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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널스 Sep 17. 2023

나의 공황장애 - 7. 트리거의 민낯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의 이야기


앞서 말한 것에 트리거를 생기게 유발했던 것들은 다 숨어 있었다.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트리거를 완전히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다만 내가 왜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고 내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트리거와의 대면



나는 3회기 상담 때 나의 트리거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그 민낯을 보지 못하고 이유도 알 수 없이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나의 트리거의 민낯은 생각보다 불쌍했다.


사실 나는 관심이 필요한 아이였다. 하지만 당시의 가정 상황상 나에게 온전히 관심을 쏟아 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관심을 줘야 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나보다 6살 어린 동생이었다. 7살에 맞이한 내 동생. 지금은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지만 당시 나의 충격은 꽤 컸던 것 같다. 성인의 주먹에서 팔꿈치 정도 되는 길이의 애기가 집에 안겨 들어오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하지만 내 동생은 너무 귀여웠고 나에게 너무 소중해졌다. 어릴 적 나는 동생을 데리고 놀며 함께 즐거웠다. 하지만 나도 미성숙한 어린아이였다. 나도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맞벌이로 인한 부재인 경우가 많았고 어린 동생은 나를 유난히 따라서 내가 주로 데리고 놀았다. 너무 빨리 눈치라는 것을 보게 되었고 나는 그렇게 어른아이가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말해도 관심을 나에게 온전히 쏟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안 좋은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면 부모님이 슬퍼할게 분명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생활의 주를 이루던 학교생활이나 나의 일상을 집에 이야기하지 않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왕따 아닌 왕따를 경험하게 된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디고 견디다 못한 나의 몸이 나에게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낸 게 공황발작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공황발작이 교우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계속 모른 척 외면하고 살았다.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인정하게 되면 나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공황장애를 얻은 약한 아이인 게 분명했다. 세월이 지나면서도 나의 몸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분출하라고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왔지만 나는 그 신호를 계속 무시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깨달음



내가 얼마나 불쌍한 존재였고 나는 그것을 꽤 오랜 시간이나 외면하고 지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공황발작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 감정에서 나오는 눈물을 흘린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그동안 공황장애로 인한 공황발작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불안으로 인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나오는 고통의 눈물이었다. 마지막으로 언제 감정에서 나오는 눈물을 흘린 건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사장님은 나의 눈물을 보며 같이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리고 숙제를 내주셨다. 매일 자기 전에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나를 위로하라고 하시며 종이에 글씨를 적어 주셨다. 나에게 하는 위로의 주문이었다. 매일 숙제를 해가며 나에게 하는 위로의 말이 익숙해질 때가 되면 스스로 위로의 주문을 만들어 보라고도 하셨다.  숙제를 하고 나서 다시 상담을 하자고 하시고 그날의 상담은 마무리되었다.


나는 숙제를 받고 집에 와서도 적어주신 그 글씨를 읽어보지 못했고 펼쳐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감정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공황발작으로 인한 공포에 습관이 되어 있던 나는 그 감정에 휩싸여서 공포에 떨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피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그 숙제를 시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감으로써 나의 트리거의 민낯과는 대면하게 되었고 인정하게 되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오래 걸렸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상담을 받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지금은 가을이 다가오니 말이다.


나에게 주는 새로운 숙제



나는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처방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동안의 나는 나를 감추는 것에 급급했다. 직업이 간호사이기도 했지만 정신과에 재직 중인 간호사가 아직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누군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내가 나약했기에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라는 편견을 깨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다양한 형식의 두려움에서 한발 벗어나려 한다.


한 명 한 명 찾아가 나의 이야기를 말로 들려주는 것보다는 나를 글로 적어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공개적인 곳에 나를 적어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주고 한편으로 나와 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주고 싶다. 그리고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힘겨움에 자신과 싸우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나의 글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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