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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Dec 07. 2022

실은 의사 선생님 은하철도 999에 타고 싶습니다!

feat 건강검진

"앓고 있는 질환 없으시고"

"부모님이 무슨 질환 있으셨고"

"술 거의 안 드시고"

"담배 피우지 않으시고"

"운동 거의 안 하시고"


문진표에 이미 다 적혀 있는 내용을 굳이 다시 읽어서 질문하고 있는 것이 어이없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답이라고는 이미 체크한 "네" 밖에 없는 것도 역시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실은요 여기도 아팠고 저기도 아프고, 술은 거의 안 먹은 것이 아니라 건강 때문에 못 먹은 것이고, 몸도 별로 좋지 않아서 운동을 오히려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요"라고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하고 싶었지만, 문진을 보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마치 기계처럼 기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의 기계마냥 기계적인 답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렇게 기계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이 말이 떠 올랐습니다.


"실은 의사 선생님 은하철도 999에 타고 싶습니다!"


"갑자기  은하철도 999입니까?"


"은하철도 999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기차여행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 원한 생명은 몸을 기계로 바꾸어 얻을 수 있는 것이거든요"


"예전에는 왜 은하철도 999에 타려고 그렇게 안달이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몸이 여기저기 한두군데씩 고장이 나다 보니 은하철도 999에 오르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더군다나 의사 선생님 같은 기계말고 메텔 같은 안내자가 은하철도 999에 동반하여 문진하여 준다면 안드로메다에 도착해서 영원한 기계의 삶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이 무슨 안드로메다 같은 답이냐고 말하겠지만 은하철도 999에서의 목적지는 분명히 안드로메다가 맞습니다. 이 지금의 뜬금없는 상황과 안드로메다는 썩 어울리는 목적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하철도 999 / 철이와 메텔

그러나 차마 의사 선생님께는 "은하철도 999에 타고 싶습니다"라고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지요. "요즈음 우울한 생각이 자주 드냐요?"나, "자기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느껴지냐요?" 등의 정신적인 질문에 죄다 이미 아니오로 대답해 버렸거든요. 은하철도 999 이야기를 꺼내려면 그 질문들에 심히 우울하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 같다는 밑 밥을 깔았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다행히 선생님은 이 로봇이 아직 쓸모 있어서 폐기 대상은 아니고, 은하철도 999에 타서 영원한 기계의 삶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는 듯이 합격 도장을 꾹 찍어 줍니다. 가만히 보니 선생님의 역할은 어디 아픈지를 문진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기계의 폐기를 심판하고, 생각이 은하찰도 999를 타고 안드로메다로 향하지는 않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는 이미 기계일지도 모릅니다.


뭐 이렇게 기계적으로 건강 검진을 마치고 아직 쓸만하다는 합격 판정을 받았습니다만,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기계의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하여 지하철 999를 타고 있는 듯이 보였지요. "다음역은 안드로메다 안드로메다 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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