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는 초식동물

날마다 날씨

by Emile

이건 비밀인데 하루 종일 '멍' 때리며 보냈습니다.

왜 있잖아요 최소한의 생명 유지 활동만을 한채 먹이 사냥의 의욕을 보이지 않는 날이요.

초식동물로 살고 싶은 날이지요. 육식동물이 아니라 오늘 고기는 안 먹어도 됩니다. 풀이면 돼요.

그렇다고 겉으로는 별로 달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초식동물인 것을 알면 다른 육식동물이 목덜미를 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여전히 송곳니를 뾰쪽 보이는 듯하면서도 다만 속으로만 이 '멍'한 초식동물의 되새김질 상태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멍' 때린 상태가 오는 것은 기분의 영향인지, 신체리듬인지, 호르몬 때문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멍'때림에 관대한 자아는 오늘 기꺼이 멍 때림을 승인하고 초식동물로 지내기로 한 듯합니다.


멍 때림에서 잠시 깨어난 것은 저녁에 빗방울 소리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하루 종일 멍 때렸던 탓에 비가 올 거라고 생각도 기대도 못하고 있던 찰나에 빗방울이 쏟아져 내린 것이지요. 최면에서 깨어나기에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습니다. 육식동물이 아닌 걸 들킬 찰나였거든요. 하지만 비를 거의 피해 간 지금은 다시 '멍'한 초식동물로 돌아와 있지요.


그래서 오늘 글이 '멍'하지요. 아직 '멍' 때리며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보고 있으니까요.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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