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아이와 어른 그 어디쯤

by 윤슬

한국에서의 우리와 함께한 시간은 짧기만 하고, 8월 새 학기가 시작되어 아이들은 떠났다.

스물몇 해를 몸담고 있던 익숙한 사회에서 걸어 나와, 둘만의 홀로서기를 연습하고 이젠 실전에 돌입하게 된 H와 J.


공항으로 떠나는 날 아침, 긴장으로 굳은 얼굴에 어깨에까지 힘이 빡 들어간 아들은 나를 꽉 안으며 울음을 참는다. 그 심정을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다. 혼자 사뿐사뿐 들어왔는데 새 생명을 품은 한 여인과 같이 나가게 된 지금, 아들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게다. 옆에서 힘이 되어 줄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의 한편에는 어떻게든 가정을 잘 꾸려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아들을 두렵게 했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은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막막한 법이니까.


"아들, 잘할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정말? 잘할 수 있겠지."


"그럼. 넌 언제나처럼 잘할 거니까 기운 내."

"서로 배려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 11월에 갈게."

"J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부러 전화할 필요는 없어(난 쿨한 시엄마니까)."


큰 가방 세 개를 들고 나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눈길이 당긴다. 따라나섰다간 마음만 좋지 않을 듯하여 집에서 배웅하고 공항엔 같이 가지 않았는데, 집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라 나갈 걸 그랬다며 괜히 후회가 되는 하루였다.


사실 둘만의 앞으로의 여정에 걱정이 앞서기는 했다.

우리와 함께 지내는 짧은 동안, 사소한 일로 다투고 투닥거리는 일이 잦아 '요즘 애들은 다 저런가' 의아할 지경이었다.

성격 급하고 목소리 큰 H와 조용하지만 고집이 있는 J는 둘 다 자기주장이 어찌나 강한지 옆에서 조마조마할 때가 많았다. 때론 과거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나기도 했다.


흔히 사람을 사귈 때는 두 눈 크게 뜨고 꼼꼼히 들여다보고, 결혼 후에는 한쪽 눈은 감으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짧은 연애기간에 서로를 깊이 알기도 전에 결혼을 해버렸으니, 한쪽 눈을 감기는커녕 두 눈을 더욱 크게 부릅뜨고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이러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더구나 양가 부모의 이런저런 말들에도 쉽게 휘둘리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미지의 세계관에 익숙지 않아 작은 다툼은 큰 다툼으로 이어지곤 했다. 조금씩만 내려놓고 양보하면 되는데 애들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살아온 환경과 각자의 처지가 다르니, 하나부터 열까지 사사건건 부딪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치약하나 짜는 것부터 사소한 말습관 하나하나까지, 못마땅함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을 우린 경험으로 알지만 아이들이 그걸 알 턱이 없다. 다만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라며 지켜볼 뿐.


오죽하면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둘이서 연착륙해야는데'였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약간의 덜컹거림은 안전하게 땅에 닿아 새로운 여정을 준비하기 위한 필연의 과정인 것처럼, 아이들도 열정이 지나고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고 부딪히는 시기를 거쳐 안정적인 일상으로 접어드는 과정을 잘 이겨낸다면 성공적인 결혼생활에 안착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우리의 걱정은 이 과정을 애들이 현명하게 잘 극복하지 못하면 극단으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인데, 아직은 너무 이른 판단이기는 하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당겨서 할 필요는 없으나 둘의 성정이 우리를 다소 불안하게 만들기는 했다. 부디 연착륙하여라, 얘들아.


애들이 있는 동안 사돈댁과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자주 만나는 편이었다. 우리를 잘 아는 이들은 사돈과 그렇게 가까이 지내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하곤 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야 할 사이라고. 아이들이 한 가족이 되었으니 그들도 가족이라고 생각한 경향이 있긴 했나 보다. 우리가 만날 때면 남편은 평소 스타일 대로 모든 걸 부담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이제는 안다.


"어쩜, H는 아빠랑 저렇게 많이 달라요."


아들은 자주 남편과 비교의 대상이 되곤 했다. 남편이 보이는 것처럼 처음부터 유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세월이 쌓이고 깎여서 지금 그들이 보는 그가 된 것이다. 아들은 젊은 시절의 남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내 눈에는. 아들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텐데 어쩐다지.

'사부인,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와 어른의 그 어디쯤에서 서성이고 있는 H와 J야.

모든 처음은 어렵단다. 아기의 첫걸음이 그래서 위대한 법이지.

너희는 첫걸음은 떼었으니, 서로를 인내하고 연마하는데 시간과 애정을 쏟기를 바란다.

똑똑한 머리를 공부하는데만 쓰지 말고, 부디 그 쓰임을 둘을 이해하는 데 사용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될 11월에는 어른의 자리에 성큼 다가가 있을 너희를 기대하마.

우리 그때는 어른 대 어른으로 만나자꾸나. 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