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독립투사의 원혼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이유
feat 파묘 2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그냥 흘려 들었으면 한다. 자신을 무명의 술사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다 좀 겁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듣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다지만 그래서는 안된다고 운을 뗐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오랜 술사적 경험과 설명에 의하면 크게는 한 나라, 작게는 한 지역을 휘둘러 감싸고 있는 기운이 있는데 그것은 간단히 말해 원혼이라고 했다. 원혼 하면 흔히 떠올리길 원한이 가득한 악령이라고 여기겠지만 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생전에 이루지 못한 책무가 남아서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그 책무를 마저 수행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의해서도 그렇게 된다 했다. 여기서 원한과 책무는 딱 잘라 구별이 어려울 수 있고 뒤섞여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원한이 강하면 나뿐 기운이 되겠지만 책무가 강하면 수호신 같은 좋은 기운이 되지 않을까? 어떤 경우든 원혼이다.
그런데 원한이 되었든 책무가 되었든, 너무 그 기운이 강하면 원혼이 세상의 일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원혼이 되더라도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에는 원혼의 힘이 세상만사의 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되어 있단다.
그 강력한 기운을 하늘로써도 최대로 막을 수 있는 것이 100년이기도 하고, 그렇게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무리 깊은 원한이나 책무도 사그라들고 잊혀서 거의 이 원혼의 기운은 남아있지 않게 되어서라고 했다. 살아생전에 함께했던 사람들도 100년의 세월이 지나면 다 하직하고도 남을 시간이어서 남겨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집착도 수그러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100년이 지나도 절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은 원혼들의 기운이 있는데 그것이 독립투사의 원혼이라 했다. 지금껏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워낙 악랄하고 처참한 만행과 고문을 당한데다가, 독립투사로 나선 것이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을 위한 사사로운 것도 아니었으므로, 알던 세상 이들이 다 떠난 100년이 지난 시점에도 이 기운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투사로 뛰어들었던 정신과 의지가 워낙 보통사람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강렬한 것이었기에 그 원혼이 절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지금 당장 국권이 일제에 넘어간다면 독립운동에 뛰어들 수 있겠어요? 오히려 서로 나라는 물론 자존심도 팔아가며 더 잘살겠다고 부역하기 바쁠걸요? 이미 그렇게 앞장서서 하고 있는 이들이 뻔히 보이는데 뭐라고 하지도 않잖아요"
그의 말은 가슴이 아프지만 현실이다. 그렇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강렬한 정신과 의지로 조국의 독립에 목숨 걸고 투신한 원혼들이었으니, 원한 아니 책무가 남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원혼으로 남아 이 땅을 맴돌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그는 태풍이 한반도 앞에 극적으로 꺾여 일본을 향하거나 일본이 반성치 아니하고 오만함이 심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지축을 흔들어 지진을 일으키는 것도 원혼의 에너지가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 원혼의 수가 워낙 많고 한이 깊어 가능한 일이었고, 그 원한의 바탕이 되는 정신과 의지는 섬나라의 것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앞서 말한 100년의 원혼의 금기에서 풀리는 것이 바로 지금의 시기가 문제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일제 침탈을 당한 지가 1910년, 3.1 운동이 1919년, 광복까지 수많은 독립투사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 1945년 까지였으니 그 원혼들이 100년의 차단의 막을 깨고 깨어날 때가 바로 지금의 시기가 아니던가?
그래서 더욱 걱정이라고 했다. 지난번 독립투사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옮기려 했을 때 독립투사 원혼들의 분노가 특히 솟구쳤다고 했다. 지금 끊이질 않는 군대의 사건사고는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친일과 망언의 주역이 독립기념관을 맡게 되다니 정말로 큰일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독립기념관이야 말로 그 원혼들이 모여있는 기운이 가장 강한 곳인데,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다지만, 그런 곳에 가장 원혼들의 진노를 사기 쉬운 자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눕는다니 진심으로 안위가 걱정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특히 주술을 믿는 자들이 원혼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은 처사라 한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아도 독립투사의 원혼만은 건들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화를 안고 화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니 제정신이 박힌 인간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짓이고 원혼의 진노를 사, 그 화를 감당치 못해 두고두고 대대로 후회하게 될 일이라고 전했다.
원혼 그런 게 어딨냐고 치부해 버릴 나였지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돈과 권력이 좋아도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있지 않은가? 그 진노가 분명히 하늘을 치고 울리는 천둥소리를 어제 들었다. 그것이 100년을 참아도 사라지지 않는 원혼들의 분노였음을 비로소 깨달으니 건들면 안 되는 것을 건든 분노가 이미 밤공기를 타고 흐르고 있음에 잠을 이룰 쉽게 이룰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