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그렇게 살지마" 수능일 문득 이 말이 떠오릅니다. 어릴 적 전교 1등에게 저는 감히 이런 막말을 던졌었지요. 아주 오래전 일이고 그 이후 그 전교 1등과는 교류가 없었기에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전교 1등이었기에 분함에 더욱 분발, 계속 승승장구하여 수능 같은 것도 아주 잘 보고 누구나 선망하는 그런 대학에 들어갔다가 고시에라도 덜컥 합격하여 다시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아 만약 그랬다면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그 소리가 분에 안 풀려 저를 잡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전교 1등에게 그렇게 대놓고 막말하는 경우 흔치 않았거든요.
아니면 그 이후로 정말 인생 그렇게 살고 싶어도 저주의 말로 인해 인생이 잘 안 풀렸을 수도 있지요. 그 당시는 전교 1등이었지만 그때 반짝했고 수능을 망쳤을 수도,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뭐 그래봤자 어릴 적 일이었기에 별 일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교 1등 지나고 나면 다 한때였지요. 인생 그렇게 살지 마 라는 말도 한때의 치기 어린 충고였고 상대방은 그렇게 살아오던 삶, 그리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디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전교 1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말 새까맣게 잊고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었겠지요. 그것이 저와의 차이점이었을까요?
수능일은 누구나 시험 잘 보라고, 고생했다고 격려의 말을 쏟아 놓지만 그런 흔한 말 말고 오늘도 막말을 늘어놓고 싶은 놀부 심뽀가 슬그머니 올라옵니다.수능도 끝났으니 이제"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고요.
수능 같은 단발성 시험이 그렇게 까지 중요한 이후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인생 그렇게 사는' 분기점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수능을 아주 잘 봤을 경우 교만감이 쩔어서 그때부터 인생을 더욱 그렇게 살게 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그렇지 못하다면 '인생 그렇게 살지' 못하게 되어 앞으로도 쭉 "인생 그렇게 살지마"라는 소리 한 번도 못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인생 그렇게 살지마" 라는 충고 일지도 모릅니다. 수능을 잘 보았건 그렇지 못했건 인생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 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기서 견생이 아니라 '인생'을 콕 집어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이유는 반려견을 비롯한 다른 생명과 질서 까지도 책임지고 마땅히 인간으로 해야 할 삶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개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말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잘못하면 '개 같은 개인생'을 살게도 되니까요. 뭐 요즘 개들은 인생 못지않게 살기도 하는 개들이 있긴 하지만요.
요즘 "인생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은 사실 부모들의 책임이 큰 듯도 합니다. 부모가 먼저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라고 훈계해야 하는데 내 자식만은 "인생 그렇게 살라"라고 살아도 된다고 견생을눈감으며돌봐줄 테니개가 돼도 괜찮다고 부추기는 것이지요. 그래서 정작 부모 눈밖에서는"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것일지도 모릅니다.자식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지 반려견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것을 절대 구분해야 합니다. 내 개가 안 문다고 내 자식이 안 문다고 하면 곤란하지요.
자 이제 올해도 수능이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인생 그렇게 살지 말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지요. 인생은 전교 1등, 심지어 수능 1등, 만점이라 해도 그 당시 그랬을 뿐 그때뿐입니다. 그리고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해도 인생 그렇게 살지 못할 이유도 인생 그렇게 살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막말임에도 불구하고 경계의 의미로 이 말이 다시하고 싶어 졌습니다.
인생 그렇게 살지마
"인생 그렇게 살지마, 행복하게 살아"
수능이 곧 인생은 아니더라고요. 부모의 인생은 더더욱 아닙니다. 인생은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어떤 인생을 살지는 이제 시작인 것이지요. 그래서 부럽습니다. 아직 인생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