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미움도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화촉을 밝히는 날이다.
흐린 날씨에 미세먼지까지 잔뜩 껴서 시야가 답답하다.
화창하면 더 좋겠지만 어쩌랴, 하늘의 일인걸.
6월의 꽃들로 장식된 예식장엔 은은한 향기가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에 부유하고 있다.
설렘과 기대로 살짝 들뜬 기분이 드는 건 나만일까?
오, 아닌 것 같다.
내 옆에 선 남편의 얼굴에도, 건너편 사돈내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있다.
"꼭 안아줄래요 그대의 아픈 마음을
내가 속상할 때 그대가 그랬던 것처럼
그대의 잘못은 따뜻한 용서로 안아주고
그대의 실수도 이해로 안아줄래요
어쩌다 생긴 미움은 어떡할까
사랑으로 사랑으로 안아줄래요..."(윤학준 작곡, 한경아 작사)
홀에서는 현악 4중주에 맞춰 낭랑하고 고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동요 '꼭 안아줄래요'를 오빠의 결혼축하곡으로 준비한 막내딸의 리허설이 진행 중이다.
꽃장식에 특별히 신경을 쓴 신부대기실에는, 꽃보다 환하게 J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하객을 맞고 있다.
긴장으로 얼굴이 굳은 아들은 인사하랴 소개받으랴 혼이 반쯤 나간 듯하다.
모두가 아름다운 신랑신부에게 축복을 전하며, 그들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준다.
양가 어머니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화촉을 밝히고, 곧이어 신랑입장~
꽤 긴 버진로드임에도 긴장으로 뻣뻣해진 걸음의 신랑은 앞만 보며 넘어질 듯, 질주하 듯 쌩하니 지나가버려 하객들을 한바탕 웃게 만든다.
살짝 나오기 시작한 배를 풍성한 드레스로 우아하게 감싼 신부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앳된 신랑에게 딸의 손을 인도하며 신부아버지의 눈빛이 조금 흔들린다.
신랑 신부가 사랑을 서약하고 선서를 하고, 주례선생님의 위트 넘치고 현실에 꼭 맞는('아내말을 잘 들으면 가정이 평화로워요' 같은) 결혼선배로서의 짧고 굵은 주례사까지.
예식은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
그리고 이어진 막냇동생의 축하노래.
아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 막내딸은 갑자기 언니가 생겨 어리둥절하고, 제게 향하던 오빠의 사랑이 흐려진 데 대해 서운함을 느끼긴 했으나 축하곡을 열심히 준비했다.
부드럽게 전주가 흐르고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한다.
"꼭 안아줄래요~..."
딱 거기까지였다.
연주는 계속되는데, 울먹울먹 하더니 급기야는 '앙' 하고 울어버린다. 이런이런(이 장면은 내내 이야깃거리가 된다)
어떤 무대에 서더라도 당당하며,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녀석인데 의외다.
"짝, 짝짝, 짝짝짝..."
아이의 마음을 읽어낸 격려의 박수가 점점 커진다.
많은 이들이 우는 아이와 함께 눈물을 훔친다.
동생의 순서 다음에 이어진, 신랑의 신부에게 바치는 노래.
"멀리 그대가 보일 때면 난 가슴이 떨려~~"
이적의 '이상해'를 감미롭게 부른다.
그러더니 노래 마지막에 냅다 소리친다.
"J야, 나만 믿고 따라와~"
언제 적 유행하던 저런 맹랑한 멘트로 마무리하여 모두를 웃게 만든다.
준비는 길었으나 축제는 짧다.
긴 하루가 끝났다.
나더러 신부엄마인 줄 알았다는 말에는 가족이 되려는 인연인가 싶기도 하고
따뜻한 가족애에 감동했다는 말에는 감사함을 느꼈으며
고마웠던 이들에게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음에 뿌듯했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 엄마만 없다는 생각에 유난히 울적하기도 한 하루였다.
좋은 혼사에 내 마음이 흡족하면서도 마냥 홀가분하지만은 않았다.
그건 일찌감치 어른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아이들이 애처로운, 부모의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누구누구의 자식이 아닌, 둘이서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들이 알기나 할까?
아마 모를 거야, 모르겠지.
그런데 아들아, 따라오긴 뭘 따라오니?
오르페우스처럼 혼자서 앞만 보고 가면 절대 안 된단다.
에우리디케를 뒤따라 오게 해서, 결국엔 아내를 잃어버리잖니?
천국이건 지옥이건 너희 둘이서 손 잡고 발걸음도 나란히, 다정하게 같이 가야 한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