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나는 누구인가 2

by 행동으로

대학에 복귀하려고 전문하사를 지원했는데 대학에 복귀하고 싶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지만 나는 대학생활을 잘하지도 못했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서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도 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군대에서 출근 잘하고 잘 생활하고 훈련을 잘 받으면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리에 남아 나를 괴롭게 했다. 잘하는 것이 없었던 나에게 군대라는 곳은 잘하지 않아도 꾸준히 올바른 모습만 보여준다면 인정받을 수 있고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집단이었다. 남들보다 10분 먼저 출근하고 10분 늦게 퇴근하고 남들이 앉아서 쉴 때 일어나 있었더니 대학에 돌아가지 말고 군생활을 더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물론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역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다). 나는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렇게만 흘러간다면 앞으로의 나의 미래도 평탄하게 가늘고 길게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군대에 부사관으로 남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내 인생의 격변의 시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내가 대한민국 최북단 GP에 투입되게 된 것인데 DMZ 내에 있는 GP를 사수하며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많은 일을 겪고 굉장한 우울감에 빠져들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왜 우울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나에게 힘도 없고 예전 같은 열정도 없었으며 목표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버틸 뿐인 그런 생활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정말 힘들었다 물론 나 말고 다른 병사들도 힘들었겠지만 나는 사회와 단절되면(군대라는 게 사회와 단절되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고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말한다.)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 준 경험이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고 샤워하기도 힘들었으며 밥 먹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에 대한 회의감 마저 드는 시기였다.


GP에서 철수한 후 다시 그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군생활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후방부대의 직책들을 찾기 시작했고 나 스스로를 살리기 위해 ‘교관’이라는 직무에 지원하여 합격하게 된다.

이후 미 8군의 교관으로 선발되어 2년여의 생활을 하고 전역하였고 현재는 미군부대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위 이야기는 20대부터 지금까지의 나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다.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할 수 있고 평범하다고 하면 평범할 수 있는 나의 과거이야기를 처음부터 꺼낸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기’를 통해 어떻게 발전해 왔으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나라는 사람을 소개하고 시작하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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