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주변인에게 쓰는 편지 - 친구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by 김널스

나의 친구들에게



나는 내 친구들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단 한 사람에게도.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겪는 증상들, 특히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대학생 시절, 내 곁에 있던 몇몇 친구들만 그저 겉으로 드러난 단면을 본 정도였다.
나머지는 몰랐다.
내가 그토록 아팠다는 걸.
그렇게 나는 나를 숨기며 살아왔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실도 말하지 않았다.


대학생 시절의 친구들에게는 여전히 고맙다.
진단을 처음 받고, 처음 공황발작을 겪던 그 시절.
나는 반쯤 나간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때 내 곁에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대학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 나는 학교 근처 원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찾아온 불안과 공황.
내 몸은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했고,
머릿속엔 ‘편안해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수면제로 손이 향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당시 내가 복용 중이던 약과 비교하면
무모한 시도였다.

나는 수면제를 털어 넣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듯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미 강의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내가 다니던 간호학과에선 ‘자체공강’이라는 말이 거의 없었다.
아무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저 더 자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 깊이 잠들고 싶었다.
정신이 너무 피폐해 강의실보다 이불속이 더 안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다시 수면제를 삼켰다.

그리고 한참 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강의에도 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나를 걱정한 친구들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들은 나를 강의실로 데려갔다.
나는 그날 이후 한 번도 수업을 빠지지 않았다.
결국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아마 그때 그 친구들이 나를 이끌지 않았다면,
나는 어딘가에서 멈췄을지도 모른다.


공황장애를 알고 있는 친구들이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것도 고맙다.

동정 대신 존중으로, 걱정 대신 평상심으로 대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배려인지,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만약 나를 걱정의 눈빛으로만 바라보았다면, 나는 그 걱정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정을 받았다면,

나는 스스로를 더 불쌍히 여기며 주저앉았을 것이다.

.

그저 평소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로 대해줘서 고맙다.


누군가의 친구들에게



이 글은, 정신질환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곁에 두고 있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어디까지 다가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나는 말하고 싶다.
절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 말라고.
그들의 고통에 완전히 뛰어들 필요는 없다고.

감정은 쉽게 전이된다.
함께 울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무너질 수 있다.


그러니 그저 곁을 지켜달라. 방관자처럼 주변을 서성이며,
위험한 선택 앞에 섰을 때 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제안을 건네달라.


단, 조언은 조심스럽게.
그 조언 하나로 누군가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내려놓고.
조언은 단번에 무언가를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말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나중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조언은 씨앗이다.
싹이 언제 틀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하나.
당신의 친구는 이미 옳은 방법을 알고 있다.
다만, 그걸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조언이란 그 방법을 다시 일깨워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결국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아마 당신의 친구는,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자주 사용할 것이다.
그 회피는 때때로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조차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라는 걸,
그 안에 치열한 싸움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 주길 바란다.


당신의 한 걸음이, 그 친구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당신의 한 문장이, 어떤 밤을 버티게 할 수 있다.


그러니, 지켜봐 달라.
사라지지 말고,
너무 가까이도 가지 말고.
그저 옆에, 머물러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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