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사진에 항상 글이 같이 있네요.”
“응?”
“집에 사진 올릴 때 사진만 딱 올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서요.”
“아. 요즘에는 다른 걸로 심력이 부족해져서 주로 사진만 올리는데, 원래는 사진만 올리는 건 선호하지 않아요. 어떤 사진이든 짧더라도 글귀를 붙여놓는 편이에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물론 있죠. 사진에 달린 주석이 내게 가져다주는 게 많으니까.”
“예를 들어?”
“사진에 주석을 다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일단 사진이 가진 의미부터 말해야 해요. 좀 길어질 텐데. 10분 정도?”
“시간이야 충분하니까.”
“그럼, 음… 사진은 내게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뭐 또 세 개나 된대?”
“나야 원래 이곳저곳에 이런저런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이니까.”
“…늘 생각하는 거지만 뭐가 됐든 부족하기보단 과해 보이는데 또 요소요소마다 딱딱 이유가 달려 있으니 뭐라 하기도 그러네.”
“이상하다! 마음에 안 들어하는 말투 같은데!”
“그건 아닌데. 뭐, 아무튼.”
“그래, 아무튼. 하던 얘기로 돌아가서, 첫 번째 의미는 사진 그 자체의 가치예요. 다른 거 없이 사진을 봤을 때 떠오르는 심상이나 감정 등을 말 그대로 느끼는 거죠. 있는 그대로의 의미이고, 사진이 가진 본래의 의의로서.”
“그건 다들 그렇지.”
“그리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함께 얘기하는 게 낫겠네요. 두 번째 의미는 주머니이고, 세 번째 의미는 매개체예요.”
“어떻게 달라요?”
“두 번째까지는 다른 사람들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사진을 통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이나 특정 정보를 기록하는 거죠.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들이 주로 하지만 그러고 있음을 잘 못 느끼는 부분인데,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있었던 것 이상의 무엇’을 얻으려는 거예요.”
“음.”
“지금 무슨 말인가 싶죠?”
“ 응, 솔직히.”
“아직 초반부라서. 내가 개념이나 가치관에 대해 설명할 때는 우선 뼈대부터 설명하고 그 뒤에 이해를 돕는 곁가지나 예를 드니까.”
“맞아. 도령이랑 이야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그 부분이야. 뼈대랑 예시의 간격이 너무 멀어서.”
“동의해요. 일단 마저 이야기할게요. 예를 들어보면, 나랑 당신이랑 과거에 함께 갔던 장소. 뭐가 좋을까… 뭐,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최근에 갔던 호수 사진으로 할게요. 이 사진 보면 가장 처음 드는 생각.”
“…좋다?”
“맞아, 그렇지. 하나 더 말해보면?”
“…또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해보자면?”
“…막판에 추웠다?”
“진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어… 또? ...그러고 보니, 도령 최근에 쓴 단편 있잖아요.”
“응.”
“거기 나오는 배경이 여기 같던데.”
“둘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장소 말하는 거죠? 맞아요.”
“읽을 땐 몰랐는데 이 사진 보니까 갑자기 떠올랐어.”
“이야, 마지막은 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어쨌든 기가 막히게 하나씩 다 나왔네.”
“뭐가요?”
“나는 이 사진을 딱 봤을 때 무슨 생각이 먼저 드냐면, ‘좋다, 예쁘다’고 느껴요. 이게 첫 번째 의미예요. 사진을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감상, 느낌, 경탄 등이 마음에 먼저 번져요. 무목적적 합목적성의 의미로 사진이 어떤 계산이나 의도, 목적이 없는 감정으로 그대로 치환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에 대한 주석을 달아요. 그냥 느낀 그대로. ‘좋아. 예쁘다. 고요하다.’ 등의 감상.”
“......”
“그리고 두 번째 의미는 그 호수에서 있었던 일, 우리가 나눴던 말, 그때의 분위기 등등, 이제 과거가 된 일을 기억하기 위한 기록으로 남겨요. 사진은 주머니처럼 기록을 담는 거예요. 기록이니 당연히 주석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이랬고 저랬고,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도 있었다’의 기록.”
“네.”
“그리고 마지막인 매개체는 이 사진이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거예요. 운문이든 산문이든, 소설이든 수필이든, 허구든 사실이든 상관없이, 단지 느꼈던 감상과 있었던 기록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이야기의 시작. 즉, 글의 소재가 되는 거예요. 더불어 이 사진을 보면서 아직 여길 가보지 않은 누군가와 ‘여긴 어때요?’ ‘거기 괜찮았어요.’ 그렇게 대화의 요소가 될 수도 있겠죠. 아니면 어떤 자료의 첨부사진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경험에 대한 증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재방문의 계기가 될 수도 있어요. 이 모든 것이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 매개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진 한 장이 오브제이기도 하고 리포트이기도 하고 동시에 스토리가 된다는 말이죠?”
“정확해. 와, 이제 한 문장 요약을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도령이랑 난해한 추상화 같은 대화를 한지 거의 일 년이 됐으면 이제 이 정도 할 때 됐지.”
