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독과 싫어욧
메일을 열어보니 장기 미사용 카드에 대한 사용중지 안내가 와 있습니다.
요지인즉슨 거의 1년 동안 이 카드를 한 번도 사용을 안 했으니 1년이 되는 날까지 여전히 사용을 안 할 경우 사용을 중지하겠다는 것이지요.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자동화 기기에서 한번 사용하거나, 전화로 연장을 등록하거나, 인터넷뱅킹에서 연장을 등록할 수도 있고, 고객 상담실로 전화해서 요청도 가능하답니다.
이 메일을 보니 갑자기 지난 1년 동안 구독을 눌러 놓고 한 번도 글을 읽지 않았을 법한 독자에게 '장기 미사용'에 따른 구독중지 안내문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장난스레 듭니다.
답은 뻔하겠죠. 엄청 화를 내며 당장 구독을 끊어 버리거나, 안내문조차 읽지 않은 경우이겠죠.
그러나 그것은 미친 짓이겠지요. '구독'과 '좋아요(라이킷)'으로 이루어진 자본주의 사회에 반기를 들다니요. 이런 자살행위를 누가 하겠습니까? 은행이나 카드사도 다만 법령으로 규정하니 마지못해 하는 것일 텐데요. 가뜩이나 구독자도 몇 안되는데 오히려 취소해 달라는 것은 어불성설 이야기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허수의 '구독'과 '좋아요' 버블이 이 자본주에는 만연하기 마련입니다. 뭔가 빠져나갈 수 없이 교묘한 자본주의의 속성과 부추김에 또 한 번 걸려든 듯싶은데요, 바로 '구독'과 '좋아요'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구독'과 '좋아요'로 포장된 자본주의의 힘은 무섭기까지 하죠.
유튜브는 알다시피 대놓고 '구독'을 바탕으로 돈을 지급합니다. 나머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구독'과 '좋아요'가 광고의 원천이기 때문에 돈으로 연결되기는 마찬가지이지요. 일론 머스크는 허위 계정을 이유로 트위터의 인수를 철회하기도 하였고, 카드사는 순위 경쟁과 매각을 위하여 일단 회원수부터 늘리기 위해 돈을 주어가며 회원수를 부풀리기도 합니다. 공모주에서는 일단 허수로라도 경쟁률이 올라가기만 하면 개미가 개미 때처럼 몰려드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모두 다 결국'구독'과 '좋아요'를 바탕으로 하는 '버블 경제'란 자본주의의 속성이지요.
브런치도 '구독자'와 '라이킷' 수로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조회수가 자신에게만 보이고 공표되지 않고 있으며 대놓고 광고를 달지 않고 있는 것은 '글'이라는 속성이 대놓고 '돈'이라는 속성을 쫒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는 대척점에 있는 이유에서 일까요?
한편으로 '구독'과 '라이킷' 뭐가 나쁘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구독'과 '좋아요'는 민의와 대중성을 나타내는 가장 훌륭한 지표이자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진보된 형태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하기에 가장 휘둘리거나 왜곡되기 쉽고 무분별한 쏠림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승자독식의 특성상 '구독'과 '좋아요'가 목표와 목적이 되어서 고삐 없이 질주하거나, 깊은 생각 없이 단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여기에 편승하거나, 버블에 현혹되어 그 위에 발 한 짝이라도 얹어 놓으려 하게 되니까요. 또 이 '구독'과 '라이킷'에는 어떠한 책임도 따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독'과 '좋아요' 지상주의가 만연하면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다 자극적이고 지금까지 없었던 놀랄만한, 심지어 '구독'과 '좋아요'만 가능하다면 전쟁이나 살상도 서슴지 않을 판이니까요. 물론 그 뒤에는 교묘히 돈이라는 자본주의의 속성이 숨어 있기 마련입니다.
"구독을 취소해 주시겠습니까?"
'구독'과 '좋아요'의 세상에서 이러한 요구는 허세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돈을 토해 내겠다는 반 자본주의적 발상이지요. 그러나 양보다 질을 택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구독'과 '좋아요'에 취한 버블을 걷어내기 위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쉽게 이 말을 먼저 꺼내진 못하겠네요.
그래서 '구독'과 '좋아요'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은 구독하지 않거나 구독을 끊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구독'이나 '좋아요'라는 적극적인 기능에 비 하연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반구독'과 '싫어욧'이라는 반대 기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까지는 사회의 부정적 영향 때문에 누구도 이 열쇠를 쉽게 꺼내 들지 않았지만, 결국 '구독'과 '좋아요'가 제 기능을 못하고 이렇게 혼탁해진다면, 결국 구독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때려치우라는 '반구독'과 좋지 않다는 게 아니라 경멸한다는 '싫어욧'라는 악마의 키가 이 땅을 심판할 것이겠지요.
그러한 세상이 오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아직까진 '구독'과 '좋아요' 키가 선한 열쇠로 쓰이기를 바라지요. 조금 버블이 있더라도 잠시 돈에 매수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구독'과 '좋아요'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고 이 땅의 이념이 아니라 지표의 역할을 해 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그래서 먼저 정중히 "구독을 취소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물을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