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에 놀라다
의사가 들어 보인 아기는 제 아비를 쏙 빼닮아서, 순간 허걱 숨을 들이켰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내 첫 출산의 그 아기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 놀라움도 잠시 아기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한다. 첫 숨을 쉬고 '앙' 울어야 할 녀석이 잠잠하다. 무슨 일이지?
의사는 너무나 태연하게, "걱정하지 마. 아기가 울기 싫대."
이게 뭔 소리야.
간호사가 온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주니 그제야 울음을 운다. 세상에 고하는 첫 울음소리가 기운차다.
'에고, 이 녀석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쪼꼬만 비니를 머리에 씌운 싸개에 감싸인, 또렷한 이목구비의 아기와 긴 시간의 산고를 이겨낸 엄마가 첫 대면을 한다. J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아가, 안녕"이라고 부드럽게 인사한다. 엄마품에 안긴 아기는 엄마의 심장소리에 고요히 눈을 감는다. 안심을 하는 눈치다.
잠깐의 대면 후 신생아용 침대에 옮겨진 아기는, 수유할 때를 제하곤 거기에서 모든 케어를 받는다. 대소변 처리도 목욕도, 고 조금만 투명 바스켓에서 이루어진다. 간호사가 수시로 드나들며 산모와 아기를 계속 관찰하고 돌봐줘서 굳이 보호자가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무통분만의 후유증은 산모의 거동에 제동을 걸었다. 처음에는 출산으로 문제가 생긴 줄 알았으나, 무통주사 때문임을 알고는 안도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걷는 게 여의치 않아 부축을 받아야지만 일어설 수 있고, 화장실에 갈 때도 소독을 할 때도 혼자서는 모든 게 불가능했기에 보호자가 필요했다.
아들은 아기를 안겨주니 벌벌 떨면서 떨어뜨리기라도 할까 봐 어찌나 겁을 내는지 내가 다 불안할 지경이다. 아기 보는 게 서투르고 두려워하는 아들 대신 출산한 날은 내가 병실에서 하루를 보냈다. 한 방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니 과거 나의 출산과 견주어 신기하면서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산모의 입장에서는 아기가 신경 쓰이니 푹 쉴 수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산고를 겪어낸 J에게, 아기는 걱정 말고 푹 자라고 했다. 엄마가 잘 쉬어야 아기도 편안하니까.
출산 후 첫 식사는 미역국을 끓여 와서 먹게 했다. 산모라고 해서 특별히 음식이 부드럽거나 뜨겁게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네랑 너무나 다르니 우리 스스로 케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아기는 얌전히 잘 잤고, J도 별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퇴원할 때까지 아기와 산모는 병실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출생신고도 당국에서 직접 나와서 서류를 작성해서 간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저 감탄할 때는 몰랐으나, 그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의사의 퇴원 명령이 떨어지자 얼른 집에 가서 산후조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진료예약을 하고 서류를 챙기고 바로 가면 되는 줄 알았다. 아기를 카시트캐리어(이것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에 눕히고 다리에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 휠체어에 앉은 산모를 앞세워 병실문을 나설 때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내가 아기를 데리고 병실문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삐~익" 소리가 온 병원에 울리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일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담당간호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우리를 다시 병실로 데려간다.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우리에게 웃으며, '아기가 유괴되는 줄 알고 벨이 울린 거'라고 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아기 탯줄을 자르고 막음해 놓은 집게에 장치가 있어서,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병실을 나가면 그 순간 비상벨이 울리게 된단다. 그것도 모르고 간호사가 기다리라 하고선 한참을 오지 않으니 그냥 가도 되는 줄 알고 설레발을 치다가 딱 걸린 것이다. 간호사가 모종의 칩을 제거하니 조용하게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하마터면 만리타국에서 신생아유괴범이 될 뻔했다.
미국은 수십 년씩 구형을 때리는 무서운 나라다.
산후조리고 뭐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기는 그러거나 말거나 쌔근쌔근 잘도 잔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사람이 될 싹이 보이는구나.
그런 네가 우리에게 온 걸 환영해,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