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u Jan 31. 2023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것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기 전부터, 내가 가장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송태섭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키가 작고, 나와 같은 포인트 가드라는 포지션을 맡은 선수였기 때문이다.


여느 또래와 같이, 나도 열다섯 살에 만화 「슬램덩크」를 보고 농구를 시작했다. 주말 아침 무작정 코트로 나가 공을 던졌는데, 그렇게 농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내게 강백호와 같은 키도, 운동 신경도, 재능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을 계속 던졌는데도 골이 들어가지 않았고, 키가 큰 빅맨들에 맞서 몸싸움을 할 수도 없었다. 자연스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포인트 가드에 시선을 돌렸다. 코트의 가장 뒤쪽에서 경기를 조율하며 드리블과 패스로 모든 선수를 연결하는 역할. 화려하지 않지만 중요하고, 신체적 조건보다 노력이 중요하다는 특징은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와도 가장 부합했다. 나는 내가 눈에 띄지 않더라도 조용히 팀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역할도 잘 수행하지 못했다. 포인트 가드는 경기를 조율하는 포지션의 특성상, 팀원들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팀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팀원 중에 가장 실력이 떨어졌다. 스스로 드리블과 패스에 집중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슛 연습을 하지 않아 프리인 상황에서도 골을 넣지 못했고, 그때는 왼팔도 다쳤기에 왼손 드리블에 미숙해 오른쪽으로만 돌파를 시도했다. 나와 계속 경기를 했던 사람들은 내가 오른쪽으로밖에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문에 아무리 오른손 드리블을 더 연습해 봤자 누군가를 뚫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더더욱이 포인트 가드라는 포지션에 집착했다. 내가 신뢰받지 못하지만, 보이지 않게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믿었고, 계속 열심히 하기만 하면, 그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코트에 나가 공을 계속 던졌고, 열심히, 더 열심히 경기에 임했다. 나는 지금도 체력이 좋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데, 그냥 내가 그때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계속 뛰는 것, 조금 더 간절하게 경기에 임하는 것. 그때 나를 배신하지 않은 것은 체력뿐이었다.


그럼에도 내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프리인 상황이 되면 덜컥 겁이 났다. 공을 잡으면 '이번에도 들어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웠고, 그런 겁이 날수록 마음은 더 급해지고 자세는 흐트러졌다. 나는 농구를 하는 게 좋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했다. 정말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끝내 농구는 나를 돌아봐 주지 않았다. 정말 오랫동안 했는데, 나는 농구를 정말 좋아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내 모습이 자괴스러워 경기가 끝나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던 적도 있다. 그때 다시는, 다시는 농구를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농구를 시작했던 나이 열다섯보다 두 배나 더 살아와 서른하나가 된 지금, 나는 자신감을 잃고 주눅 들었던 중학생의 나를 다시 되돌아본다. 나는 그때 다른 노력을 해야 했다. 무작정 공을 몇백 개 던지면서 오늘도 노력했다고 위안을 얻을 것이 아니라, 내 폼을 교정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피드백하며 연습했어야 했다. 왼손이 나았을 때부터, 왼손 드리블을 연습했어야 했다. 나는 그때 그저 노력한다는 위안에 기댔었고 진정으로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으로 무서웠던 건, 프리인 상황에서 골을 못 넣는 것이 아니라 내 신념이 무너지는 것이었다. 나는 포인트가드에 집착해서는 안 됐다.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나아지지 않는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요즘 다시 코트에 나간다. 무작정 공만 던졌던 그때와는 달리, 기초적인 드리블을 다시 연습하고 슛폼을 교정한다. 경기에 임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아직도 내가 공중에 떴을 때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인정할 줄 아는 용기가 생겼다.


나는 농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스포츠 정신과 팀플레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그럼에도 졌을 때 패배를 인정하는 마음. 팀원의 실수를 탓하지 않는 포용심과 무언가를 그 자체로 즐기는 법. 그리고 노력. 이 모든 것들은 코트를 벗어나도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내 인생을 교정해 주었다. 이제는 거기에 두려움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나아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추가되었다.


무엇을 하든 노력해야 하지만, 잘 노력해야 한다.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