“맞아요, 당신 말대로 사진은 내게 예술품이자 일기이자 소재가 되는 거야. 그리고 세 번째 의미인 매개체는 현실에서의 소재뿐만 있는 게 아니라 무의식으로 던지는 낚시찌 같은 역할도 있어요.”
“으응?”
“그러니까... 만약 내가 가만히 있다가 문득 ‘이 호수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쉬울까? 아무래도 어렵겠지. 어제 뭐 먹었고 그제 어디 갔다 왔는지도 금세 까먹는 사람인데. 또 어떤 이야기를 쓰던 중에 갑자기 ‘이 두 사람이 함께 걷는 배경을 이 호수로 해야겠다’라는 생각 역시 마찬가지고. 사람에게 있어서 가시적인 재자극이 없는 과거의 정보는 무수한 겹침 중에 하나가 되고, 그 겹침의 폭이 두꺼울수록 무의식의 바다 아래로 깊게 침전되니까. 하지만 사진이라는 해당 겹침에 대한 낚시찌가 있으면 다르지. 휴대폰을 뒤적이다가 문득 이 호수 사진을 본 거야. 그럼 ‘예전에 이런 내용의 소설을 써보려고 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도 있지. 혹은 글을 쓰던 중에 잘 안 풀려서 인터넷을 끼적끼적하다가 우연찮게 이 호수에 대한 포스팅을 발견한 거야. 그럼 문득 ‘배경을 바다가 아닌 호수로 해볼까? 극 중 시간이 동트기 전 새벽이니, 내가 갔던 그때 새벽에 분위기가 어땠지? 날씨는? 느낌은?’ 하며 가라앉아있던 정보가 의식 위로 불쑥 떠오를 수도 있고. 또 이 장소에서 떠날 때까지만 해도 여기서 보낸 시간이 내내 좋았기에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서울로 돌아온 후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거야. 그러다 문득 사진을 보고 ‘다시 가고 싶다’고, 가지고 있었지만 못찾고 있던 의지를 다시 끄집어낼 수도 있지. 즉, 사진이 내 기억을 이끌어내는 매개체가 되고, 가봤던 그 장소를 다시 떠오르게 하는 좌표가 되고, 또 다른 글의 시작점이 돼. 물론 이런 경우에는 사진을 보자마자 순간 떠오르는 거라서 굳이 주석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주석은 붙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지. 근데 어지간하면 이것까지도 일일이 다 붙이는 편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문득 추억상자를 열었을 때 옛날 사진을 보면서 잊고 있던 사람이나 장소를 떠올리는 것처럼?”
“맞아요. 거기에 추가하면 글에 있어서 창작적 시발점이나 어떤 주제가 되기도 하고.”
“응, 여기까지 다 이해했어요.”
“이게 내가 사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의미예요. 오브제로서 직관적 미학과, 기록의 주머니인 리포트, 그리고 매개체 역할의 낚시찌. 그리고 이 의미와 연동하는 주석을 붙여놓죠. 그래서 내 사진에 붙어있는 주석을 잘 보면 이 세 가지가 순서대로 적혀있어요. 아까 말했던 감상, 기록, 그리고 의지의 순으로.”
“그러네. 그냥 읽을 때는 몰랐는데. 좋았다 혹은 별로였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그리고 되도록 어느 계절이나 어느 시간대쯤에 다시 가보고 싶다, 이런 구성이구나.”
“게다가 주석을 달 무렵의 감상과 나중에 그걸 읽을 때의 감상이 어찌 다른지도 궁금하니까. 한참 있다가 ‘오랜만에 보니까 또 이런 식으로 다르네’라고 추가해놓기도 해. 여기까지 설명이 그리 말끔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괜찮았어요?”
“아니에요. 다 이해됐어요.”
“사실 사진의 의미를 몇 가지로 나눠놓았지만 사실 그렇게 말끔하게 분리되는 건 아니에요. 서로 어느 정도 겹쳐있는 편이죠. 사진이라는 것도 RGB의 배열 패턴으로 어떤 풍경을 기록해놓은 것처럼, 감상은 기록이 되기도 하고, 의지가 기록 안에 포함되기도 하면서 막 섞여있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진에 각각의 주석을 따로 달아놓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 뭉텅이의 주석을 달아놓고 나중에 내가 그 안에서 감상과 기록과 의지를 구분해서 추출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도령이 가진 사진의 활용법이네요.”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네. 살다 보면 묵은 기억을 끄집어내거나 창작에 대한 주제를 던져주는 요소들이 워낙 부족하니까. 그래서 사진 하나라도 활용하려고 버둥거리는 거죠. 그래서 나는 별 잡다한 사진까지 되도록이면 다 주석을 붙여놔요.”
“그렇구나.”
“여기까지가 사진에 주석을 다는 첫 번째 이유.”
“…맞다. 두 개랬지.”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첫 번째 이유가 사진의 가진 의미에 대한 연결 작용, 당신 표현을 빌리면 ‘사진의 활용’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예요.”
“스펙트럼? 다양하게 생각하도록?”
