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e Oct 21. 2021

아아아 브런치 미생들이여

작가선정, 라이킷, 구독이 없어도 당신이 작가가 아니란 이야기는 아닙니다

[신입사원]

오늘로서 brunch에 글을 쓰게 된 지 딱 일주일이 됩니다. brunch社의 이 신입사원이 슬슬 분위기 파악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환영회 같은 것은 절대 사절입니다. 그 대신 오늘은 '공손'모드에 머무르지 않고 용기 내어 손을 들고 '공세'모드를 취해 봅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일단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쉽지가 않더군요. '작가'라는 면접을 통과하지 않으면 글을 발행, 즉 공개할 수가 없지요. 이 진입장벽은 은근히 '열망'을 낳습니다. 이 양식은 흡사 채용의 과정과 비슷하기까지 한데요. 자기소개를 해야 하고 입사 포부도 밝혀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경력이 있으면 뭔가 우대가 있는 것도 같습니다. 내용은 '작가'적 '소양'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인 '증빙', 즉 '자격'을 요하는 인상입니다. 

그래서 입사 면접 때도 당해보지 못한 '모욕감'을 양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브런치!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달콤한 인생이었던가요?) 

그런데 심사는 AI 씨의 알고리즘이 하고 있는 줄도 모릅니다. 통/불통의 이유는 설명해 주지 못하거든요. 


[라이킷, 나를 좋아한다고?]

다행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통과하면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라는 다소 싱거운 AI 씨의 문구가 도착합니다. '작가'에게 건네는 축하말 치고는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여기서 'AI 씨'라는 의혹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여하튼 이번에는 요구하였던 격식을 잘 갖춰 입었고, 무난해 보이려 했던 것이 주요했나 봅니다. 

그리고 합격에 신난 나머지 글을 마구 썼지요.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라이킷'이라는 게 날아옵니다. 심지어 휴대폰에도 '라이킷' 일 때 진동이 울립니다. 오! 이게 뭐지? 검색해 봅니다. 라이크 잇(Like it) 이랍니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인가? 왜? 이렇게 빨리?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짐)입니다. 얼마 만에 받아보는 고백인가요?

그런데 어디서 받아본 고백입니다. 전에 사귀던 '페이스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좋아요'의 열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지요. 그래서 '학습효과'가 있습니다. 그러한 고백에 이번엔 쉽게 넘어가지 않으릿! 설정을 찾아내 알림을 꺼 둡니다.


 [구독, 나를 엄청 좋아한다고?]

그런데 나를 좋아하는 숫자는 잘해야 열명도 안되는데,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작가들을 좋아하는 작가들은 수백 명입니다. 라이킷과, 구독자와 관심작가도 수백 명이지요. ㅎㄷㄷ(후덜덜)입니다. 

'이런 많은 작가를 다 좋아한다고?' 양다리도 벅찬데 문어다리, 오징어 다리입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 나를 라이킷 한다는데 나도 그들을 '라이킷' 해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이 갑니다. 이거 품앗이는 아니겠지요? 

'구독'은 아마도 '라이킷'보다 더 사랑한다는 뜻 같습니다. 역시 사랑은 어려운 거죠. 심지어 단계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구독'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유튜브'였던 걸까요?


[알고리즘이 원하는 글]

광고의 시대이지요.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도 큼직한 광고판에 딱 띄우면 게임 끝. 그런데 그건 아마도 서류전형을 담당했던 AI 씨가 또 하나 봅니다. 아마 AI 씨는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순서대로 띄워주는 같은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AI 씨 자기가 제일 맘에 드는 글을 브런치 페이지 위에 딱 띄우는 거죠. 그럼 라이킷도 올라가고 구독도 오르는 것 같습니다. 아~ 입사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AI 씨의 선택을 받아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합니다. 즉 책이 되는 글이지요. 저는 입사 포부 때 밝혔던 주제에 대한 글은 쓰지 않고 제 맘에 드는 글만 쓰고 있는 것 같네요. 즉 '책'이 되지 않는 글을 잔뜩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 브런치 미생들이여!]

그러나 이 땅의 브런치 미생들이여!

브런치 AI 씨가 당신을 오늘 작가로 뽑지 아니하고 '모욕감'을 줬다 해도 그건 당신이 작가가 될 자질이 없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발상이 AI를 뛰어넘을 만한 진정한 인간의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아 브런치 미생들이여!]

그러나 브런치 중생들이여!

오늘 당신의 글에 라이킷이 하나도 없고 당신의 글을 구독받지 못했다 해도 그건 당신이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글이 브런치라는 망망대해의 바다에 커다랗고 무거운 진주처럼 가라앉아 있거나, 낚싯배의 조명등을 받지 못해 아직 빛을 반사해 내지 못한 까닭입니다. 


[아아아 브런치 미생들이여!]

그러나 이 땅의 브런치 중생들이여!

당신이 브런치 AI 알고리즘을 따르지 못했다고 해도 그건 당신이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은 털끝만큼도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글이 알고리즘의 정형화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메트릭스의 '네오'처럼 알고리즘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버그'이자 '다이버전트'이기 때문입니다.


브런치 AI 씨는 결국 저에게 메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을 보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작가란 그런 것이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곧 AI 씨가 알고리즘에 따라 충실하게 글을 쓰고 라이킷과 구독을 독점하는 날이 곧 올 수도 있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그리워할 날도 오겠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