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장책 표지 한쪽 모서리가찌그러지고 터져 있습니다. 표지 다음 책장이 뜯겨 나가지그제그로 너저분한 자국이겨우 아문 흉터처럼 보이지요. 그리고 안쪽 페이지에는 지울 수 없는 낙서가 가득합니다. 사이트 주소도 있고, 011로 시작되는 오래된 전화번호도 있습니다. 일본어로 쓴 단어에 한글 해설도 달렸는데악필이지요.이왕 타투이라면 예쁜 문신이었으면 좋았을텐데요. 도대체 이 책은 어떤 서생을 지나쳐온 것일까요?
그리고 무려 2007년에 출판된 책입니다. 27년에서 07년 빼서20년을 어림잡은 후 27, 26, 25 일 년씩 빼 가며지나온 시간을 복잡하게계산을 합니다. 무려 17년이 지났네요. (그러나 책을 다 읽었을 때 저자의 후기가 1994년인 것을 보고 번역이 17년 전이었지 실제로는 쓴 지는 30년이지난 이야기였다는사실에 놀랐지요.) 표지에는 없었지만 책 모서리 그래도 이름은 남아 있습니다.'홀리가든'이라고요. 그런데 저자가 무려 에쿠니가오리입니다. 가오리를 안 것은, 아니 가오리 책들을읽었던 것은 그쯤이었을 것입니다. 대략 20년 전,가오리가훨씬 젊은 모습으로 책의 띠지를 감싸고 있을 적,그때는 저도 그보다 더 젊었을 것이었지요. 하지만 가오리도 저도 이제 띠지를 얼싸안기 어려울 만큼나이는 들었고 띠지는 이미 사라졌지요. 유기견을 구조해 와 치료하듯, 주술을 걸어 이미 굳어 버린 사체를 부활시키듯조심스레 책장을 펼쳐듭니다.
처음에는 책의 제목인 '홀리가든'을 향하여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이름인지 묻기 위해 무언가목적 지향성을 가지고 읽어나갔지만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오래도록 잊고 있었지만 역시 '에쿠니 가오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격적 목적을 내려놓고 내용보다는 문장 하나하나에 몸을 맡기자 편안하게 유영하듯 자연스럽게 물살을 탈 수 있었지요.설사 수영을 할 줄 모른다 해도 몸이 둥둥 떠 오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때로는 어떠한 모양과 색깔의 스웨터에, 어떠한 타입과 소재의 치마에, 심지어 귀걸이의 색깔과 모양과찰랑거림, 스타킹의 소재와 구두의 높낮이, 안경테의 색깔과 모양, 머리칼을 넘기는 습관과 표정 하나까지 세세히묘사되는 글들은 "왜 목적과도 결과와도 상관없는이야기가 계속될까?" 의문을 품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분의 것, 하찮은 것,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을 쓰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후기로써 그 의문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음을 알려주지요. 그 '여분의 것'들은 목점점을 지향하여 나아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이 책이 디테일한 문장 하나하나가 반짝거려숨을쉬듯 시적 유영을따라 물살을 탈 수 있어야하는 글임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속 중심인물인 '가호'와 '시즈에'는 어릴 적부터 각별한 친구로, 지난 세월만큼이나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30대 초중반의 여성입니다. (나이가 정확히 언급되진 않지만 그때의 작가의 나이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각자의 취향과 영역이 명확하기에 예민하고철저히 그 감정선을 넘지 않으며(그러나 때론 침범하기를 반복하며) 친구 관계를 계속하고 있지요. 하루가 멀다 하고 연락하고 만나지만그렇다고 오래 있지 않으며 여자들 사이의 미묘한 질투와 자존심과 짜증과 배려가 공존하는 관계라고나할까요? 지켜보는 남성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 관계에 진짜 살짝 짜증이 날 수도 있음이 유의점입니다.
그러나 호기심거리도 있지요. '가호'에게는 지금은 헤어졌지만 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옛 유부남 애인이 있었고 '시즈에'는 현재 유부남 애인과 장거리 연애 중입이다. 그리고 '가호'의 주변을 맴도는 연하남 '나카노'가 등장합니다. 나카노는 유일하게 나이가 나오는데 20대 중반의 연하남이지요. 지금은 자연스럽지만 30년 전 연하남은 쉽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확실히 '시즈에'의 유부남 애인과는 다른 캐릭터지만 '가호'에게 오히려 깊지 않아 만나는 이유가 되지요. 늘 그렇지만 일본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머리에익숙하게 들어오기 않아서 매번 적응에 시간이 걸리는 듯합니다. 지명같은 것도 마찬가지인데 책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인물과 이름이 겨우 매치가 되어 제자리를 잡아가지요.
책장을 넘겨가다 보니 책을 버린 사람은 책을 끝까지 읽은 것 같지은 않았습니다. 대략 삼분의 일에서 반에 못 미치게 까지 읽다가 아쉽게도 포기한 것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하고 있지요. 왜냐하면 중반페이지 이후로는 17년이 지난 책이었음에도 아직 하얗게반질거리고있었거든요. 아마도 결말을 기대하고 가면 길이 잘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을 바라보았다면 어느 순간 이 차를 벌써 다 마셔버렸음을 아쉬워했을 텐데 아깝지요.
그래서 유부남과의 만남이나 연하남과의 관계는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는 이 책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부남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가, 성난 와이프가 갑자기 등장해 불륜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끌지도 않지요.그 이유는 그때는 풀리지 않았던, 또는 풀 수 없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풀리는 매듭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미묘함은 '시즈에'가 유부남을 만나고 돌아가는 감정에 잘 묘사됩니다. 그립지만 빨리 돌아가고 싶은, 함께지만 홀로이고 싶은, 다소결핍이 공존하는충만함이지요. 그 나이 때의예민함같은 것일 수 도 있겠고요.
아파트도 신축, 책도 신간을 선호하는 시대이지요. 여기 쓴 글도 며칠만 지나면 잘 읽히지 않지요. 새 글이어야 겨우 끼어준다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오래된 책을 읽는 것도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꽤 반가웠습니다. 아마도 20년 전 읽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문장 사이사이의 감미로움을 느낄 수있어서겠지요. 에쿠니가오리도 이제 환갑의 나이이더군요. 나이가 들어도 글은 여전히 젊을 수 있다는 것 , 나이가 젊어도 글은 연륜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둘 모두가 신기하지요.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도 타투 낙서가 있습니다. 상처가 큰 책이었군요. 그렇게 버려져 죽어가는 책이었지만 누군가 그 책을 읽어주었을 때 책은 비로소 생명을 얻고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이 불멸의 불로초인 이유이지요. 무서운 흉터가 있고 못생긴 문신이 있다 해도, 아무리 오래되고 늙은 주름이 가득 이어도, 심지어 주어온 오래된 책이라 해도 책은 그 문장 하나하나, 작가의 이름으로 인해 여전히 아름다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