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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Sep 08. 2022

벼루와 노트북

서재에 살다

원래는 옛날 사람들도 개인 '서재'라는 것이 있었나? 궁금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그에 따른 이야기들이 흥미롭습니다. 선현들은 '서재'를 무척이나 중요시 여겼을 뿐만 아니라 요즘보다 훨씬 책 수집에도 열을 올렸었더군요. 게다가 서재의 이름은 보통 자신의 호(號)로 씌었으니 서재를 얼마나 중요시했던 것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긴 책이 요즘처럼 흔하디 흔하지 않고 귀하디 귀한 시절이었으니 멋진 서재에 훌륭한 이름을 걸고 희귀한 책을 진열해 놓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책부심'이 대단했던거지요.


그런데 의외로 이야기가 하고 싶어 진 것은 '서재'가 아니라 '벼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벼루를 하도 오랜만에 만나서 그랬을까요? 요즈음은 '벼루'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 '벼루'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하면, 한마디로 먹을 가는 도구라고 합니다. 그러면 또 '먹'은 무엇에 쓰는 도구냐고요? 먹은 벼루에 물을 붓고 갈아 검은 물을 만들기 위한 도구이지요.


이렇게 설명해 가지고는 벼루와 먹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는 어디 알아듣겠어요? 벼루에 먹을 한 번이라도 갈아 보고 튀는 먹물을 맞보고 그 튄 먹물을 밥풀을 이겨 빼보겠다고 애써본 후에야 쉽게 알 수 있는 이 신비의 도구는 처음 보면 사각 또는 둥근 미니어처 검은 욕조에 욕조의 물을 기 위해 검은 막대기를 세워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욕조가 벼루이고 막대기가 먹이 되지요.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면 먹물이 됩니다. 처음에는 먹이 갈려서 먹물이 되는지, 벼루가 갈려서 먹물이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벼루물이 아니라 먹물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갈리는 쪽은 먹이었겠네요. 네, 먹물 좀 먹어본 사람이 검은 말과 검을 글을 좀 읊조릴 수 있다는 그 먹물이지요. 요즘은 먹물을 따로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먹을 갈지 않아도 여기 모니터에 먹물이 다 찍히니까요.


그러니 요즘에도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글씨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자동으로 먹물이 나오는 붓펜이 유행하기도 해서인지 벼루는 언제부터 인가 집에서 보이지 않더라고요. 다만 은은한 먹향이 나는 먹 한 자루 만이 고대의 유물처럼 남아 있을 뿐입니다.


책 중에는 이 벼루와 관련하여 서재 이름이 백두개의 벼루가 있는 시골집 이란 뜻의 '백이연전전려(百二硯田田廬)' 라는 서재가 소개됩니다. 서예가에게 좋은 붓 한 자루는 무사의 보검과 같은 것이고, 좋은 먹 하나를 구하는 것은 전쟁에 나간 장수에게 수많은 군량미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귀중한 벼루를 얻은 것을 병법서를 얻어 천하를 통일한 것에 비유하였으니 이만하면 얼마나 벼루를 아꼈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벼루는 무엇일까요? 이전에 더 이상 먹을 갈지 않아도 모니터에 먹물이 다 찍힌다고 했으니 현대의 벼루는 컴퓨터나 핸드폰이 아닐까요?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이 마치 '벼루'를 닮았습니다. 시꺼멓고 낮게 네모진 것이 딱 벼루처럼 보이는데 요즈음은 하얀색 벼루, 아니 노트북이 유행이더군요. 그래서 옛 선현들이 벼루를 아낀 것처럼 저도 노트북을 아끼지요. 백개의 노트북이 있는 '원헌드레드투노트북하우스' 서재가 아직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쓰고자 좋은 노트북을 장만하고자 하지요..


이제 먹, 붓, 종이까지 한꺼번에 문방4우 기능을 한꺼번에 갖춘 벼루는 장만했으니 멋진 서재를 만드는 일만 남았습니다. 뭐 대단할 것 있나요. 글을 쓰고 있으면 집 전체가 서재이고, 거실이나 방 하나라도 이름을 부여하면 서재가 될 수도 있는걸요. 자가가 아니라 임차라도 상관없습니다. 이사 가더라도 서재의 현판만 떼어갔다 다시 붙일 수 있도록 이름만 하나 있으면 되니까요. 노트북 벼루 속 이 공간도 한편으로는 '서재'라 할 수 있겠네요. 나중에 선현들처럼 훌륭한 이름 걸 수 있는 멋진 서재를 꿈꿉니다.


서재에 살다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한줄 서평 : 나도 서재에 이름을 붙여 볼까? (2022.08)

내맘 $점 : $$$$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20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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