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 이야기
정신질환이라는 말엔 묘한 울림이 있다.
말하는 순간, 무언가 조심스러워진다.
거리를 두게 되고, 시선을 피하게 된다.
공황장애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간호학과에 다니며 정신간호학을 배웠다.
교과서에는 정확한 정의와 증상이 나열되어 있었다.
시험을 치기 위해 외웠고, 발표를 위해 정리했다.
교과서로 배우는 것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그 모든 것이 현실 앞에서는 무력했고
나 또한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병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편견 속에 살고 있었는지를.
진단을 받고 난 뒤, 공황발작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덮쳤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았다.
과장된 표현이라고? 그 말 외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 시절 나를 버티게 해 준 건 몇 명의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졸업장을 손에 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공황은 폐쇄공포로 변했고, 다시 광장공포로 번졌다.
집도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벽이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덮쳐오는 기분이었다.
버스를 타면 사람들의 말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와 나를 감싸들었고
택시에서는 목적지까지의 시간이 감옥처럼 느껴졌다.
나는 웅크렸고, 울었고, 숨을 삼켜냈다.
그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세상 전체가 감옥처럼 느껴졌다.
공황장애가 끔찍하게 싫었다.
그건 단순히 몸이 아픈 것이 아니었다. 존재 전체가 흔들렸다.
원인도 모른 채, 이걸 평생 끌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스러웠다.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 그게 나를 무너뜨렸다.
어느 날 수면제를 모두 삼킨 적도 있다.
극한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밤,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였다.
나는 원인을 찾고 싶었다.
이유 없이 이렇게 아프다는 게 더 두려웠다.
그러다 결국,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공황장애를 알게 돼서, 증상이 시작된 거야.’
‘약을 먹어서, 더 나빠진 거야.’
지금 돌아보면 실소가 나오는 추론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다.
무언가를 탓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의사에게 말했다.
“약을 먹고 나서 더 힘들어진 것 같아요.
차라리 몰랐으면, 그냥 평범하게 살아갔을지도 몰라요.”
의사는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
“모르고 살았으면, 더 힘들었을 거예요.
증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대처도 못 해요.
사람은 누구나 불안을 견디는 역치를 가지고 있어요.
그 선을 넘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다.
믿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까지 나약하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약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건 나약함이 아니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였다.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공황장애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만큼 살아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정신질환에 대한 가장 무서운 편견은 그것이 약한 사람의 병이라는 믿음이다.
문제는, 그런 생각을 당사자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파먹는 건 병 자체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낙인이다.
나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다.
누구보다 단언할 수 있다.
이건 나약함이 아니다.
이건 반응이다.
스트레스를 피하려는 몸의 신호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다만, 형태가 다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유 없이 무너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도 긴 시간 동안 그랬다.
트리거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그걸 찾아가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그리고, 그걸 해소해 나가는 과정이 회복이다.
천천히, 아주 조금씩. 그 길을 걸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