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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와 왕자

날마다 날씨

by Emile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습니다. 계란 송송 파 탁탁 엄청 맛있는 라면은 아니고 스프만 넣은 기본 라면입니다. 너무 맛있는 것만 먹다 보면 뭐가 맛있는 건지 구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맛있는 것이 더 이상 맛있게도 느껴지지 않고요. 가끔은 거지처럼 먹어야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진짜 맛있게 느껴지거든요. 때론 거지처럼 먹는 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도 라면은 거지처럼 이라기엔 여전히 맛있지만요.


점심을 먹고 믹스를 커피를 먹고 있습니다. 원두커피에 댈 것은 아니지만 달달하게 한 편의 글을 쓰기에는 설탕이 듬뿍 들어 있지요. 원두커피만 먹다 보면 고급 커피라도 더 이상 맛있게 느껴지지가 않더라고요. 가끔은 거지처럼 맹맹하고 달기만 한 커피도 사양치 않아야 원두커피가 원두커피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래도 믹스커피는 거지처럼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달콤하지만요.


먼지가 오늘도 자욱합니다. 맑고 화창한 하늘을 보고 싶지만 회색빛이어야 도시답다랄까요. 푸르고 햇살이 눈부신 날만 있다면 좋은 날씨와 그렇지 않은 날씨가 구분되지 않지요. 가끔은 먼지가 자욱이 앞도 보이지 않은 날도 있어야 맑고 깨끗한 날씨가 얼마나 소중한 얼마나 지를 알게 됩니다. 거지 같은 날씨가 있어야 환경을 보호할 생각도 하거든요. 그래도 오늘은 거지 같은 날씨라 하기엔 포근해서 산책을 나가지 않을 순 없겠지만요.


거지처럼 점심을 먹고, 거지처럼 커피를 마시고, 거지 같은 날씨에, 거지라는 말이 잔뜩 들어간 글을 씁니다. 글도 마찬가질 거예요. 가끔은 거지 같은 글이라도 많이 써봐야 나중에 왕자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서요. 그래도 거지 같은 글이라 하기엔 너무 많이 써버렸네요.


결국 거지와 왕자는 똑같이 생겨서 서로의 역할을 바꿔보기로 했다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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