표출하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하고 운을 뗀 오빠는 곧 “처음 알았을 때 좀 놀라긴 했어”라며 덤덤히 시작했다.
“언제 알았는데?”
“5년 전에.”
오빠는 맥주에 시선을 두고 말했다.
“처음에는 오만 생각이 다 들었어. 관계라는 게, 인연이라는 게 어찌 보면 별 거 아닌 일로 결정될 수도 있구나. 내가 오형이 아니라 비형이었다면 부모님은 나 말고 내 옆에 누워있던 오형인 다른 아이를 선택하셨겠지. 그럼 내가 비형이었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에이형이면 어떨까. 내 인생이 고작 혈액형 하나에 좌지우지됐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처음에는 만사 다 부질없어 보이더라.”
오빠는 맥주를 한 입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곧 괜찮아졌어. 이러니 인연이고 이러니 삶이겠지. 마음속으로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까 이후로 가족과 더 잘 지낼 수 있었어.”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한차례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웃고 있는 오빠의 주름이 평소보다 깊어 보였다. 조금씩 흔들리는 어깨너머로 저 사람이 그동안 짊어져야 했던 무게와 넘어왔던 고개들이 얼핏 보였다. 저렇게 말을 해도 그간 어찌 고민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았을까. 단지 이렇듯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번민의 시간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날 날벼락처럼 떨어진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힘들어도 인정하고, 두렵지만 마주하고, 아프지만 온몸으로 끌어안은 사람의 먼지 섞인 체취가 풍겼다. 그런 사람의 가장 곁에 있으면서 지금껏 전혀 몰랐던 자신이 한심했다. 진작 말해주지 않아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장 예민한 나이에 몰아친 파도를 잘 이겨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가장 컸다.
“사실, 방금 만나고 왔어.”
이번에 내 손이 굳었다.
“고작 세 시간 있었을 뿐인데, 잘 모르겠다. 나올 때쯤엔 가슴에 간질간질하더니, 헤어지고 나니까 울고 싶더라.”
울고 싶다 말하면서 소리 내어 웃는 오빠의 말을 끝으로 빈 접시 위에 침묵이 고였다. 궁금증이 해결되면서 내 안의 많은 것들이 함께 정리가 됐다. 이제 와서 배신감과 서운함보다 훨씬 중요했던 것 역시 함께 풀렸다.
홀짝이는 소리와 함께 맥주는 빈 캔이 되었다. 드르륵하며 의자를 미는 소리에 나는 잠겼던 생각에서 퍼뜩 깨어났다.
“그럼 술도 다 마셨고, 유리도 계속 세워둘 수 없으니 나는 이쯤에서 끝.”
뜬금없는 이름에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신발도 벗지 않은 유리가 현관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문소리조차 듣지 못했나 보다.
“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오빠는 식탁을 정리하며 말했다.
“아직 내가 어리니까.”
“역시 우리 유리는 어른스럽네.”
유리의 담담한 대꾸에 오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와 함께 나는 다시 한번 위화감을 느꼈다. 내가 뭘 놓쳤나. 고민하는 동안 유리의 고개가 더 내려갔다.
“얼른 들어와서 씻어. 피곤하겠다.”
오빠가 그렇게 말해도 유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은 아닐까. 오빠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식탁 정리만 하고 있었다.
“우리 동생도 푹 쉬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오빠는 내 앞에 놓인 캔과 그릇까지 전부 걷어갔다. 설거지를 시작한 오빠는 싱크대에, 나는 식탁에, 유리는 여전히 현관에 있었다. 등을 보인 오빠와 고개 숙인 유리를 번갈아보며 아까부터 느끼던 위화감이 점점 강해졌다.
“왜 안 안아줘?”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와 시끄러운 물소리 사이로, 들릴까 말까 한 작은 목소리가 힘겹게 날아와 부딪혔다. 유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다시 말했다.
“왜 우리 막내가 아니라 유리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발음이 뭉개졌다. 어깨부터 시작한 떨림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왜 둘째가 아니라 동생….”
그리고 유리는 말을 놓쳤다. 찡그리는 표정조차 보기 힘들던 집안의 막내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린 채 엉엉 울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오빠는 유리가 돌아왔는데 안아주지도 않고 이마에 입 맞추지도 않았다. 이제껏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나와도 이렇게 술을 마시고 나면 일찍 자라며 꼭 안아주고 머리에 입맞춤을 해주던 사람이었는데.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우리 막내, 우리 둘째도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는 그저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했다.
눈앞에 오빠의 등이 보였다. 조용한 등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릇을 천천히 문지르고 있었다. 지금 오빠는 겁에 질린 상태였다.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면서도 혹시라도 동생들에게 외면당할까 봐. 친오빠가 아니라고 거절당할까 봐. 그것이 두려워서 첫 기억 이후 한 번도 빼놓지 않았던, 늘 하는 인사와 호칭도 못하는 중이다. 우리가 피해버리면 본인이 상처 입는 것보다, 오빠를 피했다는 사실에 우리가 더 상처 입을까 봐. 그래서 안아주고 싶은데 안아주지 못하고 입 맞추고 싶어도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맨손으로 그릇을 닦는 오빠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유리와 눈에 마주쳤다. 이럴 때 자매란 편리했다. 같은 정서를 쌓아온 가족이란 참 대단했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생각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 등을 봐. 저 마음을 봐. 설령 피부색이 다르다 한들, 우리 피가 빨갛고 저 사람이 녹색이라 한들 무슨 상관이야. 우리 오빠잖아. 지금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사람이잖아. 여전히, 가족이잖아. 축축한 유리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눈 역시 그리 말하고 있을 터였다. 바로 맞은편에 서있는 오빠의 등이 부옇게 번지면서 가슴이 아릿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설거지하는 오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엉덩이를 빼지 않고 안았다. 어제도 했던 포옹임과 동시에 오늘에서야 처음 하는 포옹처럼, 그렇게 오빠를 품에 안았다. 다가온 유리도 남은 한쪽을 끌어안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멎고, 물소리만 이어졌다. 흥건한 세제 향 위로 익숙한 체취가 차근차근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