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환생?

어쩌면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by 윤슬

야윈 엄마를 안고 떠나보내며 엄청 울었네.

넓은 정원,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누군가 위로해 주면서 꽃차도 내오고 커다란 개 두 마리를 선물로 주네.

내 키를 훌쩍 넘는 털이 북실북실한 잘 생긴 개가, 내 어깨에 두 다리를 얹으며 반가워하는데 이마 한가운데 상처에서 피가 흐른다.

난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쩐 일인지 피하질 않고, '많이 아프겠구나' 쓰담쓰담하며 연민의 마음만 가득하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이 너무 애틋하여 꼭 안아 주었네.


울고 웃다 깨어보니 꿈이다.

그러고 보니 엄마 가신 지 벌써 여덟 달이나 지났다.

내가 처음 애들의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을 때, 크게 놀라지도 않고 너무나 쉽게 수긍한 건 마음 한구석 엄마가 보내주신 아기인가, 어쩌면 엄마의 때 이른 환생인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아마도 내 마음 많이 아프지 말라고 위로해 주시느라 보낸 선물이라고 여긴 듯하다.


드디어 학기를 마친 아들이 먼저 귀국하고, 한 달 뒤 J도 귀국하여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본격적인 왕래가 시작되었다.

J네 집 어른들께서는 아들이, 어리지만 듬직하다며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우리 집 역시, 특히 남편이 J를 너무나 귀여워해 바라보기만 해도 좋아서 입이 귀에 걸린다. 늦둥이 딸이 시기할까 봐 걱정될 정도였다.

J는 나이답지 않게 순수하고 솔직하며, 참 투명한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리 듯하는 결혼이지만, 혹여 J에게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그게 무엇이든 부족함 없이 해라고 내 마음이 날 부추겼다.

내가 친정엄마도 아니고 J도 특별히 원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그러고 싶었다.

소중한 생명을 품은 그 아이를 귀하게 대접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보름, 그동안 모든 걸 준비해야 할 아이들은 무척이나 분주했다.

내가 준비해 놓은(웨딩플래너의 세계는 경이로움 그 자체), 촘촘한 스케줄에 따라 바쁜 날들을 보냈다. 웨딩드레스 투어를 시작으로, 스튜디오 촬영, 친구들 청첩장모임 등등

그러다 결국은...

J아버지께서 연락을 하셨다. J네 집에서 두 사람이 크게 다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중 그만 쌓였던 불만이 스트레스와 함께 터져 나오며 아들은 이 결혼 못 하겠다 하고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부모인 우리조차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예상치도 못한 무례하고도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고,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었다.


성격 급하고 빠릿빠릿한 아들과 매사 느긋하고 다소 수동적인 J.

둘은 대체 어떻게 사랑을 시작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자기 일에 대한 열정을 제외하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면에서 달랐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아이들은 다정하다가도 어느새 다투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런 잦은 다툼은, 다름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J아버지는 예전에 당신도 그랬다며 아직 철이 없어 그렇다고 이해한다 하셨지만, J어머니는 젊은 시절 당신 남편의 마뜩잖은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사윗감이 염려되어 결혼을 재고해 봐야겠다고 완강하게 나오셨다. 어른들의 목소리에 가려져서 J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편, 제 행동을 후회하며 어쩔 줄 몰라 고민하는 아들에게 남편은 '네가 열여덟 살의 J(그만큼 순수하다)를 포용해 줄 수 있으면 하고, 그게 안 될 것 같으면 여기서 접는 게 맞아'라고 했다.

나는, 다투고 조율하고 이해하고 때론 포기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나면 해결될 문제라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다.

지금까지 서로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고 공통분모를 만들어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충분한 시간임을 알기에.


아들은 깊은 생각 끝에 직접 매듭을 풀겠다며, J네 집 앞에서 몇 번이나 만나주기를 간청한 후에야 겨우 J를 만날 수 있었다. J의 서운한 마음을 달래주고 쌓여 있던 오해도 서로 풀었으며 , J부모님께도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사과하며 어리석은 행동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마음을 돌려놓았다.

아들의 깊은 뉘우침과 반성으로 소동은 종료되고,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휴, 다행이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걸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저절로 알아지는 게 있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깊은 뜻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다만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지금은 선명하게 보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이서 지지고 볶고 헤어졌다 만나고, 애달픈 시간을 보내며 함께 모든 과정을 극복해 나가야 하는데...

어리지만 어른답게, 부모의 개입 없이 저희 문제를 스스로 해결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계속 어긋남을 만들고야 만다는 걸 알기에는, 모든 게 서툴고 하루하루가 급급했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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