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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여행이 상팔자라고?

feat 노플라잇 세계여행

by Emile
여행의 방식


여행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부류는 여행을 꼭 직접 가서 꼭 눈으로 보고, 느끼고, 맛봐야 되는 사람들이지요. "유여행이 상팔자"라고 하며 직접 가서 봐야 행복을 느낌니다. 그래서 여행을 책으로나 사진으로, 심지어 방송으로 보는 것에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직접 찍고 먹어 본 것이 아니기에 맛을 기대하지 않으며, 그래서 먹방도 잘 보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요.


두 번째 분류는 여행에 왜 고생에 돈까지 들여가며 가야 하냐고 하는 부류입니다. 세상이 좋아져서 누워서 세계 방방 곳곳을 골라서 탐험할 수 있는데, 그걸 가서 꼭 찍어 먹어 봐야 에스프레소인지 라떼인지 구분이 되냐는 것이지요. 이러할 경우 오히려 여행책이나 방송이 더 흥미로울 수 있겠지요. 한마디로 "무여행이 상팔자" 주의입니다.


그렇게 한 친구와 그동안 여행을 절대 같이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전자의 부류에 속하는 여행객이었고, 친구는 지극히 후자에 해당하는 여행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좀 놀랐습니다. 여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 내 맘 같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마도 그 친구에게 여행을 가지고 조르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여행의 방식은 존중받아야 하니까요.


여행은 좋아하지만 사실 여행기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떠난 것이 아니기에 관심이 훅 떨어지지요. 차라리 예전에 가 보았던 곳이라면, 이제 가고자 하는 곳이라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조금 관심이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여행기를 보고 있는다는 것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보고 있는 먹방 같은 배고픈 고통이거든요.


노플라잇 개고생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여행기 책을 한 권 골랐습니다. '노플라잇 세계여행'이라고 말 그대로 날지 않고, 비행기를 타지 않는 세계여행입니다. 여행의 시간과 공간의 큰 제약을 해결해 준 것은 사실 '플라잇'이지요. 날아서 가니 금방 갈 수 있고, 멀리 갈 수 있고, 이만저만한 장점이 아닙니다. 그러나 옛날처럼 배 타고, 기차 타고, 차 타고, 걸어가는 방식은 현대 여행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지요. 아무리 돈이 있다 해도 그럴만한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더 흥미가 있을 것이긴 하지만요.


그보다는 저자가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잘 안다고는 할 수 없고, 블로그에서 보기도 했고, 실제로 오래전에 만난 적도 있지요. 실제 만나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연락해 만날 사이도 아니지만요. 그래도 안면이 익은 저자의 책을 보는 것은 반갑습니다. 그렇게 저자도 모르게 책을 살짝 읽고, 역시 전혀 모르게 책 후기도 남기며 인사를 대신하는 것이지요.


안면이 있다고 서평에 전혀 봐줄 생각은 없었지만, 노플라잇 여행기는 생각보다 흥미진진, 여행과 마찬가지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자가 원래 여행에 익숙하지 않은 아마추어 인 데다가 계획조차 아주 느슨하여 제법 개고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여행기의 묘미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에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해결해 내는 과정이 재미의 요체지요. 물론 내가 직접 여행을 떠났을 때에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지만, 남의 여행기기에 매콤함을 즐길 수 있는 것이겠지요. 더군다나 저자는 전혀 젊지도 않아서 안타깝지만 감정 이입에는 제격입니다.


경로는 한국에서 시작해 배를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 횡단 후,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들과 러시아와 튀르키예를 거처, 유럽을 넘어 대서양을 건너고 미국을 횡단하는 111일간의 좌충우돌 여행으로 이어집니다.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떠오르게 하지만 저자에게 특별히 내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하는 여행이기에 이런 마음대로의 여행이 가능한 것이겠지요. 그러나 코로나 팬더믹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는 것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이라는 것이 빌런을 대신하여 저자를 괴롭힙니다. 그에 비해 영어권 언어 구사에 문제가 없는 점은 저자의 유일한 능력이지요.


여행은 직접 가서 꼭 눈으로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첫 번째 부류이지만, 이번 여행기를 통해 부러우면서도 무여행이 상팔자라는 자기 위안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비행기를 타지 않고 떠나는 여행은 앞으로의 생에, 가능성이 거의 있어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행을 책으로 읽고 보고자 하는 두 번째 부류에게는 이 책은 매우 훌륭한 선택입니다. 더군다나 사서 고생을 아주 평범하고 별로 젊지도 않은 아저씨가 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필력까지 좋으니까요.


노로맨스 세계여행


갑자기 '노플라잇 세계여행'이 아니라 '노로맨스 세계여행'이라고 바꾸어 놀리고 싶어 지네요. 로맨스라도 한 챕터 들어갔더라면 완전 대박이었을 텐데요. 만약 저자를 우연이라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과연 그럴 수 있으려나요? 그럴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자의 책도 보았고, 후기까지 남겼으니 놀려도 한번 봐줄 수도 있을 것 같지요.




노플라잇 세계여행

한줄 서평 : 노로맨스 세계여행 (2025.02)

내맘 $점 : $$$+

조진서 지음 / 리토스 (202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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