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에게 반하다
말이 없는 학생들에게 말을 걸면 금세 더 어색해지곤 한다. 게다가 나도 내향형 사람이라 그 일이 성공적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업을 시작하기 전, 지난 주말에 들은 유머나 꽤나 심각했던 사회 이슈까지 불러들여 수다를 떤다. 수업 시작 전 1-2분 스몰 톡을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교실엔 더 이상 학생을 웃길 수 없는 내가 남거나 결국엔 한 번씩 피식 웃어주는 학생이 남지만, 어쨌거나 그 수다들이 쌓이면서 다행히도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반복되는 일과를 공유하며 우리끼리만 아는 교실의 공기층이 생겨난다.
하준이는 말수가 적은 학생이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고, 애써 크게 내지도 않았다. 네, 아이오 정도의 의사 표현은 미세한 고갯짓과 꼭 다문 입술의 움직거림 정도로 구별해야 했다.
표현을 하지 않아 눈치채기 어려웠으나, 하준이는 계획이 다 있었다.
부모님을 거스르며 걱정을 끼칠 수 없기 때문에 대학 자체를 포기하지 않지만, 구체적인 인생 목표가 아직 없고, 그 이유로 학교나 학과를 확정할 수도 없으므로, 일단 지원 가능한 학교 중에서 통학 거리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입학만 하는 것이 나름의 입시 전략이었다.
현재를 고단하게 살지 않는 것. 대학을 결정해야 하지만 인생을 결정하라는 압박에는 떠밀리지 않는 것. 그것이 고1 하준이의 진짜 목표이자 숨겨진 계획이었다. 그럴싸한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학생은 아니었으나, 여러 번 물어도 짧은 대답은 늘 같았다. 치기 어린 행동이라 오해할 수 없었다. 그런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하준이는 진지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지켰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을 자기 몫으로 남겨두기 위해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여긴 주류의 흐름을 거부한 것, 온 힘을 다하는 척도 하지 않기로 한 것, 하준이의 선택이었다. 반대 편에서 잘 모르는 누군가가 바라보았다면, 하라는 공부도 않고 대꾸도 없고 욕심도 없고 목표도 없는 듯 보였을지도 모를 모습이었다.
말이 없는 것이지, 생각과 고민이 없지 않다. 그 나이에 함직한 뻔하고 당연한 모습으로 넘기기엔, 그들의 고민은 너무나 무겁다. 그 고민을 전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들어줄 수는 있다. 수업 시간에 몇 마디 않던 하준이가 꺼내 보인 말들은 마침표 하나까지도 허투루 흘려들을 수 없었다.
결국엔 길을 찾아내고, 하나하나의 선택에 확신을 더해갈, 한 사람의 성장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하준이와 1년을 수업하고, 겨울방학을 맞아 입시와 진로에 관한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한 것이었다. 하준이의 목표는 뚜렷했고, 이해하게 되었지만 내게 맡겨진 역할에는 어쩜 정반대의 목표가 필요했다. 일련의 목표들이 구체화되고 그에 맞는 1년, 혹은 2년 치의 공부 계획을 세우는 시기이고 , 수업료가 오고 가는 동안 나는 성과, 즉 학생의 성적 향상이라는 결과를 내야 한다. 다음 스텝으로 갈 동기가 없는, 그럼에도 본인은 평화로운 학생에게 영어 사교육이 필요할까 싶었다.
그랬다. 공부를 안 하겠다는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가 어려워질수록, 성적을 올리는 것은 둘째 치고,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공부를 시키는 수밖에 없다. 무리가 될 것 같은데, 방법을 알아도 나만의 노력으로는 기대를 만족시키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히 하준이 부모님도 하준이의 계획을 들으셨단다.
느슨해져서는 안 되는 수업. 정해진 시간에 많이 가르치려 욕심내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배우도록 이끌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하준이의 변화를 더 세밀하게 관찰해야 했다.
새 교재는 고2 과정의 교재로 정했다. 어려울 테지만, 천천히 하더라도 그 교재로 수업하길 원했다. 어떤 날은 지문 하나를 수업하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다. 시험 기간이면 범위가 아무리 많아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의 공부만 하고 시험을 치렀다. 준비해 놓은 자료의 반도 풀지 못하고 치른 시험도 있었다. 사정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과장도 하고 협박도 했지만, 씩 웃고는 시간이 되면 가방을 싸서 집으로 갔다. 공부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하준이는 정말 철저하게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러는 중에, 과제를 빼먹는다거나 수업에 늦는 일은 없었다. 여전히 고갯짓은 YES였고, 꼭 다문 입은 NO였다.
그렇게 둘 도 없는 수업을 하다가, 내 사정으로 수업 장소가 바뀌게 되었다.
