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황장애 -4. 나의 공황의 출처는?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 이야기

by 김널스


나의 공황은 어디서 온 걸까?



내 공황은 어디서 온 걸까.
진단을 받은 그날부터, 그 질문은 마음속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책에서는 공황장애는 스트레스의 역치를 넘었을 때, 신체가 보내는 경고라고 했다.

하지만 내 경우엔 달랐다.

나에게는 공통점도 전조증상도 없었다.
상황도, 감정도, 패턴도.
공황발작은 항상 예고 없이 불쑥 나를 덮쳐왔다.

처음엔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내 마음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지만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중학생 때 첫 발작을 떠올려도 마찬가지였다. 도무지 짚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몰랐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토록 무너뜨렸는지.


증상은 점점 심해져 갔다.
약의 용량도 함께 올라갔다.
그때 나는 학생이었고, 정신과 약물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먹던 약은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에 쓰이는 약이라고 검색되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그런 약을 먹을 만큼 심했단 말인가?'


하지만 돌아보면, 그 정도가 아니었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약은, 마지막에 붙잡은 밧줄 같았다.


졸업, 그리고 취직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졸업을 했다.
지방의 종합병원에서 첫 발령을 받았다.
지역을 옮기면서 정신과도 바뀌야 했다.

새 병원에서는 주치의는 말했다.
“약을 꽤 높은 용량으로 복용 중이시네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보다 멀쩡해 보였던 나는, 약을 감량해 보자는 권유를 받았다.
약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동의했다.
결과는, 재난이었다.

불안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나는 다시 약을 늘려야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감량은 시도할 수는 있었지만,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약을 끌어안고 사는 삶을 택했다.
그게 덜 아픈 길이라는 걸 알았다.

이 과정이 반복된 끝에 깨달았다.

공황은 죽음이 아니고 발작은 언젠가 끝난다.
그 사실을 알고서도, 억울함은 남았다.



"왜 하필, 나인가"


정신병원으로의 이직



심리학에 대한 관심은 오래전부터였다.
입시 때도 심리학과를 고민했다.
정신간호학 수업은 흥미로웠다.

공황장애를 앓게 되면서도, 정신이라는 세계는 여전히 신비로웠다.
그렇지만, 내가 직접 겪고 있는 병과 같은 세계에서 일하는 건 왠지 모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처음엔 종합병원을 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이 분명해졌다.


‘나는 정신과에서 일하고 싶다.’


결국 나는 정신병원으로 이직했다.


처음엔 낯설었다.
곧 익숙해졌다.
정신질환자를 마주하며, 나는 조금씩 내 병과도 화해하는 방법을 깨닫기 시작했다.

내가 겪는 공황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적은 없지만,
환자들과의 매일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어떤 대응법을 배웠다.

증상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공황발작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빈도는 줄어들었다.

불안은 이따금씩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삼키진 않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고.


그러던 어느 날, 정기적으로 다니던 본가 병원이 일주일 휴무에 들어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약은 바닥을 보였고, 할 수 없이 동네 병원을 찾았다.
그곳의 의사는 담담해 보이는 나를 보고 또 감량을 제안했다.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무너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공황발작은 이전과 달리 수 분 안에 가라앉지 않았다.
1시간 이상,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불안과 우울이 동시에 들이쳤다.
몸이 아니라, 영혼이 무너졌다.

약을 소량 증량하자 증상은 다시 잦아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제 내 발작은 단순한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마주해야 할 구조가 되었다는 것을.

그 구조는 하루에 한 번 찾아오는 게 아니라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돌아와 나를 흔든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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