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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애는 포기하시라

feat 다단계

by Emile
신생아 특공?
신생아 대출?


솔직히 이 말을 듣고 빵 터졌습니다. 아무리 저출산율 세계 1위의 '멋진 신세계'를 향해가고 있는 나라라고 하지만 신생아를 벌써 부동산 대전에 참전시키다니요. 더군다나 신생아를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는 듯한 느낌의 '신생아 대출'의 등장은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신박하기 그지없는 상품이었지요.


애 낳는 것이 애국?


애국의 의미가 권력자가 사슴도 말이라 하면 그렇다고 하는 고전에서부터, 핵다수도 청정수라며 서로 먹겠다고 하는 신과학의 시대에 접어들어서인지 쉽사리 와닿지는 않지만 애 낳는 것이 정말 그럴까요? 국가를 위해서 이 한 몸 희생해 기꺼이 애를 낳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왜 낳기 싫다는 애를 이렇게 낳으라고 난리일까요? 정말 나라를 걱정해서 일까요? 애가 부족해 큰일이라도 나나요? 애가 왜 부동산과 부양과 나라를 위해 쓰여야 할까요?


단순히 생각하기에는 인구가 줄어들면 차라리 좋아질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봅니다. 한때 애가 너무 많다며 애를 적극 차단했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고, 지구의 인구가 이렇게 늘다가는 핵폭탄도 다 못써보고 망할 것 같다던 위기에 직면했었는데 갑자기 바뀌었지요. 그러나 고출산도 쉽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적으로 한때 수 양제의 백만 대군, 아니 백만 수험생과 경쟁을 벌여야 했던 입시대전을 생각하면 고출산의 추억도 생존 경쟁이었지요. 그 주체인 '애'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다단계


그러나 어른들이 구축해 놓은 이 시스템은 뭔가 '다단계' 사기 같다고나 할까요? 새로운 '애'가 태어나서 계속 뒤를 받쳐주지 않으면 붕괴되는 시스템이지요. 일단 펑크 난 연금은 누가 메꿀거냐부터 군대는 누가 가고, 일해서 세금은 누가 내고, 부동산은 누가 사주고, 대출은 누가 값아줄거냐?

다 계속되는 '애'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결국 '애'가 늘어나야 가능한 일일이지요. 이쯤이면 이것은 '애'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어른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지요. 폰지게임은 행복이라는 것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면서도 '애'의 투입을 통해 가격을 계속 부양해 올려야 하는 코인일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나마 나의 '애' 만큼은 그렇게 이 다단계 시스템에 참여시키고 싶지 않은 부모들은 '애' 낳기를 꺼려하지요. 굳이 우리 '애'를 학원에서 경쟁시키고, 학폭에 떨게 하고, 추행에 불안해하고, 군대의 노예로 참전시켰다가 겨우 살아남아 기업의 사병으로 일생을 살아간 다음, 삥을 뜯는 나라와, 어른들을 부양하고 먹여 살리는 용도로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니까요. 아예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면, 코인을 사지 않으면 사기에 당할일이 없으니까요. '애'를 두고 도박을 하기에는 너무 리스크가 크거든요.


그렇다면 강제로 '애'를 낳게 하면 어떨까요?"그게 가능해?"냐고 묻겠지만 이미 강제하고 있습니다. '애'가 없으면 세금을 높게 매기고 지원은 철저하게 안해준다던지, 고리가 아니면 대출을 안해준다던지, 집을 못 사게 막는다던지 '애'를 위한 대책이라고 하지만 거꾸로 보면 교묘하게 '애'를 안 낳으면 불이익으로 '애' 낳기를 강제하는 벙법이기 때문입니다. 다단계에 참여하지 않아도 불이익, 참여하면 일단 대출부터 받게 하고 물건을 사게 해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드는 고도의 다단계 수법이지요.


그러나 '애'를 낳고 안 낳고는 인간의 신성한 선택의 권리!

강제할 수는 없는 아직까지 그나마 존재하는 최소한의 자기 결정권입니다.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진화의 산물임과 동시에 적자생존의 본능에 따른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지요? 그래서 애를 안 낳느냐고 다그치고 한탄할 것만 아니라 아주 합리적이고 고도의 이성에 근거한 선택임을 인정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을까요? 태어날 나라도 부모도 선택할 수 없는'애'의 입장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권을 무참히 박탈당한 존재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가축입니다. 인간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이루어 성공한 동물의 표상인 것 같지만 전혀 그러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소, 돼지, 닭들이지요. 강제로 '애' 낳기를 희생당해서 인간들의 부양에 쓰이고 있으니까요. 차라리 인간처럼 닭들이 똑똑해서 알 낳기를 거부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닭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닭은 알 낳지 않을 결정권을 이미 인간에게 뺏겼으니까요. 소, 돼지도 마찬가지지요. 이 권리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아직 가지고 있지요.


지난 수년간의 의미 없는 저출산 대책과 쏟아부은 수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단독 세계 1위 저출산율을 공고히 고수하고 있음을 생각할 때 이제 그만 "내 아를 나아도"라고 계속 조르는 짓은 그만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되지 않을까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데 대출도 해 주고 안정적으로 집도 살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출을 받기 위해서,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 생각에도 없는 '애'를 낳으려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요. 만약 그러란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진정 '애'를 위한 일은 아닐 일이지요. 정말로 애를 도구로 삼고 싶은 어른일 뿐이겠지요.


AI 시대의 도래는 저출산에 대한 우려를 조금은 불식시켜줄 것 같습니다. 애가 줄어들어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고 효율성을 높이면 다시 애를 낳고 싶어지는 환경으로 긍정적 순환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내 아를 낳아도" 정책은 충분히 실패할 만큼 실패하였으니 좀 다른 대안을 찾을 때도 됐으니까요.

AI는 위협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인간을 위해서, 특히 저출산을 위해서, 인간에게 기여할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인간이 신뢰할 만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도박에 참여할 것입니다. 투입=산출이라는 구시대의 경제 이론이나, 소, 돼지, 닭의 생산처럼 '애'에 대한 이론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지요. AI가 애를 대신할 다단계 시스템이 기꺼이 되어주는 것이라면요.


앞서서 애를 너무 도구 취급한 것도 같지만 애는 사실 기쁨이지요. 이 아름다운 환경을 함께하고 싶고 계속해서 물려주고 싶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고픈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 다단계 맨 위의 다이아몬드 계급에만 그렇게 느껴지고 그것이 대대로 이루어진다면 다단계 폰지 사기를 깨달은 인간은 분명 그 진화와 적자생존의 본능에 따라 애 낳기를 멈출 것입니다. 다단계 게임에 굳이 뛰어들지 않는 편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테니까요.

애를 볼모로 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고 하지요. 저출산의 대책은 '애'를 위한 것인지 나머지 어른을 위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이 '애'는 연 최저 연 1.6%, 최고 5억 원짜리 '애'인 걸까요? 이 집은 '애'꺼일까요? 이 대출은 결국 '애'가 값아야 할까요? 그런데 집값이 떨어져 버리면 '애'는 뭐가 되냐고요? 그러면 담보인 '애'가 압류 될까요?

신생아에게 까지 세금과 부동산과 대출의 멍에를 지우고 금리와 대출한도로 비교되게 하는 것이 맞는지 맞지 않는지 웃다가 울게 됩니다.


'애'야 태어나자마자 참 힘들게 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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