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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의 호박과 베니스의 상인

feat 조각투자와 토큰증권

by Emile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에 투자하라고 합니다. 통째로 작품을 파는 것은 아니고 조각투자인가 봅니다. 마치 액자퍼즐의 퍼즐 한 조각조각들을 따로 파는 형태지요. 그림 값은 약 12억 원 정도하고 10만 원을 들이면 1만 2천여 퍼즐 조각 중 하나를 가질 수 있는 기회라네요.

조각투자

그런데 아무리 야요이가 아니라 피카소가 살아 돌아온데도 1만 2천여 퍼즐 중 몇 개의 조각만 가지고 있어서는 이 작품이 호박이었다는 것도 구분해 내기 힘들겠네요. 더군다나 그렇게 작품을 조각내 퍼즐 한 조각을 따로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미술품을 바라보고 감상하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그냥 가격이 오르기만 바라는 순수, 아니 지극히 불순한 투자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베니스의 상인

여기까지 생각하니 불현듯 '베니스의 상인'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곡으로 유명하다지만 그보다는 권선징악의 동화 속 이야기에 더 익숙하지요. 선량한 안토니오와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등장하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안토니오는 빗 보증 대가로 그의 살점 1파운드를 저당 잡히지요. 마치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 1조각을 조각내어 팔듯 말입니다. 이는 최초의 조각 투자에 대한 시도가 아니었을까요? 조각 저당, 그것도 인체의 일부를 조각 투자 대상으로 삼은 샤일록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베니스의 상인' 이 이야기는 수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납니다. 안토니오의 절친인 바사니오가 부잣집 딸인 포샤에게 청혼하기 위해 안토니오를 연대보증 세워 거액을 빌린것부터 친구가 아니라 사기꾼의 냄새가 나지요. 바사니오가 부잣집 딸 포샤와 결혼하고도 이 커플이 쌍으로 빗을 갚지 않아서 결국 안토니오가 보증대로 살점으로 빗을 청산하기에 이른 것은 더욱 놀랍습니다. 더군다나 재판에서 판사 오빠를 대신해 변장하고 참석한 포샤가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게 살점을 떼어내야 한다는 법이 아닌 판사 마음대로의 판결을 해 버린 것은 기함을 토하게 합니다. 나아가 그걸 이행하지 못했다고 샤일록의 재산을 몰수해 버린것은 이 베니스의 법 체계가 얼마나 불공정하며 자의적인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목이 '베니스의 상인'인데 이런 반 상업적 친인척으로 얽힌 내로남불 사법체계였다는데 정말 놀라게 되었다니까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베니스의 상인' 샤일록의 조각투자 실패 사례처럼 사실 조각 투자에는 함정이 많습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각처럼 저 작품은 아주 일부나마 소유한 것처럼 여겨질 수 있고 투자 수익까지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나 그것은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이지요. 특히 미술 작품은 물론 그것을 소유한다는 가치도 있지만 감상의 가치도 이에 못지않게 크다고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명작을 감상하는 기쁨 없이 주식처럼 가치만 오르락내리락하는 전광판 속의 예술작품에 불과하다면 이는 벌써 예술품으로서의 절반 이상의 가치를 잃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사실 조각투자는 미술품만 아니라 이미 여러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는 트릭이지요. 먼저 주식회사란 기업이 그렇습니다. 주식을 조각 투자로 소유하고 있지만 누구도 투자자나 주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지요. 마치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조각투자로 사고도 감상할 수 없는 것처럼 대주주에게 이 기업이라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치는 독점되게 됩니다. 민주주의도 한편으로 조각투자입니다. 조각 투자로 대표를 선출했지만 그 투자 이익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판 자들이나 그것을 보관하는 일부만이 누리며 마음대로 호박을 굴리지요. 조각 투자자인 투표자에게는 호박 액자퍼즐의 한 조각, 꼭지 하나도 절대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전설의 토큰

야요이 쿠사마의 호박이 되었든 수박이 되었든 미술품과 음원 저작권 그리고 글의 저작권까지 조각내어 토큰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이미 가상화폐라는 실체가 없는 것도 거래가 되는 마당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미술품, 음악, 글은 오히려 거래되기 쉬울 테니까요. 너무 조각 내서 그림이 보이지 않아도 음악의 한 소절 일지라도 글의 한 귀퉁이 일지라도 전체를 상상하고 돈을 투자할 테니까요. 그렇게 기업과 국가도 심지어 작품마저 그것을 팔아먹은 자들의 손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대동강 물을 조각 투자하게 만든 봉이 김선달 선생은 진정한 조각투자의 선각자였습니다. 부동산 또는 수자원의 이용권을 증권의 형태로 설계한 전설의 투자가였으니까요.


무언가를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인간의 특성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의 공동소유의 개념을 무너뜨렸을 때 그것은 이미 증명되었지요. 조각투자, 그래서 이것은 얼토당토치 않은 이야기일지 모르지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은 구경도 못할 것입니다. 삼성전자 조각투자 후 호박은 회장 맘대로지요. 대통령 조각투자 후 호박은 수박이 되어도 어쩔 수 없다니까요. 그래도 돈이 된다면 조각투자 또 하겠지요. 그래도 작품은 액자퍼즐 형태가 아이라 그냥 통째로 걸어두고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각 투자의 시대라니 "여기 글 조각내어 팝니다. 제목 낙찰이요. 여기 글 꼬리 부분 신선한데 사실 분? 저기 글 중간 베니스 상인 부분 최고가에 낙찰 되었습니다. 경매를 종료합니다. 탕탕탕"

소더비 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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