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아닌 다른
살아오는 동안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아이들의 인연으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모든 게 처음이라 새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들부부와의 관계도 그렇고, 사돈댁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등등 마치 퍼즐 조각이 산재해 있는 기분이었다.
단지, 내가 수십 년 전 처음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그 속에서 부대끼며 느꼈던, 힘듦과 고민과 망설임을 아이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확인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결혼 전 J어머니를 만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J어머니는 맞벌이 부부인 큰 딸네에 자주 드나들며 손녀도 봐주고 먹거리도 챙겨주곤 한다 했다.
"우리 ○○가 엄청 순해요. 근데 ○○가 밥은 잘 안 먹고 피자 같은 걸 자꾸만 시켜 먹어요. 살찐다고 그런 거 먹지 말라고 몇 번 말했더니 어느 날은 안 먹은 척하더라고요."
"아니 그런다고 내가 모르겠어요. 쓰레기통에 박스며 뭐며..."
착하고 귀여운 사위다. 장모의 걱정 어린 잔소리에 뭐라 대구는 못하고 깨갱하며 아닌 척만 하다니.
사부인은 사위를 누구 아범도, 무슨 서방도 아닌 '○○야'로 불러가며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요새는 고부갈등이 아니라 장서갈등도 많다는데 그들의 스스럼없는 관계가 좋아 보였다.
"어느 날 ○○엄마가 우리 ○○가 그러잖아요. 결혼까지 한 아들을 우리 ○○가 뭐예요?"
"아, 네..."
이게 흉 잡힐 일인가?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속엣말을 삼키는 나, '허걱, 그럼 아들을 우리 ○○야 하지 않음 뭐라 부른답니까?'
아, 나는 너무 어리석었다. 이 말의 의미를 눈치챘었어야 했다.
그땐 몰랐다.
우리가 얼마나 넓디넓은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지를.
아니 모른 척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으니까.
결혼식 전에 서로 왕래를 하면서 매사 순응하는 큰사위와는 사뭇 다른 우리 아들의 언행에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곤 해서, 우린 많은 부분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라고 느끼기는 했다.
남편은 가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홀로 남으신 어머님의 긴긴 말씀도 군소리 한 번 없이 다 들어주는 예스맨이며, 손위 형님을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아빠를 보며 자란 아들은 당연히 친가족과의 유대가 중요하고, 형제간의 우애와 큰아들로서의 책임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자랐다.
아이들은 보고 자란 대로 배운다는데 예외는 없었다.
항상 동생들을 염려하고 그들의 후견인이 되기를 자처하는 둘째 사위의 모습에 안사돈은,
"H는 든든한 아버지가 있는데 왜 동생들 걱정까지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 사람들은 처가를 중심으로 사는데, 드라마 좀 많이 봐야겠네."
때로 솔직함은 무례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처가에 다녀올 때마다 아들은,
"앞으로 장모님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이에요."
"나의 사고방식이 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니..."
만남이 잦아질수록 고민의 강도는 깊고 높아져만 갔다.
처가에 다녀오면 아이들은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곤 했다.
서로의 가족문화가 다르니 당연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 많을 것이다.
안다고 다 말하는 것이 아니 듯이,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사 그건 아니라고 지적당하는 느낌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는 걸 우린 안다.
나도 J에게 하고픈 말도, 바라는 바도 많았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J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굳이 고치려 들고 싶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가족이 된 이상, 둘이서만 잘 살면 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고,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들만의 가족문화를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것은 취하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아니다 싶은 것은 버리면 그만이다.
젊은 날 우리도,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서로 오해하고 풀고, 무수히 많은 작은 다툼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서로 틀렸다고 다퉜던 시간들을 거쳐, 틀린 게 아니라 서로 달랐음을 인정하게 되는 시간들의 축적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음을 안다.
똑똑한 아이들이니까 분명, 아름다운 그들만의 가정을 만들어 나가리라 믿었다.
다소 힘든 여정을 거치더라도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하니까, 부모의 입김이 강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부모에게는 그들이 익어지기를 지켜보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결코 조바심내면 안 되는.
모처럼 안사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딸을 그렇게 좋은 음악회에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안사돈에게 인사 들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만.'
내 가족에게 뭔가를 선물할 때마다 감사인사를 받는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한가?
난 아직도 모르겠다.
매번 우리의 세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