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후 하늘은 수채화입니다. 하늘이고 구름이고 선명하기 그지없도록 비가 그려놓았기 때문이지요. 하기야 비가 그린 하늘은 수채화 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채화라는 게 안료를 물에 개거나 풀어서 그리는 것인데, 비는 물로만 물감을 풀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화라도 그리려면 기름을 사용해야 할 것인데 아무리 기름 값이 치솟고 있다지만 기름 비가 내리고 하늘에 유화가 걸리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비와 마찬가지로 지금껏 그려본 것은 크레용과 크레파스 이후 모두 수채화였나 봅니다. 유화를 그릴 일은 없었으므로 물감은 모두 물에 풀어 그렸으니까요. 그림을 그리려면 팔레트와 물감통이 필요했고 그걸 조심스레 붓에 찍어 도화지에 바르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지금은 네모난 팔레트도 하얀색 물감통도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만 비가 온 후 가끔 하늘을 저렇게 수채화로 그려낸 날은 직접 그림을 그린 듯한 대리 만족을 느끼곤 합니다. 이 비가 드린 수채화전은 단 하루 오늘만 열리는 한정일 전시회지요. 비가 그린 수채화를 보고 나면 마음까지 그림으로 물드는 것은 마음 한켠에 아직도 다 그리지 못한 도화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