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주변인에게 쓰는 편지 - 부모님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by 김널스

나의 부모님에게



그동안 부모님께 ‘공황장애’라는 이름은 말씀드렸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내가 겪는 증상, 무너지는 순간, 감정의 파도 같은 것들.
그건 입 밖에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괜히 걱정하실까 봐.’
그 한마디였습니다.


어릴 적의 나는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아이였습니다.
살펴야 할 눈이 많았고, 감춰야 할 마음이 더 많았죠.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그것은 곧 부모님의 걱정이 되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때때로 정말 말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공황이 밀려오고, 감정이 무너질 때면,
나는 단지, 누군가에게 안기고 싶었습니다.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입을 여는 순간, 쏟아져 나올 감정이 두려웠고,
그 감정으로 부모님이 상처받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저 조용히 침묵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 눈에 비친 나는
늘 씩씩한, 문제없는 자식이었을 겁니다.
힘들다는 말도, 괴롭다는 신호도 내보내지 않았으니까요.
지금 이 글이 부모님께 닿는다면,
많이 놀라시겠지요.


한 번도 말하지 않던 아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
당황스러우실 수도, 마음이 아프실 수도 있습니다.

어릴 적, 해마다 한두 번 찾아오던 그 알 수 없는 증상 때문에
병원에 함께 갔던 기억,
그때의 불안한 얼굴들이 문득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부모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 시절, 부모님은 어린 삼 남매를 키우느라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고
그 안에서도 우리에게 늘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부모도 처음이었을 거라는 걸.
그 어려운 시간들을 견디며,
셋 모두를 이만큼 온전하게 길러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훌륭한 부모라는 걸.


무엇보다도,
힘들 때마다 돌아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
그 존재만으로도,
저는 참 많이 안도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선택은 전부 제 몫입니다.
숨기기로 마음먹은 것도,
알리고 싶으면서도 하지 못한 것도,
다 저의 선택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이 전적으로 저의 탓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삶은 때때로 흘러가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버텼을 뿐입니다.


이제 부모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면
그저 지금처럼 저를 묵묵히 바라봐주시고,
한걸음 뒤에서 조용히 응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누군가의 부모님에게



이 글은 공황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로 고통받는
어딘가의 누군가의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어떤 아이는 저처럼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견디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아이는 용기 내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부모와 함께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죠.


고통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 당사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곁을 지키는 부모의 마음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제가 결혼도, 육아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라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겪는 고통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무력감은 얼마나 클까요.
그 마음은 아마도… 상상 너머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편견으로부터 멀어져 주세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아이를 지지해 주세요.

많은 부모 세대가
‘내 아이가 나약해서’ 병이 생겼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약함은 병의 원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병을 견디고 있는 아이는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정신질환은 약한 사람이 이겨낼 수 없습니다.
매일의 고통을 견디고 살아내는 사람은, 단단한 사람입니다.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옆에, 그저 있어주는 것.
묵묵히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다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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