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 커피, 음악, 한강뷰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자주성을 교묘히 무너뜨리고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뜻 합니다.
'가스라이팅'이란 용어는 1938년 패트릭 해밀턴이 연출한 스릴러 연극 '가스등(Gas Light)'에서 유래합니다. 잭이라는 남성이 보석을 훔치고 이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가스등을 켜야 했는데, 이렇게 하면 가스를 나눠 쓰던 다른 집의 불이 어두워져서 들킬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잭이 보석을 찾기 위해 가스등을 켤 때마다 아내 벨라가 있는 아래층은 어두워지고, 아내가 집안이 어두워졌다고 말하면 잭은 그렇지 않다는 식으로 아내를 탓하고 정신병자로까지 몰아세우지요. 이에 아내는 점차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고 인지능력을 상실하면서 남편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는, 즉 '가스라이팅'의 덫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연극이 나온지는 한참이었지만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가히 '가스라이팅의 시대'라 할 수 있을 만큼 빈번하게 이 용어가 등장합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사례가 넘쳐나지요. 어쩌면 이 시대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음으로써 더욱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딱 좋은 심리나 상황에 몰려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너무 쉽게 '가스라이팅'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겠지요.
언론의 대부분은 지금 가스라이팅 중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단언합니다. 예전에는 신문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지식을 얻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편엽함에 치우친 기사들을 잘못 읽었다가는 딱 '가스라이팅' 당하기 딱 십상입니다. 특히 기레기라는 용어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종류의 글을 직업적으로 쓰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할까요?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자들이 스스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이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생각되지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도 가스라이팅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정보를 얻기 위한 채널로서의 역할이 아직은 더 크겠지만 점차 소셜네트워크란 용어보다는 이제 '가스라이팅네트워크'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거기에 매일 빠져들어 슈퍼챗을 누르고 있다면, 또는 그것을 유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가스라이팅' 중이라고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합니다.
브런치도 가스라이팅을 하느냐?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카카오(kakao)가 원하는 카테고리의 글을 쓰게 한 다음, 다음(Daum) 메인에 살짝 노출시켜 주기도 함으로써 계속 원하는 글을 쓰게끔 가스라이팅을 하지요. 작가라는 명칭도 안타깝게도 일종의 가스라이팅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좀 쉬고라도 있으면 살짝 다가와 지금 몇 개월째 작가님 글이 안 올라온다고, 독자들이 기다린다고, 슬쩍 가스라이팅 같은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뭐 그렇게 글을 쓰지 않는다면 '가스라이팅'과는 무관하니 걱정 말아요.
그러나 꼭 나쁜 '가스라이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를 매일 마시는 것도 한편으로는 "아 지금 나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네"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커피 마시기를 하루라도 거르는 것은 무언가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여기지요. 커피를 마시면서는 일이 더 잘 되거나,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모두 다 지금 커피로부터 지금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쁘지 않은 가스라이팅이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인지능력을 상실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커피를 한 달 정도 끊어 본 적이 있습니다. 커피 대신 다른 차를 마셨지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매일 먹던 커피가 가끔 생각나기도 했지만 실제로 일이 잘 안 되거나 글이 더 안 써지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아마 커피에 그런 의미를 부여했던 것은 그냥 커피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었지, 그렇다고 커피가 제 자주성을 무너뜨리고 지배를 강화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담배나 마약은 다를 수 있습니다. 중단하거나 끊지 못하는 것은 가스라이팅이라 할 수 있지요.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이에 대한 의존케 하는 것은 타인뿐 아니라 다른 물질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가스라이팅'은 사람뿐 아니라 '물질'도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한 가수의 노래만 계속 반복해서 들으며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이 가수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구나." 그러나 그 가수는 저에게 가스라이팅을 한 적이 없지요. 그냥 가수와 노래와 목소리가 좋아서 그 음악을 듣는 것뿐입니다. 팬클럽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굿즈를 사 모으지도 않고, 사생팬이 될 생각은 전혀 없었지요. 그 가수가 노래하는 것은 좋은데 연기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심하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주관과 지배력이 있는 것이었지요.
한강뷰가 보이는 집도 어느 정도는 가스라이팅이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물론 뷰에 대한 가치가 아무런 인정을 못 받았던 시절에서 뷰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이 집의 중요한 가치 요소임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강뷰를 최고의 가치와 불변의 진리처럼 만든 것에는 어느 정도 가스라이팅이 있었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사실 한강뷰는 한강 주위로 늘어선 강변의 도로들과 기능적으로 지어진 다리로 인해서 소음과 먼지를 가까스로 차단한다 해도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부동산의 가스라이팅으로 인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이상의 가치로 만들어 놓았지요. 한강뷰를 의심하는 자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자주성을 교묘히 무너뜨리고 부동산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가스라이팅 입니다.
그렇다면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바로 '환승연애'입니다.
'환승연애'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내용은 잘 모릅니다. 제목만 가져온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애 프로그램은 잘 보지 않거든요. 그것이 가상의, 또는 연출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보다 보면 거기에 몰입되어 빠져들기 쉽더라고요. 심하게 말하면 이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것인데, 너무 깊게 감정이입만 하지 않으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그냥 좋아하면 보면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가스라이팅'의 요소를 연출하고 있는 듯한 의심은 지울 수 없지요.
그런데 여기서 '환승연애'라 함은 그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으로부터 갈아탈 수 있느냐를 이야기 위한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의 가장 결정체는 연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가스라이팅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너 아니면 안 되겠다고 완벽하게 가스라이팅 되었을 때 바로 결혼에 이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는 가스라이팅을 나쁜 뜻으로 쓴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 주세요. 커피나 음악이 그렇듯 사랑에는 가스라이팅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까요. 가스라이팅에 잘 빠지지 않는 자 사랑에도 쉽게 빠지지 않는다고요.
그러나 그것이 연애나 심지어 결혼이라고 하여도, 최애 커피이거나 최애 가수 연예인이라 하여도 갈아탈 수 있는, 즉 환승연애가 가능하여야 그것은 가스라이팅이 아닙니다. 한 때 사랑했거나 최애였다는 이유만으로 담배나 마약처럼 중독되어서,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자주성이 무너져 타인이나 다른 물질의 지배를 받는 다면 그것은 가스라이팅이지요.
그러므로 환승연애가 가능해야 가스라이팅이 아닌 것입니다. 커피도 음악도 좋아하는 취향이 변할 수 있지요. 연애도 심지어 결혼이라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스스로 환승연애가 가능한가가 가스라이팅의 기준입니다. 채널을 돌려서 다른 프로그램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차를 마실 수 있어야 하고 다른 가수의 음악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과 연애할 수도 있고 이혼하고 재혼도 할 수 있습니다.
산과 들이 좋다면 한강뷰 보이는 수십억 짜리 집도 팔아 버리고 이사할 수 있어야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지 않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고 '환승연애'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