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처음 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누군가였다.
나와 비슷한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어딘가의 누군가.
그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잠시라도 쉼이 되었으면 했다.
한 페이지의 위로였으면 했다.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만큼,
같은 고통을 지나고 있는 이도 어딘가엔 분명히 있을 테니까.
하지만 알게 되었다.
내가 겪은 공황장애와
누군가의 공황장애는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경험은 결코 복제되지 않는다.
아픔은 개인적이다.
그러니 내가 겪은 방식을 정답이라 말할 수는 없다.
내가 견뎌낸 방법을 권유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단지 같은 이름의 고통을 지나고 있는
서로 다른 인격체일 뿐이니까.
앞서, 주변인들에게 편지를 쓰며 나는
“방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달라”고 말했다.
‘방관자’라는 단어는 어쩌면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냉소나 무관심이 아니다.
곁을 맴도는 사람.
함부로 끼어들지 않고,
그러나 결코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
그것이 내가 말하는 방관자의 의미였다.
공감과 지지는, 때때로 의도치 않은 짐이 되기도 한다.
아픔은 결국,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가까운 이들에게 기대려 했고,
때론 그 기대가 무거워 그들을 지치게 하기도 했다.
나의 아픔은 그들에게로 전이되었고,
나의 불안은 그들의 일상까지 흔들었다.
그들을 믿었지만,
결국 나는 그 신뢰 속에
내 감정을 지나치게 풀어놓았다.
그 결과,
나는 더 깊이 잠기기도 했다.
감정을 털어놓는 것과 그 안에 빠져버리는 건 다른 일이었다.
“의지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서로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다.
특히 고통 속에 있는 누군가에겐 지지와 연결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전부를 기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의지는 필요하지만, 의존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주변인들은 곁을 도는 별처럼
지나치지도, 너무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여기까지 잘 견뎌온 우리.
앞으로도 잘 견뎌낼 수 있다.
그 고통 속에서도 매일을 살아냈고,
그 하루하루를 붙잡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왔다는 사실이
우리가 나약하지 않다는 증거다.
공황, 불안, 우울.
그건 나약함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버틴 몸의 신호에 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은 우리가 다치지 않도록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렇게 억누르고, 감추고, 밀어내던 감정들이
어느 순간,
신체 증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
당신의 몸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반응했을 뿐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은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나는 이렇게 약한가,
왜 나는 제대로 살아내지 못하는가.
혹은,
환경을 탓하며 원인을 바깥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약물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내 감정과 행동의 모든 책임을 무언가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방어기제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아직은 나 자신을 직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그 신호였다.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의 마음에 이 말들이 쉽게 와닿지 않아도 괜찮다.
나도 그랬다.
의사 선생님의 말,
책에서 읽은 구절들,
누군가의 충고.
그땐 모두 공허한 말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 날,
그 문장들이 마음속에 남아 조용히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천천히 이해하고, 조금씩 변해간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지금은 단지,
한 문장을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나에게,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이 한마디를 건넨다.
“잘 견디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