그간 하준이는 10분 정도 여유 있게 걸어서 다녔는데, 새로운 수업 장소는 지하철로 15분 정도 이동해야 했다. 이동시간이 늘어나면 길에 버리는 시간이 생기고 그만큼 몸도 피곤해지니, 입시생에게 미안한 변화였다.
장소를 옮겨 수업을 이어갔다. 덥지는 않은지 춥지는 않은지 지하철은 제때 왔는지 기다리느라 지치지 않았는지 일찍 나와서 배고프지 않은지, 환영 인사를 대신하는 질문이 많아졌다.
질문을 쏟아내고 고갯짓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 교재 한 권과 필통이 나오고 나면 구석에 납작하게 던져지곤 하던 하준이의 납작한 가방에서 그날은 노트 한 권이 더 나왔다. 슬쩍 내 앞으로 밀려온 노트를 펼쳤다.
지하철 노선표였다.
1호선부터 당시 막 개통된 노선까지, 손으로 직접 그리고 노선별 컬러로 깔끔하게 색칠한 지하철 노선표가 한 장에 하나씩 있었다. 역명은 물론, 역의 순서, 숫자 표시까지 디테일했다. 뒷장에는 해당 노선의 지하철 역 중, 직접 방문한 역사들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언제 어떤 일로, 몇 번 출구로 나갔는지, 출구의 환경은 어떠한지 같은 기록이었는데 방문한 역사가 추가되면서, 노트 아래쪽으로 갈수록 글씨가 점점 깨알이 되어갔다. 깨알 글씨마저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쓰여있었다.
글씨를, 필기를 이렇게 할 줄 알았던 거니? 그 당시에는 놀라서 소리 내어 묻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검색하면 나오는 널린 정보와는 차원이 달랐다. 근사한 작품이었다.
노트에 놀라고, 그걸 내민 하준이에게 놀랐다.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유튜브의 사용양이나 범위가 지금과는 달랐다. 그렇게 옛날이 아니지만 채널이라는 표현도 낯설던 즈음이었는데, 대답을 하기도 전에 하준이가 폰을 내밀었다.
(영상)
지하철이 들어오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발이 지하철에 오르고 문이 닫혔다. 같은 과정이 반복되는 중에 어두운 터널을 달리기도, 지상의 볕이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지하철이 내는 덜컹거리는 소리, 여러 언어의 안내 방송, 윙윙 거리는 바람, 승객끼리 부딪히는 소리도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지하철 브이로그, 지하철 ASMR 인 셈이었다. 영상이 플레이되는 동안, 하준이는 이미 충분히 보았을 그 영상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우리는 몸을 돌려 노트를 가운데 펼쳐놓고, 처음부터 다시 넘겨봤다.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는 일은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한다. 아마도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느라, 좋아하는 감정이 피어난 순간을 떠올리느라, 그러면서 잠깐 다시 행복해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아닐까. 마음에만 담고 있기는 벅차지만, 하나의 말로는 바꿀 수 없어서,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독특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준이는 좋아하는 걸 실컷 좋아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하준이는 길 찾기 도우미가 되었다. 낯선 장소로의 외출이 잡히면, 경로를 물었고, 하준이는 남들보다 빠르고 누구보다 짧게 걷도록 환승 경로를 안내해주었다. 신이 나서.
멀어진 수업 장소로 들어올 때 상기되었던 하준이의 얼굴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오는 길이 정말로 좋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기 1분 전이면 칼같이 짐을 정리하며 적극적으로 수업을 마무리하던 유일한 학생이었는데(보통 수업 마무리는 쌤의 일이니까.), 길 찾기 도우미가 되는 날이면 시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생생한 추억 속에서 나날이 더 멋있어지고 있는, 섬세하게 그려낸 지하철 노선표와 방문에 관한 기록이 지금은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이후에도 업데이트되는 노트를 구경시켜주었고, 새로 만든 영상도 보여주었는데, 가족에게도 아. 직. 은 공개 전이라는 말 때문에 영상도 보여주는 만큼만 보고, 노트는 사진으로도 찍어두질 못했다. 부담 주지 않으려고, 혼자 즐기는 마음에 유난스러운 호응은 어울리지 않아 자제했는데 지금의 나는 많이 아쉽다.
입시를 마친 하준이는 지하철로 두 번의 환승을 거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상기된 얼굴로 등교를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면 아무 역에나 내려 두 번째 하루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손에 든 노트며, 노을에 관한 이야기며, 영상들, 멋진 일이었다.
입시생의 의무를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정도를 선택한 것도 실은 멋진 일이 아닌가. 공부가 아니어도, 즐겁고 멋진 삶을 살고 있었다.
자신을 멋지게 지켜낸 사람이었다. 하준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