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이혼 시키기'에 앞서는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서재 결혼 시키기'일 것입니다. 결혼을 시켜야 이혼도 시키는 것이니까요.그런데 과연 서재도 결혼시켜야 하는 걸까요? 사랑한다고 그렇게 쉽게 머릿속도 통합이 될 수 있을까요?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그러고 보니 '서재 결혼 시키기'란 책도 이미 있나 봅니다. '서재 결혼 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은 남편과 서재를 합치며 진정히 결혼한 것이라고 말하지요.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라고 닭살 돋는 사랑 고백을 헌사합니다.과연 사랑한다면 그녀의 책도 다 재미있을까요?
'앤 패디먼' 서재 결혼시키기
그러나 '서재 이혼 시키기'의 저자는 거꾸로 "이제 각자 공간에 책장을 갖기로 하자."라며 결혼 25년 만에 서재를 이혼시키기로 합의합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아 방문한 아파트의 서재 주인의 정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외국인과의 사랑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책을 나누면서 보니 2천여 권의 책 중 중복된 책이 스무 권을 넘지 않을 정도로 취향과 정신세계가 달랐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이 둘이 이혼한 것은 아닙니다.다만 서재를 이혼시키고 각자의 취향과 기질 속에 다른 두 존재의 여정을 성숙하고 진화시켜 갈 뿐이지요.독립과 의존 사이에 적절한 함수값을 찾지만 저자는 살짝 독립적인삶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네요. 사랑한다고 책 취향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
근래에 읽은 책 중 보기 드물게 온전히 훌륭한 문체의 서문을 만났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기대답게 글이 담백하면서도 빼어나서 고소하고 달달한 내음이 나는게, 프랑스 바게트빵 같다고 할까요? 저자가 마침 프랑스에 살아서 그런지 빵을 화덕에 아주 잘 구워낸 따뜻한느낌이네요.
가만히 책장의 책들을 바라봅니다. 서재라고 까지 할 것은 아니지만 얼마 안 되는 책들 마저도 마치 한 사람의 마음속과 뇌 속을 보여주는 것 같이 취향을 반영하고 있지요. 얼핏경제 관련 책, 에세이, 미술 관련, 역사 등이 섞여 있는 것 같네요.다양한 책을 읽는다고 하지만 특정한 주제로 관심이 모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책들을 낯선 이와 섞는다는 것은 역시쉽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몸은 내주어도 머릿속을 내 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인생에서 주인으로 사는 유일한 열쇠는 창의적 열정이란 생각이 들어
책 내용 중 저자의 딸은 "인생에서 주인으로 사는 유일한 열쇠는 창의적 열정이란 생각이 들어."라고 말하며 그림을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 그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서재의 책들을 바라보거나 읽는 것을 넘어 글을 쓰고 책으로 완성하고 싶은 것은 인생에서 주인으로 사는 유일한 열쇠 중 하나가 아니라서그럴까요? 물론 취향에 따라 다다를 수 있지만 창의적 열정이 살아날 때 진정 살아 있음을 느끼곤 하니까요. 책들은 항상 그 열정을 깨우는 매개체가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