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
묵시록의 대가
"2025년 노벨 문학상의 수상의 영예는 묵시문학의 대가 헝가리 작가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Krasznahorkai László, 71)에게 돌아갔다"라고 합니다. 무지를 고백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들어보는 작가입니다. 게다가 이름의 발음도 얼마나 어려운지 라슬로 "크-러-스-너-로-르-커-이" 어디 가서 기억이 안 나 노벨상 작가라고 아는척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름입니다. 근방의 도서관에 혹시 책이 있을까 해서 어렵게 이름을 넣어서 검색해 보니 '사탄 탱고'란 작품이 딱 한 권 있었고, 그마저도 누군가 발 빠르게 벌써 예약을 걸어두었더라고요. 노벨상 수상 작가인데 책이 단 한 권 밖에 없다는 것이 놀랍고도 위안입니다. 저만 이 작가를 몰라보았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노벨문학상
특별히 노벨 문학상에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작년에 우리(너무 다정한가요?) 한강 작가가 이 상을 수상했기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전적 문과생이 노벨 의학상이나, 물리학상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는 일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그렇게 의대의대 하면서 정작 노벨상은 의학상이 아니라 천대받는 문학상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 - 아니 1954년생이니 친근하게 할배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 묵시록의 대가란 수사답게 사진을 봐도 뭔가 지옥의 묵시록 같은데서 파견 나온 포스가 느껴집니다. 작가를, 그것도 노벨문학상 작가를, 초면에 외모부터 평하고 나설 무례함으로 인사를 시작할 것은 아니지만 뭔가 처음 이력을 딱 읽는 순간 감출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고 할까요? '사탄 탱고'나 '저항의 멜랑콜리' 같은 작품명에서부터 뭔가 달콤 쌉싸름한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혹 지옥 17층 면접 대기실에서..."
묵시록이란?
그런데 '묵시록'이란 무엇일까요? 오랜만에 듣는 이 단어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묵시록의 묵시(默示)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연중에 뜻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며, 묵시록은 그러한 내용을 기록한 글입니다.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kalupsis)'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주로 종말에 관한 계시를 담은 문헌을 가리켰습니다. 묵시록은 주로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의 계시(묵시)록을 지칭하며, 선악의 대결, 최후의 심판,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상징적이고 예언적인 언어로 기술합니다. 그런데 이 묵시록은 사이비 이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상징과 비유, 숫자, 환상 등으로 이루어진 난해한 것이 묵시록이기 때문에, 이를 마음대로 해석하여 새로운 교주가 구원자나 재림 예수라고 주장하기 딱 좋다는 것이지요. 이는 종말론적 공포와 특정 집단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내세워 신자들을 세뇌하는데 즐겨 악용되어 왔습니다.
예예적(예술적, 예언적) 작품세계
그렇다고 라슬로 "크-러-스-너-로-르-커-이"가 사이비 교주인 것 같지는 않고 절망과 구원, 혼돈과 질서 같은 근원적 주제를 주로 다뤄 이러한 별칭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한림원은 "종말론적 공포의 한가운데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강렬하고도 예언적인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지요. 데뷔작 장편소설 '사탄 탱고'(1985)는 공산주의 붕괴 직전 한 시골 마을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통해, 농장 주민들의 절망과 혼란, 체제 붕괴 이후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저항의 멜랑콜리’(1989)는 한 계곡에 자리 잡은 헝가리 마을에서의 집단적 공포와 광기를 그렸으며, '세헤르의 멸망'(1989) 은 거대한 고래가 마을에 나타난 초현실적 설정을 통해 사회의 불안과 권력의 폭력을 탐구합니다. ‘전쟁과 전쟁’(1999)은 헝가리를 떠나 뉴욕으로 간 남자 주인공의 내면을 마침표 없는 길고 긴 문장으로 서사했고, '불타는 토성'(1999) 은 한 기록보관원이 사라져 가는 문명을 기록하며 인간이 지식과 의미를 남기려는 욕망을 묘사하지요. 최근 작품인 ‘헤르슈트 07769’(2021)는 살인과 방화로 가득한 무정부 상태의 독일 소도시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노벨상 심사위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불가능하게’ 결합된, 단숨에 쓰인 작품”으로 주인공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속 인물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했습니다.
종말의 문장
라슬로 "크-러-스-너-로-르-커-이"는 현대문학에서 가장 난해하면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꼽힌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은 극도로 긴 문장과 단락 없는 서술로 유명해서, '종말의 문장'으로 불리며 절망과 구원, 혼돈과 질서 같은 근원적 주제를 표현하다고 하네요. 이거 번역의 난이도가 상당하겠는데요? 우리나라에 헝가리어 직역본은 아직 없고 영어 또는 독일어 번역본을 한국어로 옮긴 중역본이라 합니다. 문장도 까다로워 번역에 1~2년은 걸린다지요. 긴 문장에 단락도 없다니 실제로 읽으면 정말 숨이 턱 막히는 종말의 맛을 느낄 수 있으려나요? 그에 관해서 글을 쓰고 있으니, 더군다나 스스럼없이 외모와 이름까지 놀렸더니 오늘 처음 들어본,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이 할배와 어느덧 친해진 느낌이 납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느낌? 그것이 그의 예예적(예술적, 예언적) 작품세계가 아닐까 감히 상상해 보지요.
ps : 라슬로 "크-러-스-너-로-르-커-이"의 작품은 대표작 '사탄탱고'(1985)를 시작으로 '저항의 멜랑꼴리'(1989), '서왕모의 강림'(2008)', '라스트 울프'(2009), '세계는 계속된다'(2013)',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2016) 등 모두 6편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출판사 알마)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