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미국 마켓 예찬
오늘도 홀푸드마켓에 간다. 이 나라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곳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땅이 넓어서 그런지 식자재가 풍요롭다. 우리나라와 닮은 듯 다른 다양한 채소와 이름은 있어도 생소하기만 한 커다란 생선, 마블링 완벽한 선홍색의 프리미엄급 소고기 그리고 꼬릿꼬릿한 특유의 향을 내뿜는 온갖가지 치즈.. 그중에서 나를 가장 황홀하게 하며 오래도록 발길을 붙잡는 것은 단연코 사과 진열대. 우리나라에서는 부사를 비롯한 두어 종류에 불과한 사과의 다종다양함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만다. 황금사과, 홍옥 닮은 애, 초록사과, 다홍색 사과 등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유난히 사과를 좋아하는 나를 유혹한다. 난 그 유혹에 빠르게 반응하여. 갈 때마다 두세 종류를 담아 와서는 각각 다른 맛과 질감을 즐긴다. 이 나라에 에 오길 잘했다며 이렇게 각양각색의 사과 때문에 오기라도 한 듯, 본연의 목적의식을 상실한 채 마냥 먹거리를 욕망한다. 홀푸드마켓뿐만 아니라 HEB, 플래시마켓, H마트, 트레이더 조스 등등 마켓이란 마켓은 다 훑고 다닌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재미에 날마다 장을 보러 다니며 색다른 그 마트만의 장점을 취한다. 새로운 것은 어쩜 그리 매번 눈에 쏙쏙 들어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좋은 것은 두 번 세 번 계속 장바구니로 슈~웅
양파, 감자, 파... 식자재가 이름은 같으나 성질이 우리나라랑 달라서 요리할 때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여 새롭게 살림 재미에 빠진 나.
이른 아침부터 지지고 볶고 하루 세끼를 부지런히 차려낸다. 간식도 꼬박꼬박 챙겨 먹인다. 아들과 며느리는 매번 설거지할 거리가 없을 정도로 그릇을 깨끗이 비워낸다. 잘 먹으니 신이 나서 급기야 만두까지 빚어서 찐만두, 군만두, 떡만두까지 클리어.
어떤 날은 아들이 엄마 고생한다고 요리를 하기도 하는데, 오호 그게 또 제법이다. 시판된장과 집된장을 적절히 섞어서 끓여낸 된장찌개, 감자 듬뿍 들어간 닭볶음탕 등 솜씨를 발휘한다. 애써 준비한 요리에 칭찬 한 숟갈 얹어서 맛있게 먹으며, 고단했을 아들의 날들이 짐작되어 마음 한쪽이 아려온다.
여하튼 잘 챙겨 먹이니 애들이 살이 뽀얗게 오르는데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학업과 임신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J가, 항상 맛있다며 가리지 않고 복스럽게 잘 먹으니 기특한 생각에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늘 고민하게 된다. 새로워 봤댔자 입덧과 향수를 달래 줄 음식이 내 수준의 최선이지만...
낮에는 J(움직임이 극도로 적은 탓에)를 데리고 출산을 용이하게 한다는 목적성 산책을 핑계로, 그날그날 다른 코스를 선택하여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예쁜 가게에 들러 쇼핑도 하고 오래된 동네책방에서 책구경을 하기도 한다. 또 어느 날은 다들 찍는 만삭사진이 없으면 서운할 듯하여 빛이 다한, 그렇지만 예쁜 캠퍼스 잔디밭에서 요렇게 조렇게 포즈를 취하라며 사진 찍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수제맥주를 파는 펍에서 선택 장애를 극복하고 소중한 한 캔을 담아 온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성공적이긴 하다는 게 함정.
이러고 다니다 보니 단골가게도, 웃으며 인사 나누는 이웃도 생겼다.(나의 버킷리스트, 외국에서 살아보기가 이렇게 이루어지는 거니?)
이렇게 보낸 우리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한국의 사부인께 전송이 되고, 감사함은 내게로 다시 전송되어 온다.
H와 J 둘만의 생활에 끼어든 나와 딸이, 둘을 아니 좀 더 정확히는 J가 불편해할까 봐 걱정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서로 적정한 거리에서 우리들만의 루틴을 만들고 공통의 추억을 쌓으며 조금씩 서로에게 곁을 내주는 법을 익혀 간다. 그렇게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한편, 낯 선 감정 하나가
나를 골똘하게 한다.
'아이들 앞에 놓인 현실이 아무리 빡세더라도, 신혼의 달달함이 아닌 서걱서걱하게 느껴지는 이 분위기는 나의 예민함 때문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