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파? 묵은지파? 아니면 깍두기
겉절이글 묵은지글 아니면 깍두기글
겉절이파인가요?묵은지파인가요?아니 깍두기라고요?
저는 겉절이파입니다. 묶은지도 물론 맛있지만 겉절이는 겉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생명력의 기간이 짧은만큼 더 귀하게 느껴지거든요. 게다가 막 담근 배추의 살아있는 아삭한 맛에 참기름이나 깨를 솔솔 뿌려낸 맛은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밥도둑이 따로 없지요.
글도 쓰다보면 겉절이 처럼 막 담가낸 글이 있는가 하면 묵은지 처럼 묵혀놓았다가 꺼내 놓는 글이 있게 마련입니다.
막 써서 바로 펴내는 글은 약간 풋익은 맛이 나긴 하지만 겉절이 처럼 신선하고 아삭한 장점도 있지요. 특히 시 처럼 찰나의 번뜩이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하는 글은 겉절이 처럼 바로 담가 내놓는 편입니다. 더 오래 생각한다고 맛이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 없기에 익히지 않고 바로 꺼내놓고 먹지요.
그에 비하여 묵은지 처럼 써 놓고 저장해 놓았다가 한참 뒤에 꺼내놓는 글도 있습니다. 묵은지는 숙성이 중요하듯이 글도 고쳐 쓰고 숙성할 필요가 있는 글이 있거든요. 묵은지를 뒤집 듯 가끔은 글도 뒤집어 다시 쓰기도 하면서 맛이 들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꺼내 먹는 묵은지 글은 잘 익은 묵은지 처럼 겉절이와는 또 다른 깊은 맛을 내게 됩니다.
어릴 때는 안 먹었는데 파김치도 이제는 맛있습니다. 파김치의 맛은 인스턴트 식품 같은 글만 읽다가 좀 더 나이가 들어 느끼는 톡 쏘는 듯하면서도 시큼하고 개운한 글맛이라고 할까요?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좋아합니다.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글로 치면 오랜 경험과 지식이 동시에 쌓인 듯한 풍미가 있지요.
김장의 계절입니다만 요즈음은 김장을 잘 하지 않지요. 김치를 사다 먹습니다. 김장 김치가 넘쳐날 때는 겉절이며 묵은지의 소중함을 몰랐는데 이제는 어머니의 싱싱한 겉절이며 잘 익은 묵은지가 그리워지는군요.
김장김치 묵은지 처럼 글들을 많이 담가 놓고 익기를 기다렸다가 꺼내 놓는 글은 김치찌개 같은 글을 쓰던 김치부침 같은 글을 쓰던지 다 맛있습니다. 오래 묵혀 놓고 고민한 묵은지의 고유한 맛 때문이겠지요.
묵은지가 다 떨어졌다면 겉절이를 담가야죠. 그때그때 쓰는 글은 배추 같은 소재의 싱싱함과 간을 잘 맞추어 바로 먹는 것이 핵심입니다.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참기름이나 깨를 뿌려 주면 되고요. 겉절이파라 조금 풋내나는 겉절이 같은 글을 자주 쓰지요.
김치를 담그는 것이 더 어려울까요?글을 담그는 것이 더 어려울까요?저는 김치를 담그는 것이 훨씬 어렵던데요. 그러나 김치를 사다 먹는 것 처럼 글을 사다 먹다가 김치를 직접 담그는 것 처럼 직접 글을 쓰면 그 맛이 김치만큼 꽤 흥미로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묵은지로 쓰던지 겉절이로 쓰던지 아니면 깍두기로 취향에 따라 쓰고, 맛 없으면 담근 사람이 다 먹으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