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의 디바라는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사고로 15년간 무인도에 표류한 소녀가 구출되어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경하던 가수가 된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무인도의 생활보다 디바가 되는 과정에 분량을 대부분 할애합니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의 방점은 '디바'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왠지 '무인도'라는 공간에 더 끌림이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요?
올드보이
무인도에서 15년간 표류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먼저15년 하니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최민식 분)가 생각났습니다. 오대수가사설 감옥에 갇혀 있던 시간도 15년이기 때문입니다. 무인도에서 15년? vs 사설 감옥에서 15년! 과연 어떤 쪽이 나을까요? 얼핏 자유로운 무인도 생활이 나을 것 같지만 이쪽은 식량이 없습니다. 그래서서목하(박은빈 분)는 굶어 죽을 위기에서 갈매기 알을 훔치고 해 본 적 없는 수영을 자율학습으로 스스로 깨우쳐 해초를 따가며 어렵게 연명해야 했지요. 그러나 사설감옥에서는 알다시피 짜장면과 군만두가 무한반복 리필됩니다. 물리긴 하지만 적어도 굶어 죽을 걱정은 없는 것이지요.
김씨 표류기
한편으로 무인도에서의 생활은 영화 김씨표류기를 연상케도 하였습니다. 다만 김씨(정재영 분)와 서목하(박은빈 분)의 다른 점은 스스로 표류해서 언제든 탈출이 가능하다는 점과 진짜 표류해서 스스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공통점은 각각 떠내려온 짜장스프와 라면프와 면발이라는 자본주의의 길들여진 맛이 살고 싶은 동기를 깊이 부여한다는데 있지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럼에도 무인도의 우영우, 아니 무인도의 디바가 표류한 때는 문명의 의무 교육을 거의다 마친 고등학교 때라는 나름의이점이 숨겨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돌아가고 살아가는 이치를 이미 배울 만큼 배우고 표류했기에 아무리 무인도라지만 스스로 문명을 구축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어떻게 하면 비를 피하고 태풍에서도 살아남고 무엇을 먹고 말아야 할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일인가구, 일인국가지만 매우 문명화된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후에도 빠른 적응력으로 디바에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래서 핸드폰도 금방 사용하고 운전면허도 단번에 취득하지요. 만약 무인도 표류 시점이 초등학교 이전이었다면 살아남은 것도, 구조되어 문명에 적응하는 것도 모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디바는 꿈도 못 꾸고 글과 음악 같은 문명을 다시 배우다 시간이 다 갔겠지요. 그러나 박은빈은 마치 전직이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변호사 우영우였단 것처럼 모든것을 씩씩하게 척척 해내지요.
블루라군
이에 비하여 블루라군이란 옛 영화에 보면 아주 어릴 적 무인도에 표류한 소년소녀가 등장합니다. 아직 학교도 다녀보지 않은 겨우 말과 동요 몇 개를 아는 정도의 나이입니다. 이 표류는 김씨나 디바와 달리 일인가구가 아니라 심지어 가점 높은 커플로 표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제대로받아 본 적이없었기에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이 많을뿐더러 앞으로 나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오직 아는 것이라고는 겨우 익힌 수영과 바나나 채집 같은 원시 사회의 기초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남녀 간 사랑이라는 감정도,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 지도 모르고 몸만 성숙되어 가고 무인도에서의 탈출도 두렵게만 느끼지요.
무인도의 디바
그래서 결국 무인도에서 탈출하여 디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서목하(박은빈)가 그래도 고등교육을 마치고 난 후 문명화가 되어 표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심지어 그녀는 전직, 아니 전생 그 유명한 변호사가 아닙니까? 그래도 무인도에서 보낸 15년의 세월은 아깝긴 합니다. 무인도에서 그냥 날려버린 시간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디바가 될 수 있는 힘은 이 무인도의 15년의 내공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무인도 15년은 이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특히 디바라는 그러니까 평범치 않은 연예인이란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내공이라 할까요?그 동안 보내버린 시간이 아쉬워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긍정과 죽다 살아 다시 찾은 삶의 내공입니다.
그러고 보면 15년의 무인도 표류는 그저 헛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헛되게 보낸 듯한 15년이라해도 심지어 그 보다는 훨씬 짧은 시간이 우리에겐 지나쳤을 뿐이고, 그 시간마저도다 우리에게 그 어떤면에서라도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들이지요. 심지어 그것이 무인도에서 단지 죽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단순한 의미없는 시간이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방점은 '디바'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무인도'에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15년의 개고생과 외로움이었다 해도 그마저도 다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내공이 되기 때문에 말이죠. 글쎄요 그 무인도에서의 경험을 저라면 책으로 썼을 텐데 서목하(박은빈)는 자기 장점을 살려 노래하는 쪽으로 택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무인도의 소설가가 되기 위해 내일은 무인도에서 표류를 한번 시도해 봐야 할까요? 그것이 어려우면 요앞 밤섬에서 김씨처럼 15년 아니 15일 셀프 표류라도 해야할까요?이왕 표류한다면 부디 커플로 표류하게 해 주세요. 글쎄요 표류책을 쓰는데는 좀 처절하지 않고 마이너스일것도 같지만요. 혹 소설은 망해도 누구 하나는 디바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