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장애 -5. 트리거의 실마리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 이야기

by 김널스

방심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약만으로는 이 병을 다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인지행동치료도, 상담도, 결국에는 어떤 진실과 마주해야만 한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피했다.

발작은 줄었다. 강도도 약해졌다. 나는 그것을 '회복'이라 불렀다.

더 정확히 말하면, 회복되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이제는 괜찮다고, 끝났다고.

하지만 나는 내 상태를 얕봤고, 공황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치 잠들었던 짐승이 숨을 죽이다가 문득 눈을 뜬 것처럼, 방심한 틈을 파고들었다.


약을 줄이자, 증상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예전과는 달랐다. 더 은밀했고, 더 불쑥 찾아왔다.

익숙하던 패턴이 무너졌고, 나는 당황했다.

원인을 아무리 짚어봐도, 실마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불안이 몰려올 때마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렸다.

‘이 고통을 끝내는 방법은 이것뿐 아닐까.’

그 생각이 너무나 당연한 논리처럼 느껴졌다.


몇 번이고 문턱까지 갔다. 다행히 그 문을 넘지는 않았다.

불안이 지나가고 나면, 내가 했던 생각들이 낯설고 기괴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수면제를 삼켰다.

잠은 유일한 피난처였다. 깊고 검은 바다처럼, 잠 속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단순하지만 단단한 문장 하나.


“살아야겠다”

그제야 방향이 잡혔다.


다시, 상담



예전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대학교에서 무료로 제공하던 심리상담이었다.

하지만 그땐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효과가 없었다고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늘 고민했고, 몇 번 가지도 못하고 멈췄다.

결국 나 혼자 결론지었다. ‘나랑은 안 맞아.’

다시 상담을 시작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돈도 문제였고, 더 큰 문제는 기대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떤 방식도 나를 구할 수 없을 거라는 냉소.

그게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저렴한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를 알게 되었다.

병원보다는 훨씬 가벼운 분위기였고,

병원과 동일한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 호기심이 생겼다.

가서 성격 검사를 받았다.

뜻밖이었다. 회복탄력성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멍해졌다.


나는 멍했다. 내가? 회복탄력성?
그 말이 어쩐지 낯설었고, 동시에 서늘하게 위로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 정신과 의사에게조차 감췄던 내면의 구석들을.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입이 열렸다.

무언가 신뢰 같은 게 생겼다.

그곳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상담도 함께 진행한다고 했다.
망설임 없이 상담을 예약했다.


첫 회기



조심스럽게, 하지만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꺼냈다.

상담은 총 5회기로 정해졌다.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내가 준비되었을 때, 내가 원할 때 예약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3회기.
그때, 마침내 하나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트리거’였다.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이렇게 빨리 트리거를 마주하는 분은 드물어요.

대개는 거기까지 가는 데 시간이 걸리죠.

아마 정신과에서 일했던 당신의 경험 덕분일 거예요.”


놀라웠다. 동시에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내가 걸어온 길이 전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구나,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은 경고처럼 들렸다.
“무의식을 너무 빨리 건드리면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어요. 자신을 지켜야 해요.”


그날, 나는 숙제를 받았다.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괜찮아.”
“오늘도 잘 버텼어.”
“넌 잘하고 있어.”


단순한 말이었다.

누구라도 해줄 수 있는 말.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말을 나 자신에게 할 수 없었다.

입을 열려고 하면 목이 막혔다.

말이 아니라 감정이 먼저 올라왔다. 넘치듯, 쏟아지듯.

그 순간, 나는 다시 침묵했다.


결국 다음 상담은 이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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