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창 밖을 자꾸 들여다봐봤자 어차피 비가 그칠 것 같지도 않으니 '우산' 이야기를 해 봐야겠습니다.
왜냐하면 갑자기 '대나무 비닐우산'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대나무 비닐우산
이제 기억에서도 가물가물 하고 '그런 우산을 내가 한때 썼었던가?' 아니면 '단지 책에서만 본 것이었나?'도 헷갈릴 것 같은 그 전설 속의 우산을 오늘 같은 날 쓰면 엄청 '낭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편의점에서 제일 싼 비닐우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그 '파란 대나무 비닐우산'은 싸고 형편없는 임시 우산일 뿐 전혀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구하기 힘든 소재인 멋스러운 대나무로 살을 짜고 통 대나무 기둥과 빨간 손잡이가달린 매우 고풍스러운 모습일 것 같은 상상과 달리, 그것은 매우 허접하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파란 그 비닐이 찢겨 너덜 거리거나 날아가 버려 살만 남기 일수였으니까요.
이제 와서 그런 우산을 쓰고 좋아하지도 않은 빗길을 돌아다니면 갑자기 '낭만'적일 것 같은 상상은 아마도 우산이라면 깃들여 있는, 한 우산을 쓰고 어깨를 부딪히며 걷던 '낭만'의 요소가 뿌려져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비 올 때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만큼 우산 속에 얽힌 '낭만'의 일들은 그리 흔하지 않았고, 어느새 그 '파란색 대나무 낭만 우산'도 더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깔끔하되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비닐우산으로 일회용 우산도 어느 순간 대체되었고, 우산도 수동으로 펴고 끄는 우산에서 원 터치 스위치자동우산이 나오더니, 작게 접어서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2단, 그리고 더 작은 천단의 3단 우산까지 나왔고, 그런 우산을 모든 종류 별로 다 소유할 수 있는 거부가 되었으니까요. '우산' 부자 말입니다.
한편으로 그 소중한 '우산'을 잃어버렸던 기억이 많습니다. 우산은 버스나 커피숍 같은데 쉽게 놓고 가기 쉬운 물건이지요. 그렇게 이별을 고하였던 우산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사귀었던 사람보다 많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애써 찾기도 어렵고, 우산을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비가 그치고 한참 뒤의 일이어서, 그저 다른 이의 비를 막아주는데 요긴하게 쓰였고 대신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받기를 원하은 마음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우산을 들고나갈 때면 우산도 이걸 쓸까 저걸 쓸까 하다 "아무 우산이나 쓰지 뭘 그리 고르냐?"라고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우산은 비 오는 날 패션의 완성이지요. 비의 양에 맞추어 적당한 우산을 들어주어야 그나마 기분이 나아집니다. 한때 손잡이가 나무로 된 초록색 우산을 자주 썼었는데 누군가 말하길 "우산에도 그 사람의 개성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그 우산을 보고 딱 저의 우산인 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산'이 이렇게 인격을 나타내다니까요.
그래서 새 우산을 두고도 좀 낡고 작동에 문제가 있는 상태까지 갔지만 아끼는 헌 우산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비를 막아주고 함께 그 어려운 빗길을 헤쳐 나왔는데 새 우산으로 그렇세 쉽게 갈아타지 못하는 것이지요.
"노랑 우산, 빨간 우산, 찢어진 우산"
노래에도 있듯이 찢어진 우산은 우산이 모인 곳이면 필수의 아이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찢어진 우산은 잘 찾아보기 힘들지요. 그에 비해 '파란색 대나무 낭만 비닐우산'은 잘 찢어지기도 했는데 요즘 우산은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니깐요. '낭만'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 대신 우산 살 중 한쪽이 뜯어져서 약간 찌그러진 형태의 우산은 종종 있곤 했습니다. 그마저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드네요. 찢어진, 찌그러진 우산 지나가면 '오 낭만적이네!'라고 생각해 주세요.
우산 이야기를 하고 났더니 비가 오더라도 밖에 나가 볼 용기가 좀 나는 듯도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산은 비가 오더라도 안전하게 지켜주고 언제라도 함께 하겠다는 소중한 존재이지요. 비가 그치고 나면 그런 우산의 헌신을 쉽게 잊고, 심지어 우산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고 놓고 나오기도 하지만, 비가 오는데 없으면 가장 아쉽고,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든든히 함께하는 '우산 같은 존재'야 말로 정말 소중함의 상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