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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Apr 20. 2024

챗GPT가 흉내낼수 없는 바보美

feat 챗GPT의 두 얼굴

챗GPT가 기사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소설을 쓰고, 방송을 곧 하게 되겠다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은 "과연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냐?"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된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일들이 자칫 아무 의미 없는 일들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죽 쒀서 개 줘버린다"는 속담이 "글 써서 챗GPT 줘버린다"라는 속담으로 현실이 되어 올 수도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단순히 기사를 쓰고, 글을 쓰는 것을 뛰어넘어 책을 출판하고, 그 책이 수상까지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인간이 쓴 글이냐, 챗GPT가 쓴 글이냐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렇게 어렵게 한땀한땀, 한눈물한눈물, 한피한피, 한자한자 써 내려가고 있는 일들은 바보같이 느껴질 수 있도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한편으로 '바보'인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입니다. '기계'처럼 완벽하지 않고 어딘가 빈 듯한 백치미를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기에  '바보미'야 말로 챗GPT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지요. 이 한계야 말로 인간의 인간다운 모습, 기계와 구별되는, 그러므로 글을 써야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역시 인간은 인간다울 때, 즉 '바보미'가 느껴질 때 가장 인간다운 한계적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것이 인간다운, 챗GPT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주장되겠습니다.


요즘 '뽀샵' 처리한 사진들을 가끔 접하 실제의 인물과 너무 많이 달라 놀라곤 합니다. 그러나 뽀샵에 일시적으로 현혹되긴 하지만, 뽀샵처리 되지 않은 부족하고 자연스러운 '바보미'가 느껴지는 원래의 얼굴에 정감과 편안함을 느끼지요. 마찬가지로 노화를 뛰어넘고자 보톡스를 맞고 성형을 하고 강남미인에 열광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나이 든, 인공적이지 않는, 챗GPT적이지 않는, 적당하게 주름이 간, 얼굴에 역시 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에 인간의 불완전한 '바보미'는 인간 내면에 꽤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바보미'는 글쓰기에 있어서 인간이 반드시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제공해 줍니다. 글과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역시 인간이 정감 있고 편안하게 느끼는 글과 책들은 적당히 위트가 섞여 있으면서도 새로운 지혜를 깨닫게 해 주면서도 인간적인 고뇌와 적당히 빈 곳이 느껴지는 글과 책들이지요. 완벽한 지식과 완전한 공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인간은 거기에 뽀샵이나 보톡스 같이 잠시 현혹될 순 있어도 결코 근본적으로 끌리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완전한, 100%의, 실패할 수 없는, 이러한 수식어가 붙은 글과 책은 먼저 "이거 사기 아니야?" 하고 의심부터 들게 되지요. 그래서 아예 글과 책을 열어보지도 않는 듯 원천 차단부터 먼저 하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완전하고 완벽한 것들은 꼭 뒤통수를 치더라는 인간의 오랜 경험적 트라우마가 작용해서 일 수도 있습니다만, 챗GPT 역시 그런 경계의 선상에 있다고나 할까요.


그러므로 언젠가엔 챗GPT는 완전하고 완벽한 이미지를 버리고 이러한 인간의 불완전한 '바보미'와 싸워야 할 것입니다. 완전하지만 불완전한, 완벽하지만 불완벽한,  완전미인이지만 백치미가 느껴지는 그런 모순, 그 경계의 해답을 찾아야 하는 무한 연산에 빠져버리게 되며 챗GPT는 한계를 절감하게 될 수도 있다니까요.


그러므로 지금 글이 불완벽, 불완전하다 해도 글쓰기를 주저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우리에게는 GPT가 흉내내기 힘든 '바보미'가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진짜 '바보'가 되면 안 돼요. 챗GPT는 인간을 흉내 내지만 '바보미'가 아닌 진짜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과연 챗GPT도 인간의 '바보미'마저 학습하여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고 필요 없는 라임을 넣고 적당한 백치미를 갖게 될 날이 오게 될까요? 아니면 이런 불완전하고 불완벽한 인간의 '바보미'에 염증을 느껴 인간미를 없애고 기계로 대체하려 들게 될까요?


그런 면에 이 책은 챗GPT가 쓴 건지 왜 이리 재미가 없는지, 간이 안된 맛이 나는지, 사실이지만 맛이 없어서 "너 챗GPT 지?"라고 의심을 하게 되지요. "자 이제 바보미를 좀 키워보라고 미스터  바로 자네!"




챗GPT의 두 얼굴

한줄 서평 : 챗GPT가 흉내낼 수 없는 바보美 (2024.04)

내맘 $점 : $$

금준경, 박서연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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