“비슷한데, 그러니까…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뜻은 머릿속에서 생각을 집어내는 능력을 키우는 거예요. 내 식대로 말하면 ‘무의식’에서 ‘의식’의 영향권을 넓히는 과정이죠. 이것은 즉, 스쳐 지나가는 무의식의 표층을 국소적으로 가시화하는 건데… 지금 이 표정은 10%쯤 알아듣는 표정이다!”
“그치? 티 나죠?”
“다르게 말해서, 평소에 머릿속에서 휙휙 지나가는 것들 있죠? 노력하지 않아도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나면 금세 까먹게 되는 것들. 그런 굳이 꺼내놓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굳이 집어서 글로 꺼내놓는 거예요. 안 보이는 생각을 눈에 보이는 글로, 적는 행위를 통해 가시화하는 거야. 그 가시화는 무의식의 영역을 조금씩 의식의 영역으로 이전하는 작용을 하거든. 무의식의 영역과 의식의 영역의 교집합을 늘린다고 표현해도 되겠다.”
“진작 그렇게 말하라고. 아까처럼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어, 이 아저씨야.”
“이건 미안. 아무튼 나는 그 작업을 하고 싶은 거야. 무엇을 위해서인지는 묻지 마요. 나도 아직은 왠지 해야 할 것 같아서 하는 거야. 아무튼 그렇게 휙휙 지나가는 것을 적고 싶은데 알다시피 이게 쉬운 작업이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애용하는 방식이 브레인스토밍과 마인드맵이에요. 정확히는 브레인스토밍으로 시작해서 마인드맵으로 끝나는 과정이지.”
“내가 알기론, 브레인스토밍은 특정 주제에 대한 자유 발언하는 아이디어 회의 같은 거고, 마인드맵은 떠오르는 연관성에 따라 사고를 확장하는 거잖아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의식으로 무의식을 개척할 때 가장 유용한 나침반을 나는 ‘연관성 찾기’라고 생각하거든. 정확히는 ‘무의식에서 건져낸 것 중에서 의식이 지금까지 서로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것들끼리의 연관성 찾기’예요. 내가 생각하는 창의성의 정의도 이와 거의 흡사하고. 근데 브레인스토밍은 여럿이 하는 거지, 혼자 하긴 어렵잖아. 마인드맵도 혼자 하다 보면 어느 정도 나가다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버리고. 그래서 ‘내가 아닌 발언자’이자 ‘외부 입력’이 되는, 눈에 보이는 매개체가 필요해. 내 경험 상 무의식에서 떠다니는 생각을 의식의 영역으로 끄집어내서 눈에 보이게 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매개체의 도움을 받을 때 가장 잘 되더라고.”
“그게 사진이고?”
“맞아. 정확히는 적은 수의 사진보다 아주 많은 사진, 더 나아가서 글 없이 많은 사진보다 주석이 붙은 많은 사진이 필요해. 각각의 사진은 회의 참석자고, 그것에 달린 주석은 참석자의 발언이야. 난 그걸 들으면서 떠오른 것을 적어. 여기까진 브레인스토밍. 그리고 적은 것끼리 연관성을 찾는 거야. 1차로 단 주석과 추가로 단 주석을 서로 비교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 나타나는 주석을 달고, 그것들끼리 다시 비교하면서 연관성을 찾는 거야. 여긴 마인드맵이지. 눈 감고 맵을 그리거나 흘러가는 풍경을 보면서 브레인스토밍 하는 것보다는 사진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을 적어가는 게 훨씬 쉽고, 다양하고, 양이 방대해지더라고. 그래서 별 거 아닌 사진에도 굳이 붙일 필요가 있을까 싶은 주석까지 달아두는 거야. 그럼 수많은 참석자가 떠드는 중구난방인 발언 과정을 통해 의식 속에서 무의식을 개척하는 거지.”
“그렇구나.”
“정리하면 사진의 의미는 느낌, 주머니, 매개체. 그에 따라 주석의 종류도 감상, 기록, 의지. 그리고 사진에 주석을 다는 첫 번째 이유는 사진의 활용법을 위해, 두 번째는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끝.”
“잘 들었어요.”
“이번 건 좀 재미없는 주제였다.”
“아니야. 어려웠지만 재밌었어.”
“궁금증이 풀렸다면 다행이에요. 도움이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고.”
“둘 다. 근데 그 생각의 스펙트럼을 넓힌다는 거.”
“응?”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는데... 그거 잘 돼요?”
“열심히 하고 있고 되기도 잘 되는데 아직 어림도 없다는 게 문제네. 되는대로 많이 하려고 노력했고 또 모아 보면 꽤 많이 한 것도 같아. 근데 막상 정신 차리고 둘러보면 고작 사막에 모래 한 줌인 거야.”
“그거라도 어디야. 무의식은 원래 끝도 없다는데.”
“그래도. 능선 너머까지는 아니라도 내 눈에 닿는 곳만큼은 좀 밝혀놓고 싶은데.”
“욕심이네.”
“맞아. 근데 능력이 안 되니 욕심이라도 부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