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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익은 높은 도수 바람 봄술

날마다 날씨

by Emile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잠들어 버렸습니다.

잠시 동안 기억이 나지 않는 단편 영화 한 편 정도를 본 것 같은 기분 속에 깨어납니다. 상영이 끝났으니 일어나야 한다는 듯이 불빛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초저녁 영화를 본 건지 찍은 건지 잠에 빠졌던 건 아직 덜 익은 바람 높은 도수 봄술에 취해 너무 달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진짜 도수 높은 술을 마신 것은 아니고, 그저 봄바람을 너무 오래 멀리까지 쐬고 왔기 때문입니다.


처음 뚜껑을 연 봄에는 향긋한 봄술 냄새도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아직 다 숙성되지 않은 진한 알코올 기가 강했습니다. 세찬 바람이 바로 그것이었죠. 아직 덜 익은 듯한 높은 도수 바람술을 다 익은 봄술인듯 온몸으로 맞았더니 취기가 올라오지 않을 수 없었나 보네요. 이렇게 몸이 노곤노곤한 것을 보면요.


오늘은 다들 이른 봄 술냄새를 어디서 맡았는지 그 향에 현혹되어 한강가로 나온 이들이 많았습니다. 저들도 지금쯤 다 높은 도수 바람의 취기에 노곤하여 이른 꿈결을 거닐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직은 덜 익은 높은 도수 바람 봄술이었지만 그래도 처음 딴 듯한 그 노곤한 취기는 좋았습니다.

그리고 곧 바람도 익어 가겠죠. 그러면 정말 성숙한 봄술 향에 취해 볼 수 있으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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