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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이 비로 내린다면

날마다 날씨

by Emile

초콜릿 비가 내리지 않아서 다행이지 뭐예요.

끈적끈적하고 시커먼 초콜릿이 비로 내린다면 온이 온통 초콜릿 얼룩무늬로 엉망진창일 텐데, 다행히 하늘에서 비로 내리지 않고 지상에서 살짝살짝 몰래몰래 전달되어서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말이죠.

그리고 초콜릿 데이에 유치하게 초콜릿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도 생각도 하였죠.


그런데 너무 어른스러워 보이는 것은 맞지 않는 듯하여 유치해 지기로 생각을 고쳐 먹었네요. 한때 떨리는 마음으로 초콜릿을 전달한 때도, 또 너나 모두 잘 지내보자고 초콜릿을 나누어 주었을 때도, 그때는 그나마 유치한 마음이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떨리는 마음도 잘 지내보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 어른이 되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초콜릿 이야기조차 하지 않는 것은 너무하잖아요.


사실 어른들이 초콜릿은 더 좋아하는 듯합니다. 유치하다고 하고 주지는 않으면서 받고는 싶어만 하는 것은 어른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 어른들은 초콜릿 비가 내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끈적하고 시커먼 초콜릿이 온통 초콜릿 얼룩무늬로 마음을 흥분시키지 않으니까요.


대신 오후에는 잠시 초콜릿 같은 먼지를 씻어내는 비가 조금 내렸을 뿐이지요. "어른들의 세계는 사랑 아주 조금밖에 남지 않았음"이라도 고백하듯이 아주 조금 내리다 말았네요.


그래도 초콜릿 날이니 초콜릿을 먹어주어야겠죠. 굳이 초콜릿이 발라지지 않은 비스킷을 놔두고 한쪽면에 초콜릿이 시커멓게 발라진 비스킷을 먹고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초콜릿은 비처럼 내려야 제맛이 이죠. 초콜릿에 흠뻑 젖고 온통 시커멓게 초콜릿 얼룩무늬에 초콜릿 향기가 진동하는 게 사랑이니까요. 물론 빨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은 절대 싫어할 일이겠지만요. 사랑은 초콜릿 비를 맞아 초콜릿 얼룩무늬로 엉망진창인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죠. 초콜릿 날이잖아요. 앙.

이만하면 유치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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