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쿡으로~
양가에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방법을 여러모로 논의를 하였다. 사부인이 산후조리를 해주면 좋았겠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J가 다소 불편하더라도 내가 하기로 했다. 출산예정일을 보름 정도 앞두고 나와 딸이 두 달 계획으로 애들에게 가기로 하고, 그 후엔 사돈댁에서 학업이 끝날 때까지 육아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출국 날짜가 정해지니 몸도 마음도 바쁘다.
이것저것 준비해야 되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다 끝난 것 같으면 새로운 것이 떠오르곤 해서 고역인 날들이다.
오늘은 완도미역 한 두릅을 준비했다. 산후에 먹을 미역국은 역시 완도미역이 맞춤이지.
고소한 참기름과 들기름도 한 병씩, 국간장, 고추장, 된장, 김치 커다란 통에 하나 등등.
아참, J가 나가기 전에 한의원에서 맞춘 한약도 잊지 말고 찾아야 한다(지금까지 보약은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왜인지 약발이 잘 들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출산 후에 행여 몸이라도 상할까 싶어 미리 준비해 놓은 산후조리용 보약으로, 통관이 안 될까 싶어서 영문서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놨는데 잊으면 큰일이다.
이렇게 바쁜 중에 사부인 만나서 애들에게 전해 줄 물건도 받았는데 그게 또 장난 아니게 많다. 아기용품에 밑반찬 몇 가지 그리고 J를 위한 선물.
가을이면 부지깽이조차 바쁘다지만, 농사는 짓지 않는데 자식농사도 농사라 그러한가? 바쁘다 바빠.
어디 그뿐인가? 나와 딸이 떠나고 나면, 혼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될 남편을 위한 준비도 해놓아야 한다. 이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어보지 않아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연말이라 송년회다 뭐다해서 바쁜 시간을 보내게 될 거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우리가 보고 싶어도 이런저런 모임에 다니다 보면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게 될 터이다. 그러다 두어 달 뒤에 우리를 만나러 올 것이다. 계획은 늘 그럴싸하다.
가을이 노랗게 물들어가고 아이들을 만날 시간은 점점 가까워온다.
준비가 거의 완벽해질 때쯤 떠날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곧 출국이다.
아들은 우리를 만날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기다림에 조바심을 내는 게 느껴진다. 입덧이 심한 J를 위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산전검사를 같이 다니고,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외로울 남편을 생각하면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하다가도, 아들을 생각할 때는 빠름 빠름을 외치고 있는 내가 있다. 혹여라도 출산의 시간이 앞당겨지기라(물론 도착 후에는 하루라도 빨리 출산하기를 바라마지 않지만)도 하면 애들이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싶어 내 마음도 조급해진다.
떠나기 전에 '잘 다녀오시'라는 사부인의 전화를 받았는데, 시모에게 산후조리를 받게 될 딸의 처지가 안타까운 마음일 듯하여, 부족하지만 잘 돌보겠으니 '염려마시'라 했다. 딱히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몇 날 며칠 기운이 빠져있던, 딸바보 남편은 공항에 배웅을 나와서는 눈이 그렁그렁 울먹인다. 벌써 저러니 어찌하나 걱정을 누르며 꼭 안아 다독여주고 '잘 지내'라 웃으며 게이트를 나섰다. 나도 씩씩한 척은 했지만 눈물이 왈칵 난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딸은 여행자 모드로 완벽변신, 신이 났다. 딸아, 너라도 기분이 좋으니 됐다.
미국이라는 낯 선 땅에 간다. 한 번 가기는 하려 했으나, 예상치 않은 일로 계획보다 빠른 방문이다. 비행기로도 열 시간을 넘게 가야 하는데 애들이 있는 곳은 직항이 없는 곳이다. 비행시간도 길고 환승까지 해야 하니 아들을 만날 때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음식물을 바라바리 싸가지고 가는 탓에 무사히 수화물이 통과가 될지도 걱정이다(의심 가는 물건이 그득그득 너무 많잖은가). 웬만하면 통과하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변수가 많고, 까다롭게 굴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더구나 언어의 장벽까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어린 딸을 가이드로 앞세워 벽을 하나하나 부수며 나아간다. 그런데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애들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드디어 착륙이다. 착륙은 늘 긴장하게 만든다. 덜컹. 무사히 활주로에 닿는다.
늦은 밤.
게이트를 나오니 깡마른 아들이 저만치서 곧 엎어질 듯 좋아하며 반갑게 달려온다.
수화물카트에 요금을 지불하다니, 자본주의의 종주국에 발을 내디뎠음을 실감한다.
낯 선 이국 공항에서 불현듯 드는 생각!
이곳에서, 난 아이들과 불화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