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껌을 씹습니다.
집안 어디에선가 보라색 BTS 자일리톨 껌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껌도 커피만큼 괜찮습니다. 특히 늦은 저녁에는요.
보라색 자일리톨 껌 / 광고 아님껌 팔아서 가장 높은 빌딩을 지었다는 대기업도 있는데, 요즈음은 껌을 잘 안 씹는 다지요.
그것이 밥 먹고 껌 대신 커피를 마셔서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껌 좀 씹던 형 누나들도 요즈음은 발 붙이기 힘든 세상이지요.
요즈음 형 누나들은 그럼 대신 블랙커피 원샷을 하나요? 에너지 음료를 마시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인생의 쓴 맛을 굳이 그렇게 일찍 볼 필요는 없지요.
껌을 씹으니 문득 옛날 껌 종이가 생각납니다.
자일리톨 껌처럼 통에 든 껌이 아니라, 속지는 은박, 겉지는 그림이 그려졌던 이중 껌 종이입니다.
그 껌종이에는 놀랍게도 한때, 랭보, 하이네, 릴케, 바이런 같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시인들의 시가 적혀있었지요.
형 누나들은 껌만 씹은 것이 아니라 낭만도 함께 씹었던 것이었지요.
옛날 껌종이껌종이의 속지는 껌을 씹고 싸서 버렸지만, 시가 적힌 껌종이의 겉지는 잘 펴서 통속에 고이 모아놓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겨우 껌종이 같은 것을 왜 모으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때는 단순 껌종이가 아니었지요. 이 껌종이는 무려 랭보, 하이네, 릴케, 바이런이었다니까요. 지금으로 치면 BTS 신곡이 적힌 껌종이쯤이 되려나요.
그러고 보면 껌종이에 시가 적혀 있어도 랭보는 랭보였습니다. 껌 종이 위에서도 그의 시는 찬란히 빛났으니, 그의 시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쉽게 씹을 껌이 아니었다니까요.
그런데 껌 좀 씹던 형 누나들은 왜 껌을 씹었을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껌을 씹고 있으면 없던 자신감이 샘솟습니다.
뭔가 두려움이 있어도 껌 좀 씹던 형 누나들처럼 용기 내어 덤벼들 마음이 드는 것이지요.
아마도 그 형 누나들도 사실은 떨고 있어서 껌을 씹었던 것일까요?
"이런 건 껌이지"
껌은 누워서 떡먹기와 더불어 가장 쉬운 것들의 하나입니다. 껌은 누워서 먹을 필요도 없어서 떡보다 훨씬 더 쉽지요. 그냥 좀 불량한 표정으로 씹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일들이 껌이었으면 좋겠지요. 잘 풀리고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떨어지면 껌을 씹습니다.
껌에 랭보와 시가 있었을 때는 자신감뿐만 아니라 낭만까지 있었던 껌이었는데요.
그 낭만은 껌 씹는 형 누나들도 다 사랑하게 껌이었는데,
요즘에는 껌에 랭보도 없고 시도 없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이제 껌을 씹을 만큼 씹었으니 뱉어야 겠습니다.
역시 자신감으로 뿜뿜입니다.
"씹을 테면 씹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